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더십과 지도자

[ 목양칼럼 ] 리더십과 지도자

김성규목사 webmaster@pckworld.com
2012년 09월 21일(금) 15:35
[목양칼럼]

현대 국가의 국민들이나 공동체의 지도자를 세우는 보편적인 방법은 선거이다. 선거를 통해 국가나 공동체는 새로운 리더십을 통해 정책이나 제도가 새로워지고 강한 힘을 갖는 미래지향적인 변화가 이뤄질 것이라고 기대한다. 발전을 위해 바람직하고 창의력이 있는 리더십이 선출되기를 기대하며 자신들도 그런 대열에 동참하기 위해 언론이나 세간의 풍문에 귀를 기울이고 설레는 마음으로 세워질 리더십을 기다린다. 혹자는 매우 적극적인 자세로 꼭 필요한 인물을 세우기 위해 절대적인 결단을 함과 동시에 선거의 세류에 뛰어들기도 한다.
 
그러나 어떤 선거 결과는 사람들의 마음과 기대를 저버리고 다툼과 비전이 확실치 않은 흔들거리는 인기에 편승한 빈 공약들 때문에 공동체 팔로워들의 열망과 기대는 폐지가 되어 연기로 날아가 흩어져 버리기도 한다. 어떤 리더십을 세워야 하는가는 쉽지 않은 심각한 권리이다.
 
요즘 우리들은 또 선거 열풍에 휘말려 있다. 훌륭한 모델은 알지만 누가 그런 지도자인가? 만성적 네거티브 선거 풍조로 진실을 판단할 수 없게 만드는 물고 물리는 정국이 계속 되고 있다. 정책은 없고 저급한 싸움만 난무해 치료약이 없는 판단 부재에 처하게 되지 않을까 우려된다. 경험의 원숙함과 혁신과 융합 중에 잘 선택하여 국민에게서 빼앗아 간 그 희망을 돌려주었으면 좋겠다. 기독교계에도 교단마다 정기 총회 를 치르면서 선거 열풍이 불고 리더십에 대한 기대와 열망이 있다. 진정한 리더는 누구인가? 성경 속의 리더십을 살펴보자.
 
예수님 시대에 알패오의 아들 레위가 있다, 그는 가버나움의 화물선 징세원으로 조롱받던 세리의 신분에서 "나를 좇으라"는 예수 그리스도의 부름에 따라 부유하게 해준 자신의 직업을 버리고 주의 뒤를 좇았다(마 9:10, 막 2:14, 눅 5:27,28) 마태(하나님의 선물)란 이름을 스승 예수로부터 받으며 사도가 되어 말 보다는 몸으로 실천하는 매우 진실하고 겸손한 사도의 삶을 살았다. 그리스도의 부활 이후 12명의 사도중 하나로 마가의 다락방에 있었고 예루살렘 초대교회 설립 멤버로 모든 재산을 팔아 교회를 위해 헌금하였으며 행동하는 교회 지도자가 되어 과거에 저질렀던 허물도 해결 받게 된다. 돈과 사적인 욕심에 부끄러운 모습을 보이는 교회 리더십들에게 세리 마태는 많은 말을 하고 있다.
 
역사 속에는 악한 리더십도 존재했다. 예수님을 죽게 내어준 제5대 로마 총독 본디오 빌라도처럼 국가 및 공동체의 통치 원리를 오직 사익에서 찾는 사람이 있다. 폭력을 통해 이스라엘 민족들의 지상행복을 추구했던 젤롯당 바라바, 그는 결국 영원한 영광의 예수님을 죽이고 유대인의 고통을 오래도록 연장시킨 악행에 동원되었다. 현대사를 보면 등장하는 진정한 리더 흑인 민권 운동가 마틴 루터 킹 목사는 당시의 흑인들의 대표로 거칠게 폭력적이 아닌 평화의 사람으로 백인 지도층과 흑인들에게 "나는 꿈이 있습니다. 나는 어느 날 옛 노예의 아들들이 주인의 아들들과 함께 손을 잡고 형제처럼 사는 꿈이 있습니다. 우리가 피부의 색깔이 아닌 인격을 기준으로 평가 받는 세상이 오는 꿈을 꾸고 있습니다"라고 꿈과 비전의 언어로 그는 마침내 미국이 흑인 오바마를 대통령으로 세우는 나라가 되게 하였다.
 
'타이타닉'이라는 영화 속에도 목숨을 아끼지 않는 훌륭한 리더십으로 손색이 없는 무명인들을 볼 수 있다. 침몰하는 배를 구명정을 내리도록 키를 붙들고 배와 함께 침몰하는 스미스 함장, 라이프 보트에 아이들과 여자들을 싣어 살리기 위해서 끝까지 노력하는 선원들, 침몰하는 마지막 순간까지 악기를 붙들고 찬송을 연주하던 밴드 리더 월레스 하틀리와 단원들, 실제 인물이었던 그는 계속 '예수 그리스도, 그분을 의지하십시오. 그를 가까이 하십시오. 그가 소망이십니다'라고 소리 친 복음의 리더였다.
 
시대의 악한 리더는 선한 리더십과 공존했다. 리더십을 선택하는 정의로운 기준이 우리에게 필요한 시대이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세상을 지배하고 이끌어 나갈 지도자는 폭력을 부인하고 평화를 사랑하는 사람들이다. 선택은 우리의 권리지만 결과도 우리의 몫임을 다시 기억하자.


김성규목사/하람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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