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됨을 통한 교회개혁

[ 기고 ] 투고-교회의 교회됨

문시영교수 webmaster@pckworld.com
2012년 10월 19일(금) 10:36

[독자투고]

종교개혁을 기념하는 행사들이 신학교마다 다채롭게 준비되는 모습을 보면, 우리시대의 종교 개혁 혹은 교회 갱신을 위한 핵심이란 과연 무엇인지를 새삼 성찰해야 할 시즌인 듯싶다. 루터와 칼뱅이 헌신했던 종교개혁의 참 뜻을 깨닫고 계승하며 그 가치를 함양하는 것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안타깝게도, 교회의 갱신을 명분으로 시작했던 교회 비판이 이내 교회를 향한 비난과 정죄와 심판으로 치닫고 마는 우리의 현실은 종교개혁의 참 뜻이 무엇인지 헷갈리게 하는 것만 같다. 교회가 시민사회의 천덕꾸러기 취급을 받는 오늘, 교회의 규모를 축소해야 한다고 주장하거나 세상 법에 호소해야 한다고 말하는 것만으로는 교회의 개혁을 온전히 구현하기 어려워 보인다. 물론, 시민적 공공성 구현이라는 것은 그 자체로 의미 있는 과제이기는 하다. 하지만, 그것이 종교개혁의 정신을 구현하는 전부라고 말해도 되는 것은 아니다. 솔직히, 시민이 환영하는 교회가 주께서 원하시는 교회인 것은 아닐 듯싶다.
 
정작 문제 삼아야 하는 것은, 교회가 교회답지 못한 것이다. '교회됨'이 문제라는 뜻이다. 루터와 칼뱅이 추구했던 것을 풀이하자면, 본질적으로 '교회의 교회됨'이 아니었을까 싶다. 칼뱅의 종교개혁 현장 제네바의 생 피엘 교회 입구에서, 교회는 그리스도인이 일생동안 다녀야 할 학교라고 했던 칼뱅의 문구가 떠올랐었다. 칼뱅의 주장과 맞물릴만한 한 구절이 새삼 떠오른다. 교회의 으뜸가는 책무는 교회 그 자체가 되는 것이며, 교회는 복음을 성품화하는 덕의 학교이어야 한다는 하우어워스(Stanley Hauerwas)의 주장이 그것이다.
 
한 마디로, 교회다움 혹은 교회됨이 중요하다는 사실을 강조하고 싶은 셈이다. 그리고 교회의 교회됨을 말할 기준은 다름 아닌 '복음'이라는 점을 확인하고 싶은 셈이다. 하우어워스의 용어를 쓰자면, '예수 내러티브(Jesus Narrative)'에 충실한 성품을 함양하는 성화의 노력을 통해 그리스도의 제자가 되는 것이야말로 교회가 힘써야 할 핵심과제이다. 이것을 '복음대로 사는 윤리'라고 요약한다고 해도 지나친 표현은 아닐 듯 싶다. 복음대로 살기처럼 분명한 과제는 없다. 그리고 그것만큼 쉽지 않은 과제 또한 없다. 이점에서, 교회는 복음대로 사는 그리스도인을 육성하는 공동체가 되어야 마땅하다.
 
분명, 교회개혁이 절실한 시점이라는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문제는 어떤 관점에서, 어떻게 개혁을 말할 것인가 하는 데 있다. 세상이 교회 안에 들어와 버린 일그러진 모습 속에서, '교회다움' 혹은 '교회됨'의 구현보다 더 절실하고 긴급한 과제는 없을 듯싶다. 종교개혁을 기념하는 다채로운 행사들 속에서, 정작 되새기고 기념하고 강화해야 할 것은 종교개혁의 참 뜻이라는 사실을 기억하면서, 그 핵심에 교회다운 교회를 세워가려는 고민, 교회로 교회되게 하는 고민이 깊어져야 할 것이다.

문시영교수 / 새세대윤리연구소장ㆍ남서울대 교목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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