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학생들과 함께 하며

[ 최종률장로의 빈방있습니까? ] 신학생들과 함께 하며

최종률장로 webmaster@pckworld.com
2012년 10월 15일(월) 15:20
[최종률 장로의 빈방 이야기]

필자는 1998년부터 2007년까지 장로회신학대학교에서 학부학생들을 대상으로 '연극의 이해'라는 과목을 강의했다. 비록 교양 선택 과목이었지만 4년제 정규신학대학교에 연극 관련 과목이 개설된 것은 그것이 처음이 아니었나 생각된다. 추측컨대, 신학과 학생들에게는 설교에 적용할 수 있는 장점이 있고 기독교교육과 학생들에게는 교육매체로서의 활용도가 높으며 교회음악과 학생들에게는 오페라나 뮤지컬 무대에 서는 대에 결정적인 도움이 되기 때문일 것이다. 뿐만 아니라 목회의 측면에서든 공연활동의 측면에서든 문화선교 매체의 간판격인 연극을 신학생들에게 가르친다는 것은 여러모로 의미 있는 시도였을 것이다.
 
공교롭게도 필자가 한동대학교에서 강의를 시작한 것이 봄 학기였는데 장신대는 가을학기에 개강을 하게 됐다. 과연 몇 명이나 수강신청을 하려나 했더니 50명이나 넘게 몰려와서 필자와 교학처 관계자들을 놀라게 했다. 아마도 연극과목이 처음 개설되어 호기심이 발동했을 것이고 연극이라는 것이 워낙 친근하고 흥미 있는 분야이다 보니 많이 수강신청을 했을 것이다. 큰 강의실을 배정받아 첫 강의를 하던 날, 강의실 안의 열기는 대단했다. 특히 젊은 신학생들 사이사이에 나이 지긋한 만학도들이 자리를 잡고 수강에 집중하는 모습이 무척 인상적이었다.
 
첫 시간은 문화선교의 개념과 연극의 본질에 관한 원론적인 강의였는데, 일반 대학생들이였다면 지루해할만한 내용을 모두 진지하게 경청하고 있었다. 역시 신학생들은 뭔가 다르구나 하는 느낌을 받았다. 두란노 연극아카데미에서와 비슷한 커리큘럼으로 실습을 병행하자 수강생들의 관심은 더욱 고조되었다. 그들이 전도사로 섬기는 교회에서 활용하기에 적당한 작품들을 선택하여 연습한 후, 학기말에 공연하는 것으로 한 학기를 마무리했다. '빈방 있습니까', '가마솥의 누룽지', '전율의 잔', '열 두 성난 사람들'과 같은 정극뿐만 아니라 '오, 마이갓스!', 'He'와 같은 뮤지컬도 무대에 올렸다. 특히 뮤지컬을 실습할 때는 교회음악과 학생들이 독창과 합창 그리고 지휘를 맡아줘서 매우 효율적으로 실습을 운영할 수 있었다.
 
수강생들 가운데는 전업배우를 해도 부족함이 없을 만큼 재능을 가진 학생들이 눈에 뛰기도 했다. 물론 신학도에게 배우를 하라고 바람을 넣을 생각은 없었지만 말이다. 수강인원이 많았던 탓에 더블 내지 트리플 배역으로 인원을 배분해야 했고, 그만큼 연습시간이 부족했던 것도 어려움 가운데 하나였다. 학업 이외에 교회 섬기는 일로 바빠서 별도의 연습시간을 내기 어려운 그들이었으니까. 그러나 모두들 수업 중에 배운 것을 무대에 적용하는 기쁨과 보람에 최선을 다해 주었다. 공연 일에는 학우들뿐만 아니라 섬기는 교회의 교우들과 가족들이 몰려와 환호와 축하를 해주는 등 흐뭇하고 행복한 모습이 사방에서 연출되었다. 재미있는 것은, 필자의 수업을 수강했던 신학생들 중에서 졸업 후 동숭교회 아동부 전도사로 오신 분들을 만나게 됐다는 사실이다. "장로님, 저 기억하세요? '연극의 이해' 들었습니다." "아, 그러셨군요. 맞아요. 얼굴을 기억합니다!" 그럴 때마다 궁금하면서도 은근히 신경 쓰이는 부분이 있었다. "근데…, 학점은 잘 나왔던가요?" 그 후의 대화는 독자들의 상상에 맡긴다. 왜냐하면 모든 수강생들에게 A+를 줄 수는 없는 노릇이었기 때문이다. 아무튼 유쾌하고 반가운 만남이었던 것은 틀림없다.
 
2007년 이후 필자의 개인적인 사정이 생겼고, 새로 온 강사의 형편 등으로 몇 학기 후에 연극의 이해가 폐강되었다는 소문을 듣게 됐다. 늘 새로운 교육방법론과 커리큘럼, 교수법의 혁신에 대해 부단한 연구와 노력을 기울여온 장신대였기에 가능했던 연극관련 과목이 사라지게 됐다는 소식이 못내 안타까웠다. 바라기는, 언젠가 이 과목이 복원되어 신학생들의 문화적 호기심과 욕구를 문화선교적인 관점에서 만족시킬 수 있게 된다면 좋겠다. 많은 이들이 진단했듯이 바야흐로 문화와 영성의 시대이기 때문이다.

최종률장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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