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와 연극의 만남

[ 최종률장로의 빈방있습니까? ] 설교와 연극의 만남

최종률장로 webmaster@pckworld.com
2012년 10월 05일(금) 10:59
[최종률장로의 빈방있습니까?]

어느 해인가 소망아카데미의 간사님으로부터 특강을 의뢰하는 전화를 받았다. 주제가 '설교와 연극의 만남'이라니 무척이나 반갑고 신선했다. 평소 설교를 하나의 모노드라마(일인극)로 봐도 큰 무리가 없겠다 생각하며 가끔은 객석에 앉아있는 관객처럼 연기의 관점에서 설교자를 바라보는 다소 불손한(?) 시도가 있던 필자에게는 언젠가 꼭 다루고 싶었던 주제였기 때문이다. 소망아카데미는 소망교회를 은퇴하신 곽선희목사님께서 설립하신 기관인데, 목회에 지친 중견 목사님들로 하여금 목회 현장으로부터 잠시 벗어나 조용한 환경 속에서 쉼을 가지며 스스로를 돌아보는 시간을 갖게하는 일종의 목회자 수양관이라는 인상을 받았다. 기수별로 입소하여 기도와 묵상 후엔 산책로를 따라 산책도 하고, 같은 고민을 가지고 있는 다른 목회자들과 대화를 통해 목회정보나 비전을 공유하기도 하고 다양한 특강도 들으며 재충전의 기회를 제공받는 곳이다. 특히 곽 목사님이 직접 후배 목사들을 개인적으로 면담하면서 목회 상담을 하는 프로그램이 있어서 목회자들로서는 원로로부터 구체적인 진단과 실제적인 처방을 받을 수 있는 절호의 기회가 아니겠는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아카데미는 수원 외곽의 저수지 옆 풍치 좋은 언덕에 자리하고 있었다. 약 30여 명의 목사님들이 사무동 옆의 소강당에서 기다리고 있다가 필자를 박수로 맞아주셨다. 쉬러 오신 분들이 대상이니 지루하고 머리 아픈 원론 강의는 될 수 있는 대로 짧게 하고 전체가 재미있게 동참할 수 있는 실습 위주로 진행하기로 미리 작정하고 있었다.
 
제1강은 연극의 본질과 연기의 원리, 설교와 연극기법의 접목, 그리고 거기에 따른 실습, 제2강은 실습II와 문화선교의 현장사역 보고로 구성했다. 설교와 연극의 만남이라는 강의주제는 중년의 목사님들에게 흥미를 유발시키기에는 안성마춤이었다. 설교는 연극과 너무 닮아있다. 설교의 원고는 희곡(play)에 해당하고 메시지는 연극의 주제에 해당한다. 설교 내용에는 여러 인물들이 등장하고 설교자는 회중을 관객 삼아 일인다역을 소화하는 배우처럼 감정과 의미를 효과적으로, 그리고 진정성을 가지고 전달한다. 서술문은 해설이고 대화체는 그대로 주고 받는 대사가 된다. 말의 강약, 고저, 완급, 음색을 조절하며 변화를 꾀하고 표정과 제스처와 시선의 변화, 대로는 동선을 통해 회중을 설교에 몰입시킨다. 설교대에는 별도의 독립조명이 떨어지고 있으며 거기다 찬양대의 찬양이나 방송실에서 적절한 타이밍에 잘 선곡된 배경음악을 깔아준다면 그 설교 주제의 전달력과 호소력은 배가 된다! 분장과 무대 의상이 없을 뿐 설교의 모든 구성과 과정이 일인극과 다를 바가 없다.
 
어떤 목사님은 오뉴월 대예배 설교를 똑같은 어조, 똑같은 크기와 속도로 하고는 성도들이 존다고 역정을 낸다. 원인 제공을 한 당신의 책임은 생각하지 않고. 이 변덕 많고 참을성 없는 세대 가운데 말씀을 효율적으로 전하기 위해 최선을 다해야 할 것은 당연하다.
 
물론 설교에 인위적인 기술을 가미할 필요가 있는가 라는 견해도 옳다. 사도 바울은 언변이 약했고 어눌했다지만 그의 설교는 영적 권위로 가득차지 않았던가. 그것은 마치 감사하는 마음과 믿음으로 부르면 족하지, 찬양대원이 꼭 성악적으로 다듬어져야만 하는가 라는 질문과도 같다.
 
어떤 예배에서는 노(老) 권사님들의 흔들리는 음정과 불협화음에도 불구하고 그런 찬양에서 은혜를 받을 수도 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표현력이나 기술적인 바탕이 갖춰지지 않아도 때로는 은혜의 통로가 될 수 있다는 것이지 그런 조건들을 갖출 필요가 없다는 것은 아니라는 점이다. 우리에게 나눠주신 달란트를 최대한으로 갈고 닦으며 활용하고 은사를 더욱 개발하여 주의 일에 적용하는 일은 마땅히 해야 할 우리의 몫이다.
 
그날 강의를 마친 후 수강하신 목사님들과 함께 점심 식사를 나누는 자리에서 여러 목사님들이 앞으로 설교하는 데에 큰 도움이 될 것 같다고 격려해주셔서 얼마나 감사하던지. 게다가 몇몇 목사님들로부터 극단 '증언'의 순회공연 초청까지 받게 됐으니 일거양득이 따로 없었다. 얼마 후 그 다음 기수의 강의를 위해 다시 아카데미를 찾았을 때, 지난 기수의 설문조사 결과 특강 중에서 '설교와 연극의 만남'이 가장 좋았다고 응답했다는 간사님의 말을 전해들을 수 있었다. 내 자랑 같아서 낯이 화끈거리지만 그만큼 필자에게나 수강하신 목사님들에게나 현실적이고 의미 있는 프로그램이었음을 밝히고 싶다.


최종률장로 / 연극연출가ㆍ배우ㆍ한동대 겸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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