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동분쟁의 원인

[ 이강근의 중동이야기 ] 중동분쟁의 원인

이강근목사 webmaster@pckworld.com
2012년 10월 09일(화) 14:19

[이강근의 중동이야기]

중동분쟁의 원인을 규명할 때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 할 것이 하나 있다. 중동분쟁의 원인 제공자는 바로 중동을 식민통치했던 유럽 열강들이다. 제1차 세계대전 당시 팔레스타인을 4백년 간 지배했던 오스만터키가 독일 측에 가담함으로서 영국을 중심으로 한 연합군과 전쟁을 벌였다. 이때 영국은 아랍인과 유대인에게 오스만 제국과의 전쟁에서 승리하면 독립을 약속하며 오스만제국과 싸워줄 것을 요청했다. 바로 1914~1916년 후세인-맥마흔 서한과 1917년의 발포어 선언의 내용이다.

1차 세계대전 당시 오스만제국과의 전쟁에서 열세에 놓인 영국은 현지 아랍인들의 도움이 필요했다. 그래서 당시 카이로 주제 영국 고등판무관 맥마흔은 1915년 1월부터 1916년 3월까지 10여 차례에 걸쳐 사우디아라비아의 후세인에게 서한을 보냈다. 내용은 만일 전쟁에서 오스만제국을 물리치면 그 대가로 팔레스타인 지역에 아랍국가의 독립을 보장해 준다는 것이었다. 이것이 바로 맥마흔-후세인 서한의 내용이다. 이 서한을 철석같이 믿은 아랍인들은 목숨을 걸고 영국 편에 서서 오스만제국과 싸웠다. 그리고 마침내 영국은 예루살렘을 점령했다. 이때 활약한 사람 중의 하나가 그 유명한 '아라비아의 로렌스'이다.

그러나 영국은 맥마흔이 후세인과 접촉하는 동시에 프랑스와 비밀협정을 체결했다. 전후 영국과 프랑스가 함께 중동지역을 분할 통치한다는 내용이었다. 즉 프랑스는 시리아와 레바논을, 영국은 이라크와 요르단 지역을 통치하고 팔레스타인은 공동으로 관리한다는 것이다. 사이크스-피코조약이라 부르는 것은 영국 대표 마크 사이크스와 프랑스 대표 조르주 피코가 조약을 맺었기 때문이다. 실제로 전쟁 후 조약대로 영국과 프랑스는 중동을 식민지로 삼아 1955년까지 이 지역을 식민통치했다.

뒤이어 나온 발포어선언(1917). 아랍인에게 독립을 약속한 영국은 이번엔 유대인들의 도움을 끌어내려 했다. 이를 위해 영국 외상 발포어는 유대계 은행가 로스차일드에게 팔레스타인 땅에 유대국가 건설을 지지한다고 편지를 보냈다. 로스차일드는 당시는 물론 지금도 세계 5대 은행 중 하나인 뱅크 오브 아메리카를 소유한 다국적 금융자본이다. 발포어가 보낸 서신은 사실상 유대인들의 독립선언과도 같은 것이었다. 이를 근거로 유대인들은 미국을 통해 대규모의 전쟁 물자를 지원했고, 마침내 영국은 전쟁에서 승리했다.

즉 어떻게 해서든 전쟁에서 승리하기 위해 영국은 아랍인들에겐 맥마흔-후세인 서한을, 유대인들에게는 발포어-로스차일드 서한을 통해 양쪽에 독립약속을 남발했다. 그럼에도 전쟁 직후 영국은 모두의 약속을 져버리고 팔레스타인을 자신의 위임통치지역으로 만들었다. 영국의 발포어선언과 맥마흔선언은 독립을 열망했던 아랍인들의 분노로 이어졌다. 영국은 아랍인들의 반영국 반유대인 테러와 습격에 봉착하자 팔레스타인 문제를 유엔에 떠넘겼다.

유엔은 11개국이 참여하는 유엔 팔레스타인 특별위원회는 조직했다. 특별위원회의 조사를 통해 팔레스타인 지역을 아랍인과 유대인 지구로 분할한다는 다수안과 아랍인과 유대인을 포괄하여 연방 국가를 창설한다는 소수안 두 가지를 건의했다. 물론 아랍인들은 거부했다. 1947년 11월 유엔총회는 표결을 통해 팔레스타인 지역을 아랍인 구역과 유대인 구역으로 분할한다는 결정을 내렸다. 분할결정으로 이스라엘은 1948년 5월 14일에 건국을 선포했고, 이에 분노한 아랍은 이스라엘에 대한 대대적인 전쟁을 시작했다. 이것이 팔레스타인 땅을 피로 물들게 한 중동분쟁의 신호탄이 되었다. 이후 1956년의 제2차 중동전쟁, 1967년의 제3차 중동전쟁, 1973년의 제4차 중동전쟁으로 이어져 갔다.


이강근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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