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품보다는 훈장을 선호하라"

[ 젊은이를 위한 팡세 ] 하나님의 상급을 흠모하라

김권수목사 webmaster@pckworld.com
2012년 09월 14일(금) 11:04

[젊은이를 위한 팡세]

"하나님의 상급 받는
'훈장신앙인'이 많은 나라
열강이 감당치 못할 것"

명품이나 훈장을 자랑하는 사람들이 있다. 명품이나 훈장을 싫어하거나 미워하는 사람이 있을까? 부담스러워하는 사람은 얼마든지 있을 수 있지만 말이다. 명품과 훈장 가운데 굳이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면 귀하는 무엇을 선택하기 위해 에너지를 분출하겠는가? 명품과 훈장은 공히 매력이 있다는 측면이 있고, 명품이 밖에 드러난 숫자 개념에 의해 등급이 결정되는 성향이 있는 것처럼 훈장도 외적인 공적을 근거로 등급이 매겨지곤 한다.
 
하지만 명품과 훈장 사이에는 근본적인 차이점이 있다. 명품은 맘몬이즘의 영향을 많이 받지만 훈장은 존재이유와 목적 관점에서 등급이 매겨진다. 이런 평가 기준 때문에 명품보다는 훈장이 기독교적이다. 다섯 달란트 받은 자와 두 달란트 받은 자를 동시에 칭찬하시는 것을 보면 하나님은 숫자 개념보다는 자신의 존재이유와 목적 관점에서 칭찬하시고 평가하시고 등급을 매기시기 때문이다.
 
그러나 훈장 소지자 중에는 자신의 명예를 즐기기 위해서 죽음까지 불사하고 맡은 일에 최선을 다하는 사람도 있다. 따라서 양자 구분의 전천후 시금석은 경향성이다. 명품 디자인계에서 저명한 제이콥스는 "명품이란 다른 사람을 위해 치장하는 게 아니라 자신을 즐겁게 하기 위한 것"이라고 정의한다. 그 정의가 잘못되지 않았다면 명품은 자기 유익이란 측면에서 접근한다. 이에 비해 훈장은 자신의 희생과 절제를 통하여 타인과 공동체의 유익이란 측면이 강조되는 개념이다. 물론 명품을 가졌다고 명품인생이 되는 것은 아니듯이, 이타적인 삶을 사는 모양새가 있어서 훈장을 받는다고 해도 경향성이 자신을 향해 있다면 훈장인생이 되는 것은 아니다.
 
헌신 봉사한다고 하지만 자신의 정신적 쾌락을 위해서 그리하는 것하고, 사랑하기에 섬기는 마음으로 그리하는 것 하고는 차이가 있다. 겉모양과 명분은 같을 지라도 자신의 야망을 위해서 대선 출마하는 것하고 국가의 미래를 위해서 대선 출마하는 것하고는 본질적으로 같을 수 없다. 자기 몸을 불사르게 내어줄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아무것도 아니라는 말씀과 같은 맥락이다. 회의할 때 많은 사람을 설득할만한 주장이라고 해도 그래서 부러움을 살만한 명품성 견해라고 해도 경향성이 자기중심적인가 아니면 공동체 중심적인가에 따라 명품발언이 될 수도 있고 훈장발언이 될 수도 있다.  
 
시쳇말(時體-)에 이등 한다고 크게 문제될 것은 없지만 이류인생이 되면 크게 문제가 된다는 말이 있다. 그러나 새 역사의 지평을 열어갔던 믿음의 선배들은 이류인생조차도 크게 문제를 삼지 않지만 이류신앙인이 되는 것은 크게 태클을 건다. 그래서 명품은 갖고 있지 않고, 남의 주목을 받는 명품인생은 못 될지라도, 하나님의 상급을 받는 훈장 신앙인이 많은 나라의 미래는 열강이 감당치 못한다.


김권수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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