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정한 리더, 광해, 왕이 된 남자

[ 말씀&MOVIE ] 영화 - 광해

최성수목사 webmaster@pckworld.com
2012년 09월 21일(금) 15:37
[말씀&MOVIE]

추창민 감독, 사극 드라마, 15세, 2012
 
   
대통령 후보들의 윤곽이 드러나고 있다. '나는 왕이로소이다'도 그렇지만 '광해'는 이때를 겨냥해서 제작된 것임에 틀림없는 영화다. 의도가 그렇기에 이 영화들은 국가적인 리더를 선택하는 데에 있어서 감정이나 인기 혹은 화려한 정치 공약에 휘둘리지 않는 국민들의 정치 참여 의식을 고취시키는 데에 도움을 준다. 영화 한 편이 대통령 선거에서 결정적인 영향력을 행사할 수는 없지만, 영화를 어떻게 대하느냐에 따라 충분히 그럴 수도 있다.
 
세종대왕을 가지고 놀았던 코미디 판타지 '나는 왕이로소이다'에서와 같이 '광해' 역시 일인이역을 통해 진짜와 가짜 임금을 등장시킨다. 백성과 임금의 관계라는 측면에서는 두 영화가 동일한 궤도를 달리고 유사한 방식을 채택한다. 주제 역시 백성을 위한 임금의 도리에 대한 것이다. 그러나 그것을 성찰하는 과정은 다르다. 전자는 주로 임금의 민생행보에 초점을 맞추었다면, 후자는 15일간의 민생을 위한 통치 행위에 집중한다. 두 영화를 종합하여 생각해보면, 대통령 당선을 위한 노력을 평가하는 일과 통치 이념을 판단하는 일에 있어서 혜안을 얻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다양한 측면에서 일취월장으로 성장하는 한국 영화가 세계 영화계에서 좋은 평가를 받고 있는 현실이지만, 두 영화는 무엇보다 감독들의 뛰어난 영화적인 상상력에 감탄하지 않을 수 없게 만든다.
 
조선 제15대 왕 광해군은 당대의 역사가들에 의해 폭군으로 평가받았다. 실록에 판단력이 흐린 임금을 의미하는 '혼군(昏君)'으로 기록될 정도였고 결국 유배지에서 생을 마쳐야 했다, 이런 까닭에 그는 다른 임금들처럼 '대군'이 아니라 '군'으로 불렸다. 그러나 그의 재임기간에 시행된 국내 및 외교정치를 보면 꼭 그렇게만 볼 수 없는 무엇이 있었던 것 같다. 그리하여 1980년대부터 정치와 역사학계는 광해군을 다시 보기 시작했는데, '광해'의 제작은 바로 이런 노력의 한 결과에 착안해서 이뤄진 것이라고 생각한다. 특히 광해군을 재평가하면서 그가 폭군이 될 수밖에 없는 이유에 대해 감독은 궐내에서 그의 생명을 노리는 세력들의 지속적인 반정시도 및 독살 위협 때문이라고 해석하는 듯하다. 역사가들의 평가에 기초한 것이겠지만, 여하튼 '광해'는 재임기간 중에 조선의 진정한 임금으로서 평가받았던 15일 동안의 기간을-역사적인 기록이 없음에도 불구하고-영화적 상상력으로 재구성한 것이다.
 
상반된 이미지와 평가 사이가 너무 멀었던 것일까? 감독은 가짜 임금을 등장시킴으로써 당대의 상반된 평가에서 느끼지 않을 수 없는 거리감을 좁혀주었다. 곧 평소 이미지와는 달리 15일 동안의 행적을 통해 전혀 다른 평가를 얻은 이유를 가짜 임금의 행적에 돌린 것이다. 동일 인물을 두고는 설명하기 어려운 변화라고 생각했기 때문일 것이다. 영화가 집중하는 부분은 가짜 임금으로서 행세하며 벌어지는 해프닝이다. 즉, 꾸준한 시해 위협에 노출된 광해군(이병헌 분)은 갑자기 의식을 잃게 되는데, 독살 시도로 판단한 충신 허균(류승룡 분)은 급히 임금을 피신시킨 후에 임금의 부재로 인해 초래될 정치적인 혼란을 막기 위한 방책을 모색한다. 이 때문에 천민 출신의 하선은 임금과 비슷한 외모를 가졌다는 이유로 강제적으로 임금을 연기하게 된다. 이 부분은 어느 정도 '왕의 남자'를 연상케 하는데, 그야 말로 광대가 임금을 가지고 노는 일이었다. 가짜가 진짜를 행세하면서 진정한 임금의 도리를 알아가는 과정이 코믹하면서도 흥미진진하게 연출되었고 또 배우들의 뛰어난 연기가 돋보이는 부분이다. 감독의 의도는, 한 나라의 임금으로서 겪는 정치적인 갈등 상황은 그것을 어떻게 대처하느냐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고 설득하려는 데에 있는 것 같다. 무엇보다 놓치지 말아야 할 부분은, 임금을 가지고 놀면서 '진정한 의미의 임금은 누구인가?'를 묻고 있다는 것이다. 더욱 놀라운 점은 이런 질문이 바로 진짜가 아닌 가짜를 통해 제기되었다는 것이다.
 
임금을 연기하면서 일거수일투족을 허균의 지시에 따라야만 했던 하선은 임금으로서 행세하기 위한 혹독한 노력을 해야 했는데, 백성들을 웃기고 울리는 만담가로서 기생에 빌붙어 살았던 천민 출신의 하선으로서는 쉽지 않은 일이었다. 그러나 워낙 타고난 재주가 있어서 임금을 연기하는 일이 그렇게 어렵지 만은 않았다. 문제는 그의 돌발적인 행동 때문에 일어났고, 바로 그의 돌발 행위를 가능하게 한 그의 진심이 영화의 중심메시지가 된다.
 
먼저, 많은 정치의 관례를 알지 못했던 하선은 백성들이 부당한 조세정책 때문에 기생이 되고 종이 되는 현실만을 안타깝게 생각했고, 이런 현실을 해결하려는 일념으로 관행에서 벗어나는 일을 서슴지 않고 행한다. 그리고 역모를 꾸몄다는 혐의를 받은 중전(한효주 분)의 오빠를 살려내는 일도 정치적인 의도나 목적이 아니라 오직 중전의 얼굴에서 사라진 웃음을 다시 찾아주겠다는 일념으로 감행한다. 외교 정책에서도 사대부의 명분을 앞세우는 신하들과는 달리 백성들의 안전과 평안을 염려하는 마음을 숨김없이 드러낸다. 임금의 권위와 위엄을 앞세우기보다는 한 인간의 인간됨과 생명을 소중히 생각하는 모습은 주변 사람들을 감동시키기에 충분했다. 궁을 떠나는 장면에서 드러나는 부분이지만, 그는 비록 가짜였지만, 민생을 위한 통치를 통해서 진짜로 존경받았다.
 
진정한 임금, 곧 올바른 국가적인 리더는 누구인가? 가짜 광해군을 통해서 드러난 사실은 정치는 백성을 위해 존재하는 것이며, 진정한 리더는 백성을 마음에 품고 사는 자라는 것이다.
 
 
최성수목사 / 神博ㆍ영화 및 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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