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15~20일

[ 가정예배 ] 10.15~1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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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10월 12일(금) 14:04

월-성령을 따라 행하라
본문 : 갈 5:16 - 26
찬송가 : 191장
 
예수님께서 승천하시면서 보혜사 성령을 보내 주시겠다고 약속하셨다. 약속대로 성령을 이 땅에 보내시어 영원히 우리와 함께 하신다. 성령께서 죄사함을 주시고 거듭나게 하시어 하나님을 아버지라 부르도록 역사하신다. 그뿐만 아니라 성령의 열매를 맺게 하시므로 기쁨을 누리게 하신다. 그러면서도 영과 육이 갈등을 자주 느끼며 무엇을 따라 사느냐에 따라 결과가 나타나게 된다. 사도바울도 로마서 7장 21절에 "그러므로 내가 한법을 깨달았노니 곧 선을 행하기 원하는 나에게 악이 함께 있는 것이로다"라면서 탄식하기를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내랴"라고 한다.
 
먼저 육체의 일과 성령의 열매를 살펴보면, 육체의 일은 음행, 더러운 것, 호색, 우상숭배, 주술, 원수 맺는 것, 분쟁, 시기, 분냄, 당짓는 것, 분열함, 이단, 투기, 술취함, 방탕함과 또 그와 같은 것들이라고 한다. 도덕적으로 보아도 좋은 것이 아니고 육에 속한 사람들이 보아도 권장할만한 것이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육체가 원하는 대로 살아서 후회하고 결국은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하게 된다.
 
성령의 열매는 사랑, 희락, 화평, 오래참음, 자비, 양선, 충성, 온유, 절제다. 이런 열매는 누가 보아도 좋고 감동적이고 행복을 주는 것이다. 성령 안에 있으면 저절로 맺히는 열매이지만 예수님을 믿는 자들이라도 성령충만하지 않으면 육체의 일들이 나타나 사람으로 하여금 갈등을 느끼며 살게 한다. 예수님이 오신 것도 "양으로 생명을 얻게 하고 더 풍성히 얻게 하려는 것이라"고 말씀하신다. 어떻게 살아야 성령의 열매를 맺을까?
 
첫째는 "성령을 따라 행하라 그리하면 육체의 욕심을 이루지 아니하리라"고 한다. 육체의 소욕은 성령을 거스르고 성령은 육체를 거스르는 대적의 관계다. 그러므로 나에게 손해가 되고 어리석어 보일지라도 믿음으로 성령을 따라 사는 지혜가 필요하다. 좁은 길이라도 성령의 음성을 듣고 진리의 말씀을 따라 살면 영생의 길이요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게 된다.
 
둘째는 "성령의 인도하시는 바가 되면 율법 아래에 있지 아니하리라"고 한다. 율법을 지키면 살리라 말씀하지만, 율법을 지키지 못하면 율법이 있으므로 죄를 깨닫게 된다. 그리하여 율법 안에 있으면 죄의식에서 더욱 괴롭게 된다. 율법은 우리를 그리스도께로 인도하는 초등교사가 될 뿐이다. 율법이 범법한 자들에게는 필요한 것이지만 성령의 인도함을 받는 자들에게는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저주를 받은바 되사 율법의 저주에서 우리를 속량하셨으므로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우리를 해방시켜 주셨다. 그러므로 성령의 인도함을 받으면 율법을 넉넉히 지킬 수 있고 기쁨으로 율법을 지키며 그 이상 원수까지 사랑하게 되는 성령의 열매를 맺으며 살게 된다. 그러므로 적극적으로 성령을 따라 살자.

<오늘의 기도 >
보혜사 성령을 보내시어 하나님을 섬길 수 있도록 도우시는 하나님 아버지! 감사와 찬송을 드립니다. 성령을 따라 살게 하시어 성령의 열매 맺는 그리스도인이 되게 하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윤석근목사 / 평화의교회


화-절망의 끝은 희망의 시작입니다
본문: 고후 1:8-11
찬송가: 414장
 
심방을 하면서 많은 분들이 아파하고 신음하는 소리를 들으며 필자의 마음도 함께 아팠고, 눈물을 흘리기도 하였다. 그래도 감사한 것은 눈물을 흘리면서도 절망적인 것 보다는 소망을 말하고, 어떻게든 믿음으로 서려고 애쓰는 모습들을 보면서 함께 힘을 얻고 감사한 마음으로 예배할 수 있었다. 오늘 말씀으로 하나님의 메시지를 들을 수 있기를 바란다.
 
첫째로 성도의 삶에도 고난이 있음을 인정하라고 하신다.
 
사도 바울이 복음을 전하다가 당한 고난과 환란이 너무 커서 도저히 감당할 수 없는 지경이 되었다. 그는 살 소망이 끊어졌고, 심지어 마음에 사형선고를 받았다고 여길 만큼 고난이 컸음을 고백한다.
 
오늘 환란의 늪에서 신음 중에 있거나, 닥쳐온 환란으로 인하여 소망이 없다고 절망 중에 있지는 않는가? 여러 제목을 가지고 오랜 시간 기도하고 있지만 응답이 되지 않은 것 같아 낙심 중에 있지는 않는가?
 
오늘 사도바울이 자신의 환란을 고백하고 있는 것처럼, 우리가 우리의 환란을 인정하고, 고백하면서 주님 앞에 나의 아픔을 내어놓고 기도하면 분명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힘주시고, 응답하신다. 주님의 승리가 오늘 우리의 승리가 된다.
 
둘째로 고난 중에 자기를 의지하지 말고 하나님만 의지하라 하신다.
 
사도 바울이 고난과 시련이 너무 커서 절망할 수밖에 없었을 그 때, 깨달은 것이 있었다. 그것은 복음을 전하고 하나님의 일을 감당하는 데 있어서 자기의 힘, 지식, 능력을 의지하지 말고 오직 하나님만 의지하도록 하셨다는 것이다. 내 힘으로 무엇인가 해보려고 하였지만 실패하여 다시 일어설 기력이 없는가? 이제 환란을 두려워하지 말고, 나에게 주신 모든 환란을 오히려 감사로 받고 하나님만 의지할 수 있기를 바란다. 나의 아픔을 기억하시고 응답하시는 우리 하나님께 나의 아픔, 고통을 내어놓고 기도할 때 하나님께서 반드시 응답하시고 선한 길로 인도하실 것이다. 능력의 주님, 긍휼의 주님, 죽은 자를 다시 살리시는 주님을 바라보고 주님의 능력 힘입어 승리하기를 바란다.
 
셋째로 고난 중에 있는 자를 기도로 도우라고 하신다.
 
사도 바울은 고린도교회에 자기를 위하여 기도해달라는 부탁하고 있다. 그 기도는 선교의 일선 당사자들에게 매우 귀중한 결과를 가져오는 것이고, 바울 일행이 환란을 극복하고 그 위기를 선교의 기회로 삼게 된다는 것이다.
 
환란과 고통 중에서 주님께 기도하면서 주님만 의지하고 바라볼 수 있어야 한다. 어려움 가운데 있는 성도들을 위하여 기도로 도울 수 있어야 한다. 그리할 때 우리에게 있는 절망이 끝나고 희망이 시작될 것이다. 더 이상 환란을 두려워하지 말고, 그 환란을 통하여 하나님의 위로와 감사를 경험하며 승리하는 삶을 누릴 수 있기를 바란다.

<오늘의 기도>
사랑의 하나님 아버지, 아픔과 시련 중에 위로하시는 하나님을 바라보게 하시고, 주 안에서 승리하며, 은혜와 평강을 누리게 하옵소서. 이제는 이 시련을 넘어서서 위로자가 되게 하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김성일목사 / 일동동부교회


수-예수님처럼 사랑하라
본문: 요 3:16-17
찬송가: 299장
 
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말은 '사랑한다'는 말이다. 사랑은 사람만 느끼는 것이 아니다. 동물들도 자기를 사랑하는 것을 알고, 식물들도 사랑으로 대하는 것을 안다고 한다. 이렇게 사랑은 누구에게나 필요하고 귀한 것이다.
 
이사야 43장 4절 말씀에 "네가 내 눈에 보배롭고 존귀하며 내가 너를 사랑하였은즉 내가 네 대신 사람들을 내어 주며 백성들이 네 생명을 대신하리니"라고 했다. 이것을 공동번역에서는 "너는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만큼 나의 귀염둥이요 나의 사랑이라"고 했다. 이 말씀은 하나님이 우리에게 사랑을 고백하는 프로포즈로 인간의 언어로 표현된 가장 감동적인 말씀이다. 우리가 하나님 없이 살 수 없듯이 하나님께서도 우리가 없으면 살 수 없다. 우리는 하나님께 이토록 소중한 존재이다.
 
참 사랑이란 무엇인가? 자기를 내어주는 것, 자기를 포기하는 것이다. 사랑은 아낌없이 주는 것이다. 하나님은 우리를 향한 사랑의 표현으로 독생자 예수님을 이 세상에 보내주셨다. 사도 요한은 "그가 우리를 위하여 목숨을 버리셨으니 우리가 이로써 사랑을 알았다"고 했다. 아들을 희생하면서 대신 우리를 살리신 하나님의 그 희생적인 사랑에 감격하며 감사와 영광을 돌려야 할 것이다.
 
왜 하나님이 우리에게 이렇게 희생적인 사랑을 베풀어 주셨을까? 우리가 하나님의 엄청난 사랑을 받을 수 있는 존재일까? 아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무조건적인 사랑이다. 로마서 5장 8절 말씀에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 예수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 하셨다"고 하셨다. 죄인으로 있을 때 이미 하나님이 우리를 선택하셨다. 진정한 사랑은 조건을 요구하지 않는다. 세상의 사랑엔 조건이 있다. 똑똑하고, 잘나고, 명예가 있고, 돈이 있고, 권력이 있어야 한다. 자신에게 이익을 가져다 줘야 사랑한다고 말한다. 그러나 십자가에 나타난 하나님의 사랑은 그 대상의 조건과 가치를 묻지 않는다. 그것은 연약하고 경건치 않은 죄인들과 원수들을 사랑한 무조건적인, 모순된 사랑이었다.
 
그러면 하나님은 못난 우리를 왜 사랑하셨을까? 하나님의 선택과 은혜엔 해답이 없다. 우리는 그냥 사랑을 입은 것이다.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최고 소원은 무엇일까? 하나님은 사랑 없는 곳에 사랑이 생겨나기를 소원하신다. 왜곡된 사랑이 참 사랑으로 변화되기를 원하신다. 얕은 사랑에서 깊은 사랑, 작은 사랑에서 큰 사랑, 일시적인 사랑에서 영원한 사랑으로 충만한 세상이 되기를 바라신다. 높고 넓은, 이타적인, 참 사랑 가운데 모두 행복하게 살기를 바라신다.
 
우리를 위해 십자가를 지신 예수님의 사랑을 기억하자. 그리고 우리도 이제 이 사랑으로 하나님과 주님을 사랑하시고 ,우리 주변에 있는 모든 사람들과 성도들을 사랑하시기를 축원한다.
 
<오늘의 기도>
하나님! 무조건적인 사랑과 희생적인 사랑으로 우리를 구원하여 주심을 감사합니다. 우리도 하나님의 사랑을 나누며 베푸는 삶이 되게 하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노호경목사 / 흥해중앙교회


목-천하보다 귀한 생명
본문:마가복음 3:1-6
찬송가: 286장
 
미국의 두 젊은 교수가 쓴 '보이지 않는 고릴라'라는 책이 있다. 저자는 동영상과 책을 통해 사람은 여섯 가지의 착각을 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그것을 짧은 지면에 다 설명할 수는 없지만 결론은 '사람은 자신이 보고 싶은 것만을 보고, 자신이 듣고 싶은 것만을 듣는다'는 것이다. 사람들은 한 부분에 집착하면 다른 부분은 보지도 듣지도 않고 자신이 집착해서 보고 들은 것만을 가지고 판단하고 결정한다.
 
하나님은 이사야서 6장 9절의  "너희가 듣기는 들어도 깨닫지 못할 것이요 보기는 보아도 알지 못하리라"는 말씀을 통해 사람들에게 이러한 속성이 있음을 말씀하신다. 듣기는 들어도 깨닫지 못하고 보기는 보아도 알지 못한다는 말은 자신의 편견과 고정관념을 통해서만 듣고 보려고 하니 하나님의 말씀과 구원의 섭리를 제대로 듣고 볼 수 없다는 것이다.
 
오늘 본문에는 이런 교훈을 우리에게 보여주는 사건이 나온다. 안식일에 회당 안에 손이 말라 고통을 당하는 사람이 있었다. 바리새인들은 율법 조항을 중심으로 손 마름의 고통에 처해 있는 사람을 판단했다. 바리새인들이 어려움에 처한 사람을 판단하는 기준으로 삼은 것은 '안식일을 거룩하게 지키라'는 하나님의 명령과 안식일을 거룩하게 지키기 위해 자신들이 세부 지침으로 만든 2백34개의 조항이다. 그들은 안식일 법을 제시하며 손 마름으로 고통을 당하는 사람을 치유하는 것은 반대했다. 그들은 예수님께서 그 병자를 어떻게 하는지 지켜봤다. 안식일에 병자를 고치면 고발하기 위함이다.
 
예수님은 제도와 조직의 기득권 보다 절실하게 도움을 필요로 하는 사람을 중심으로 문제를 풀어갔다. 예수님은 손 마른 사람의 손을 고쳐주셨다. 바리새인은 율법을, 사두개인은 정치 이념을, 제사장은 성전 제도를, 헤롯당은 정치권력을 사람보다 더 중요하게 여겼다면 예수님은 그 무엇보다도 사람을 가장 중요하게 여겼다. 예수님의 사역의 중심은 사람이었다. 그것이 바로 하나님의 마음이었다.
 
예수님께서 사람이 안식일을 위해서 있는 것이 아니라 안식일이 사람을 위해서 있는 것이라고 하신 말씀은 그 어떤 것보다도 사람을 소중하게 여기시는 예수님의 마음을 잘 보여준다. 예수님의 이러한 말씀이 우리 신앙의 중심이 되어야 하고, 교회가 이 땅에 존재하는 중심 가치가 되어야 한다. 교회가 성장주의에 물들어 교회가 사람을 위해서 있는 것이 아니라 사람이 교회 성장을 위한 도구로 여겨지는 것은 우리를 슬프게 하고 하나님을 슬프게 하는 일이다.  
 
우리의 신앙생활이 내가 보고 듣고 하고 싶은 것을 중심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주인으로 고백하는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것이 무엇인지를 바르게 알기를 바란다. 우리의 가정과 교회가 무엇보다도 사람을 소중하게 여기시는 하나님의 정신과 가치에 뿌리를 깊게 내려 어두운 세상에서 하나님 나라를 보여주는 빛과 소금이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한다.

<오늘의 기도>
하나님 아버지, 하나님을 향해 마음의 문을 활짝 열게 하셔서 하나님의 뜻을 듣고 보고 그것을 삶으로 살아가게 하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서진규목사 / 행복한교회


금-예배란 무엇인가? 
본문: 요4:23 
찬송가: 197장 
 
행복한 부자가 되는 비결인 인생철학 8가지가 있다.
 
내가 좋아하는 일을 한다. 사소한 것이라도 쓸데없는 낭비를 하지 않는다. 인생관과 목표가 뚜렷하다. 게임을 하는 것처럼 일을 즐긴다. 감정이 매우 안정적이다. 결단력이 매우 빠르다.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직업으로 삼는다. 주위에 사람들이 많다. 그런데 여기 진짜 부자가 되는 방법의 비밀이 있다. 무엇일까? 예수님을 잘 믿는 것이다. 그럼 예수님을 잘 믿는다는 것은 무엇일까? 예배를 잘 드리는 것이다. 그래서 교회는 예배하는 공동체이다. 이것이 본질이다. 예배를 통해서 교회는 교회다워 진다. 예배를 통해서 자신의 신앙이 고백되며 성도들은 하나님 백성으로 양육된다. 그래서 예배는 교회공동체의 중심이자 기초이다. 모든 것을 예배와 연관시켜서 생각해야 한다. 그것은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기준이기 때문이다.
 
그러면 예배가 무엇인가? 이 답을 알자면 먼저 예배에 대한 용어들을 알아보아야 한다. '예바드'(봉사, 섬김)와 '샤하아'(굴복한다. 자신을 엎드린다. 숭배, 순종, 봉사의 종교적인 개념) 이 두 가지를 종합하면 모든 인간은 하나님 앞에서 그의 뜻을 따르며 섬겨야 할 존재라는 사실과 경배와 순종의 생활이 예배자들의 삶과 모습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프로스 퀴네인'(절하다, 굽어 엎드리다) '라트 레이아'(종으로서 상전만을 섬겨할 신분을 나타내는 것). 특히 worship이라는 단어는 가치 worth와 신분 ship의 합성어입니다. 상대방에 대해 존경을 표시하고 가치와 존중을 돌린다는 뜻이다. 그러니까 예배란 하나님께 최상의 가치를 돌리는 것이다.
 
예배가 무엇인가를 전문적으로 연구한 전문가들이 정리한 예배의 정의는 다음과 같다.
 
프랭클린 지글러는, "예배란 예수 그리스도에게 나타난 하나님 자신의 인격적인 계시에 대한 인간들의 인격적인 신앙 안에서의 정성어린 응답이다"라고 했고, 폴 훈은 "예배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보여 주신 하나님의 계시와 그에 대한 인간의 응답이다"라고 정의한다. 존 부르크 하르트는 "예배란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해 하셨고 하시고 계시며 또 앞으로 하실 것에 대한 축제적 응답이다"라고 했다. 정장복 교수는 "예배란 피조물인 인간이 하나님의 구원 역사와 수많은 은총에 감격하여 하나님을 경외하고 찬양하며 감사하며 봉헌하려는 피조물의 응답적인 행위이다"라고 정의했다. 즉, 예배란 예수 그리스도의 구원사건 안에 나타난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에 대한 인간의 응답이다.
 
오늘 주신 본문을 보면 참되게 예배하는 자들에 대해서 나온다. 진정한 예배, 참 예배, 바른 예배를 드리는 자, 하나님은 이런 사람들을 찾고 계신다. 누가 참 예배를 드릴 수 있을까? 예배가 무엇인지를 잘 알고 드리는 자이다. 하나님께서는  우리 모두가 예배를 잘 알아 참된 예배, 진정한 예배 드리기를 바라고 계신다.

<오늘의 기도>
하나님 아버지! 예배가 무엇인지도 모르는 가운데 예배하게 되는 경우가 있습니다. 하나님이 찾으시는 참예배자, 진정한 예배자로 세워지게 하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김종래목사 / 새로핌교회


토-하나님의 지도하심
본문: 잠3:3-6
찬송가: 570장
 
솔로몬이 지은 잠언은 하나님의 지혜가 담긴 지혜서이다. 솔로몬은 누구보다도 하나님의 사랑을 많이 받았고, 하나님께서 주신 특별한 지혜와 부귀영화를 마음껏 누린 사람이다. 이런 부귀영화를 누린 은혜는 하나님이 인생을 지도해 주셨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잠언 3장 6절에 보면 "너는 범사에 그를 인정하라 그리하면 네 길을 지도하시리라"고 했다. 하나님께서 우리 인생의 길을 지도하신다 하셨다. 하나님은 나의 삶을 모른 체 방치하시는 것이 아니고 지도하시는 하나님 이라는 것이다. 여기에서 하나님은 우리 인생의 최고의 지도자이시다.
 
누구의 지도를 받느냐가 중요하다. 런던올림픽 때 유도 결승에서 승리한 송재남선수는 정 훈 감독에게 큰 절을 하고 그를 얼싸안고 눈물을 흘렸다. 왜 그랬을까? 정 훈 감독이 금메달을 따도록 지도해주었다는 것이다. "감독님이 지도 하시는 대로 하여서 오늘 금메달을 땄습니다." 솔로몬은 인생의 지도를 하나님이 하신다고 고백한다. 우리의 삶을 모른 체 방치하시는 것이 아니고 지도하시는 하나님이다라는 것이다. 단순히 길을 안내해 주시는 것뿐 아니라, 우리 인생여정의 장애물을 제거하여 형통하게 하신다는 말이다. 쉬운성경에는 "그러면 그 분이 너의 길을 형통하게 만들어 주실 것이다"라고 했다.
 
그런데 이렇게 지도하시는 데 먼저 해야 할 일이 있다. 먼저 범사에 그를 인정하라는 것이다. '인정하라'는 히브리어 '야다'인데, 그 의미는 '알다' '이해하다'의 뜻이다. '야다'는 단순히 지식적으로 알고 이해하는 정도가 아니라, 친밀한 경험(관계)을 통해서 아는 것을 말한다.
 
하나님을 경험적으로 친밀할수 있는 제일 좋은 방법은 기도이다. 기도는 하나님의 뜻을 아는 비결이며, 기도는 하나님을 믿고 의지한다는 신앙고백이다. "그를 향하여 우리가 가진 바 담대함이 이것이니 그의 뜻대로 무엇을 구하면 들으심이라."(요일 5:14)
 
기도로 하나님을 인정해 드리면 나의 인생길을 지도해 주신다. 솔로몬은 기도로 하나님을 알았고 하나님은 그를 지도하였다. "솔로몬이 기도를 마치매 불이 하늘에서부터 내려와서 그 번제물과 제물들을 사르고 여호와의 영광이 그 성전에 가득하니 밤에 여호와께서 솔로몬에게 나타나사 그에게 이르시되 내가 이미 네 기도를 듣고 이 곳을 택하여 내게 제사하는 성전을 삼았으니 내 이름으로 일컫는 내 백성이 그들의 악한 길에서 떠나 스스로 낮추고 기도하여 내 얼굴을 찾으면 내가 하늘에서 듣고 그들의 죄를 사하고 그들의 땅을 고칠지라이제 이 곳에서 하는 기도에 내가 눈을 들고 귀를 기울이리니…"
 
하나님이 우리의 삶을 지도해주신다니 얼마나 놀라운 일인가? 우리는 범사에 그를 인정하는일 즉, 기도함으로 하나님을 인정해 드려야 한다. 하나님은 기도하여 인정하여 드리는 사람을 지도하실 것이다.
 
<오늘의 기도>
전능하신 하나님, 이제부터 우리 가정과 우리가 하나님을 인정하여 드리는 기도를 하겠습니다. 저희를 지도하여 주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박동석목사 / 감동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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