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 한국 사회에서 간첩보다 더 무서운 것

[ 말씀&MOVIE ] 영화-간첩

최성수목사 webmaster@pckworld.com
2012년 10월 12일(금) 15:08

[말씀&MOVIE]

간첩 (우민호 감독, 드라마, 코미디, 15세, 2012)

한국전쟁으로부터, 냉전시대의 갈등, 북한의 내남 공작 활동, 그리고 탈북자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소재들을 갖고 만들어진 남북 관계를 다룬 영화들을 제작 시기별로 살펴보면 우리 사회의 변화를 한 눈에 파악해볼 수 있다. 분단 이데올로기를 넘어 남북한 병사들의 따뜻한 우정과 비극을 다룬 'JSA'도 있지만, 북한에 대한 남한의 시각이 많이 바뀌었다고 느끼게 했던 첫 번째 작품은 아마도 '간첩 리철진'이 아닐까 생각한다. 특수 훈련을 받고 남파된 간첩이 남한의 강도들에게 가진 것을 모두 빼앗기고, 남한 사회에서 숨어살다가 고정간첩의 딸과 사랑에 빠지는 모습은 대단히 소박하고 낭만적이었다. 영화 속의 간첩은 반공 방첩 교육에서 가르쳤던 괴물 같은 이미지가 아니었다. 달라진 시각은 '의형제'에서도 볼 수 있는데, 그 뒤를 잇는 작품은 아마도 '간첩'이 아닐까 생각한다.
 
지금은 고인이 된 황장엽은 북한의 고위직에 몸담고 있었던 사람이었다. 귀순 후에 많은 고급정보를 남한 정부에 넘겨주었지만, 그 가운데 충격적인 것은 북한에서 남파되어 활동 중인 고정간첩이 5만여 명이나 된다는 진술이었다. 남한 사회에 경종을 주면서 동시에 이를 이용해 정치적인 이익을 얻으려 했던 정부의 시나리오를 읽어볼 수 있게 하는 그의 진술은 실제로 남한 사회에서 다양한 반응을 불러 일으켰다. 무엇보다 주목할 만한 충격적인 사실의 첫 번째는 남한 사람들이 간첩들의 존재를 전혀 못 느끼고 살고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그 많은 간첩들이 어디서 무엇을 하며 살고 있는지 궁금해지는 것이 두 번째 결과다. 다른 한편으로는 섬뜩한 기분을 불러일으키는데, 왜냐하면 과거 반공 방첩 교육이 한창 이뤄졌을 때를 생각하면, 5만여 명이라는 숫자의 간첩은 남한 사회를 혼란의 도가니에 빠뜨리게 하고도 충분할 정도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우민호 감독에 따르면, '간첩'은 고정 간첩 5만여 명의 시대를 상상하며 만들어진 영화라고 한다.
 
사실 간첩이 무서운 때가 있었다. 반공 이데올로기로 든든하게 무장해야만 했던 때다. 이 시기의 교육에서 들은 간첩들은 잔인무도하고 머리에는 뿔이 나 있었다. 공산주의에 대한 경계심이 강화되었던 때가 오히려 좋았다는 간첩의 말은 다소 이해하기 어렵지만, 누르는 힘이 커질수록 저항하는 힘도 커지는 법, 곧 작용과 반작용의 원리를 알면 이해하지 못할 일도 아니다. 유치원 때부터 시작되는 반공 방첩 교육은 전 국민을 안보의식으로 무장케 했고, 대한민국 사회에서 경계 대상 1호인 북한 공산주의와 남파간첩들은 배척해야 할 사상이며 요주인물로 인지될 수밖에 없었다. 실제로 간첩에 대한 경계가 강해지고 그들의 활동에 대한 북쪽 당국의 기대감이 커질수록 북으로부터 받는 공작금은 더욱 많아질 수밖에 없다. 간첩들 스스로가 말하는 호시절은 바로 유신정권이다. 그만큼 유신정권은 반공이데올로기로 똘똘 뭉친 정부였고, 반공 방첩 교육을 강화했던 때라는 말이다.
 
이런 대사를 접하면서 사실 필자는 '간첩'의 주제를 파악하며 메시지를 읽어내는 것에 앞서 이 영화가 제작되고 개봉된 때와 감독의 의도를 특별히 주목하게 되었다. 김대중 노무현 정권이 닦아놓은 남북관계를 그 이전의 수준으로 돌려놓은 이명박 정부의 시대에 과연 영화는 무엇을 겨냥한 것일까? 남한 사회에 깊숙이 침투해 있는 간첩에 대한 경계심을 높이기 위한 것일까? 아니면 남한사회에 완전히 동화되어 더 이상 간첩이라는 정체성을 갖지 않고 살아가는 그들의 모습을 보여주면서 현 정권에서 강화되고 있는 반공이데올로기를 비판하려는 것일까? 아니면 황장엽의 진술을 바탕으로 남파된 간첩들의 삶에서 나타나는 상반된 이미지를 통해 그저 웃자고 만들어진 것일까?
 
예컨대, 간첩들이 한국 사회의 곳곳에서 활동하는 모습을 보여주면서 쇠고기 수입 반대를 위한 촛불 시위와 FTA 반대시위와 관련해서 등장시킨 것은 보는 자들로 하여금 오해를 불러일으킬 수 있었다. 정부정책에 대한 반대 시위가 간첩들의 공작일 수도 있다고 착각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것은 실제로 극우 세력들이 시위를 반대하며 편 논리 가운데 하나이기도 했다. 필자가 보기에는 간첩들이 그만큼 철저하게 남한사회에 동화되었다는 사실을 보여주기 위한 의도에서 그런 장면이 삽입되었을 것이라 생각하는데, 그렇게 보지 못하고 오해하는 관객들도 있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할 것이다.
 
한편, 단적으로 말해서 '간첩'은 남파 간첩들의 삶의 이야기를 통해서 경제 불황의 시대에 한국의 자본주의 사회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이 가장 염려하고 또 두려워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보여준다. 다시 말해서 영화는 순수한 의미에서의 간첩 활동 그 자체를 조명하고 있지 않다는 말이다. 남파된 간첩들의 삶을 통해서 영화가 집중하는 것은 바로 경제 불황의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생존의 문제다. 북한의 경제 사정이 좋지 않고 또 남파된 간첩들의 활동에 대해 더 이상 관심을 두지 않다보니 공작금 지원이 끊어질 수밖에 없다. 이런 상황에서 북에 두고 온 모친에게 송금해야 하고, 전세금 인상 문제나 자식의 장래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동분서주해야 하며, 독거노인으로서 사는 외로움을 이겨내야 하고, 소 값 하락을 염려하며 그리고 싱글맘으로서 시각 장애를 가진 자녀의 건강과 미래를 걱정해야 한다. 그들의 삶이나 고민은 곧 남한 사람들의 그것과 전혀 다르지 않으며, 영화가 말하고자 하는 내용이 분명하게 드러나는 부분이다.
 
간첩과 서민이라는 두 개의 상반된 이미지의 충돌이 자아내는 해프닝으로 구성된 전반부는 다분히 블랙코미디로서 전형적인 모습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귀순자를 암살하는 임무를 띠고 남파된 간첩들이 등장하면서 상황은 심각한 액션으로 바뀌게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화의 전반적인 분위기는 대한민국 사회에서 살아남기 위한 몸부림으로 가득하다. 그리고 그것이 오늘 우리의 문제임을 시사한다. 남북이 대치하고 있는 상황에서 간첩보다 더 무서운 생존의 문제가 사회문제가 되는 때에 교회는 무엇을 할 수 있을 것인지를 고민할 필요가 있다.
 
 
최성수목사 / 神博ㆍ영화 및 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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