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음은 감동이다-교회세습

[ 기고 ] 독자투고

김수원목사
2012년 10월 19일(금) 09:25

'교회세습'이라는 말은 원튼 원치 않든 이제 한국교회의 화두가 되어 있다. 심지어 모 교단에서는 '교회세습방지' 법안을 통과시켰다. 이러한 교회세습이 문제가 되는 것은 교회에 유익을 주기보다는 오히려 교회분란의 단초를 제공할뿐더러, 모든 사회구성원들로부터도 지탄의 대상이 됨으로 인하여 전도에 막대한 지장을 초래하거나 무엇보다 하나님의 영광을 가리기 때문이다.

복음을 전파하고 진리의 가치를 파수하기 위해 온 삶을 바쳐 목회에 전념하도록 부름 받은 이가 목사이다. 구약의 시대에는 이러한 가치를 보전하기 위해 레위지파를 따로 세웠고 그들 가운데서 제사장을 세웠으며 그 제사장의 직위는 대를 이어 감당하게 하였다.

이러한 제도를 하나님께서 제정하신 이유는 아직 '공적 교육'의 시대가 아니었기에 하나님께 드리는 예배(제사) 예전의 가치를 훼손하지 아니하고, 미개한 시대환경 가운데서도 자녀에 대한 부모의 책임 있는 신앙훈련을 통해 신앙의 절대가치를 유지 보전할 수 있는 최적의 제도였기 때문이라는 데서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설령, 부분적인 일탈이 있었음에도 그 전통은 복음의 시대를 예비하고 준비함에 가장 적절한 제도로 작동했을 것임에는 틀림없는 사실이다.

그러나 이제는 복음의 시대가 활짝 열렸다. 임시변통으로 사용됐던 특정지파(특정지역)나 자녀 됨의 조건을 뛰어넘어 사람(담임목사나 장로)의 필요성에 의해서가 아니라 절대적인 하나님의 필요하심을 따라 유대인이건 헬라인이건, 아니면 선민이든 이방인이든 누구라도 하나님의 마음에 합당한 자이기만 하면 하나님의 일꾼으로 부름 받을 기회가 열려진 것이다.

혹자는 후임자 선택에 있어서 담임목사나 장로의 자녀라는 이유로 역차별을 해서는 안 된다고 말한다. 자격이 있다면 다른 이들과 함께 자녀에게도 공평한 기회를 주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한 교회 담임목사의 자녀가 대를 이어 후임신청을 한다는데 과연 누가 그 교회에 신청서를 내려 하겠는가. 자청하여 들러리로 서려한다면 몰라도 상식이 있는 목회자라면 그 교회의 분란의 단초를 제공하는 당사자가 되지 않기 위해서라도 신청을 기피할 것은 불 보듯 뻔한 일이다. 공평한 기회 운운하지만 자녀를 포함시킨다는 것은 다른 신청자들에게는 알아서 판단하라는 것과 다름없는 행동인 것이다.

이런 경우 청빙위원들(혹은 교인들)인들 어찌 공정하게 심사(판단)할 수 있겠으며, 이런 여건 속에서 어찌 적절한 하나님의 사람을 찾을 수 있겠는가.

예수님의 복음은 감동이었으며 또 감동이어야 한다. 우리가 진실로 복음의 능력으로 교회를 섬기는 주의 종이기를 원한다면 복음이 있는 곳에 감동도 머물게 해야 한다. 간당간당 어찌어찌 자격요건을 채우게 하고 온갖 편법을 동원하여 자기 사람(자식)을 세우려는 경우는 말할 것도 없거니와, 설령 충분한 자격요건을 갖추었다 해도 자신의 자녀를 세우는 것으로는 감동을 줄 수 없는 법. 예수님 복음의 교훈은 넉넉함으로 하나님의 나라와 주의 교회를 위하여 아낌없이 주는 자기희생으로만 감동을 줄 수 있다는 것 아니던가.

그렇다고 해서 목회자나 장로의 자녀는 절대로 대를 이어 한 교회에서 목회사역을 감당할 수 없다는 말은 아니다. 먼저 자녀를 철저히 배제하고 다른 사람들에게 우선하여 사역의 기회를 열어주었음에도 불구하고 찾아오는 이가 없는 경우라면 어찌하겠는가. 고민하고 또 고민하다 고난의 길, 십자가의 길을 걷겠노라며 대를 이어 부모의 사명을 감당하는 자녀를 볼 때면 우리는 가슴이 뭉클할 정도로 감동을 받게 된다. 이런 세습이라면 열백 번이라도 감동적인 모습이 아닐 수 없다. 이런 세습은 단순히 '세습'이라는 이름으로 규정하여 정죄되거나 규제되어서는 아니 될 일이다. 감동이 있는 '교회세습'은 세습이 아닌 축복받아야 할 '대를 이은 헌신'이다. 지금도 가난한 이웃들을 돌보는 소형교회나 특수 사역지에서는 대를 이어 헌신하는 사역자들이 없잖아 있다. 그걸 문제 삼는 자들이 있을까.

이제 한국교회는 감동 있는 복음을 제시해야 한다. 개인의 편의는 버리고 교회의 유익을 위하여 결단할 때다.

김수원목사 / 태봉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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