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 민주화 위한 여전도회의 노력

[ 이연옥명예회장의 향유 가득한 옥합 ] 교회 민주화 위해 노력

이연옥명예회장 webmaster@pckworld.com
2012년 10월 09일(화) 14:21

[이연옥명예회장의 향유가득한옥합]

여전도회 회관에서 교회 여성들이 교육과 훈련의 기회를 가진 이래로 교회에서 여성 지도력이 확대되었고 사회에서도 기독교 여성의 선한 영향력이 마치 누룩처럼 확산되어 왔다고 본다. 한 해 동안에 이 건물에서 개최되는 강좌와 세미나가 엄청나게 다양하고 많다. 다양한 전공 분야의 많은 학자들이 강의와 세미나에서 가르치고 있고 나도 공휴일을 빼고는 거의 매일 이곳에서 강의하고 있다. 개설되는 강좌들을 통해 김마리아, 유각경, 김순호, 김필례, 신의경, 임영신, 박순천 등 여러 여전도회 선배들이 품고 계셨던 신앙정신과 민족의식이 전수되어 계승되고 있다.

여전도회 소속 단체들이 이 건물에서 개최하는 훈련 프로그램도 매우 다양하다. 몇몇 중요한 프로그램만 거론해 보면 여전도회 전국연합회 산하 66노회연합회 훈련 프로그램, 회장단 세미나, 임원단 세미나, 사회부 주과능로 개최되는 대중매체 세미나, 남북한 평화통일을 위한 '통일학교' 등이다. 또한 출판사업회는 이사회가 중심이 되어 회원을 모집하여 기금을 모으고 여전도회의 역사자료를 정리하고 여전도회에 필요한 자료를 다양하게 출판하고 있다.

1970년대에 나는 기회가 있을 때마다 공개석상에서 교회의 민주화에 관하여 언급했다. 내가 속한 장로교회 교단에서는 그 용어를 좀체 사용하지 않았고 나는 총회의 정서를 거스르려는 의도가 추호도 없었으나 교회의 민주적 제도와 운영이 시급하다고 발언했다. 교회 민주화에 대한 내 생각의 발단은 1965년 미국 유학을 마치고 귀국한 직후 아주 신선하게 와 닿는 우리나라의 현실을 보면서 비롯되었다. 사회에서는 민주화 운동이 활발하게 일어나고 있음에도 교회에서는 그런 운동이 미세한 바람조차 없다는 점이 의아했다. "4ㆍ19 민주화운동 이래로 사회에서는 민주화 운동이 활발한데 과연 교회는 어떠한가?"라는 물음을 항상 내 마음에 담고 있었다. 그렇게 지내 오다가 1970년대 초반, 즉 내가 여전도회전국연합회의 부회장으로 일하던 1973년에 여전도회 전국연합회 총회석상에서 처음으로 '교회 민주화'란 제목으로 특강을 했다.

1975년 여전도회 전국연합회 회장으로 취임한 나는 여성 안수가 성사되어야 교회의 민주화도 이루어질 수 있다고 생각했다. 여성 안수가 교회 민주화의 선행조건은 아닐지라도 교회의 민주적 제도와 운영을 위해 여성 안수가 총회에서 통과되어 법제화 되어야 한다고 확신했다. 해마다 교단 총회에 반복적으로 상정되는 여성 안수 청원은 여성만의 문제가 아니라 한국교회의 제도개혁이며 교회에서 남녀의 수평적 관계를 수립하는 제도의 시작이라고 파악했다.

역사적으로 살펴보니 여성 안수 청원은 1933년 장로교회의 총회에 여성치리권을 청원함으로써 시작됐다. 여성도 남성과 동등하게 장로가 되게 해 달라는 청원이었다. 이 청원이 총회에서 부결되었다. 1945년 8ㆍ15 해방 이후에 여전도회 선배들이 또 다시 총회에 청원서를 제출했다. 이때 총회의 답변은 "지금 해방은 되었으나 남한과 북한으로 갈라져서 분단된 상태이니 남북이 통일되면 여성 장로 제도가 허락될 것이다"라고 했다. 그러다가 1950년 6ㆍ25 전쟁이 일어났다. 그 이후로 김필례 선생님이 1950년대에 그 다음에는 신의경 선생님이 1960년대 초반에 여성 지도자로 나서서 총회에 여성 장로를 허락해 달라고 청원했다. 김필례 선생은 지성적인 기독교 여성인데 일찍이 동경여자대학을 나오고 미국 콜롬비아 대학에서 공부하셨다. 신의경 선생은 여성 의식이 아주 강했던 분인데 일본 동북제국대학(도호쿠 제국대학)에서 역사학을 전공했고, 더욱이 그 대학의 유일한 여성 졸업생이었으며, 1948년 대한민국 헌번 초안위원으로 참여해 법조문에 여성의 권익을 많이 옹호하셨다. 신의경선생님은 교회 안에서 권사의 지위를 바로 잡아 주어 여성의 위치를 교회에서 정당한 자리로 올려 준 분이기도 하다. 장로교회 총회가 여성들의 여성 장로 청원을 무마시키려는 차원에서 임시로 만든 제도가 권사직인데 권사의 직분이 196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항존직이 아니라 서리집사와 똑 같았다. 이때 신의경 선생님이 교단 총회에 건의해 권사직을 항존직으로 승격시켰고 이로써 교회의 제도개혁을 이루어 내셨다.


이연옥 명예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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