얀 후스는 누구인가?

[ 교계 ] 체코 종교개혁자 얀 후스

장창일 기자 jangci@pckworld.com
2012년 10월 22일(월) 14:30
체코 종교개혁의 아버지이자 민족의 영웅, 얀 후스(Jan Hus)는 1398년부터 프라하대학교 교수로 신학을 강의했고 1409년에는 총장을 역임한 교육자였으며, 1400년 사제로 가톨릭 사제로 서품 받은 성직자였다. 하지만 얀 후스는 당시 가톨릭과 교황의 권위에 정면으로 도전하며, 가톨릭교회의 개혁과 변화를 촉구했던 인물이었다.
 
그는 옥스퍼드대학교 교수였던 위클리프의 주장에 따라 예정구령설을 강조하며, 성서를 유일한 권위로 인정하고 교황을 비롯한 고위 성직자들의 세속화를 강력히 비판했으며, 1406년 체코어의 정자법(正字法)을 확립해 성서와 위클리프의 저작을 체코어로 번역하며 복음의 대중화에도 힘썼다.
 
하지만 가톨릭교회가 자신들의 권위에 반하는 행동을 일삼는 얀 후스를 가만히 둘리 없었다. 1410년 선출된 교황 알렉산더 5세는 후스에게 그 동안의 주장들을 철회하도록 명령했고, 후임 교황인 요하네스 23세는 1411년에 후스를 파문해 버렸다. 하지만 후스의 신념을 꺽기엔 역부족이었다.
 
당시 로마 교황청은 1414년 콘스탄츠공의회에 후스를 소환했다. 교황청은 그의 저서에 담긴 사상이 이단적이라면서 이 부분을 취소해야 한다고 지적했지만 후스가 단박에 거절했다는 것이 소환의 이유였다. 얀 후스는 지그문트 황제의 안전통행장을 지니고 있었지만, 1415년 콘스탄츠 교외에서 화형에 처해지고 만다. 이러한 처사에 저항한 후스파는 1419년 전쟁을 일으켰고 지루하게 이어지던 전쟁은 1431년 바젤 공의회에서 화평 조건을 토의하기 시작하면서 부터 해결의 실마리를 보였다. 이윽고 1436년 빵과 포도주에 의한 이종성찬이 인정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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