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기할 수 없었던 회관 건축의 꿈

[ 이연옥명예회장의 향유 가득한 옥합 ] 여전도회관 건축 회고

이연옥명예회장 webmaster@pckworld.com
2012년 09월 11일(화) 17:01

[이연옥명예회장의 향유 가득한 옥합]

미국 장로교회가 사택들을 매각하여 한국교회를 위해 사용하겠다고 이미 결정을 내린 만큼, 그 결정의 방침을 매각에 두지 말고 한국교회에 둔다면, 그 땅을 한국교회의 유일한 여성단체인 여전도회에게 줄 수도 있지 않겠는가라는 생각이 들었다. 만일 그렇게 된다면 얼마나 좋으랴! 그래서 미국 장로교회 총회에 우리의 꿈과 희망을 문의했다. 그러나 우리에게 날아온 대답은 아주 매몰찰 정도로 간결했다. 이미 미국 장로교회 총회의 재산관리이사회가 우선 매각하기로 결정했고 그 결정을 재론할 수 없다는 내용이었다. 그 답변은 잠시나마 우리의 가슴을 한껏 부풀어 오느게 한 꿈과 희망을 무너지게 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이상스럽게도 그 꿈이 완전히 사라지지 않는 것이었다. 무언가 길을 찾아보면 나올 것이라는 막연한 기대감이 남아 있었다. 그래서 다시 한 번 이승만박사와 김인식목사에게 "어떤 길이 없겠는가?"라고 상의했다. 그랬더니 두 분이 "재론할 수 있는 길이 없지는 않다. 미국 사람들은 아주 특별한 이슈가 제기되었을 때 그 이슈의 타당성이 인정되면 이미 결정해 놓은 안건이라 하더라도 재론하는 경우가 있다"고 용기를 주셨다.
 
'재론이 가능하다'는 조언으로 무너졌던 희망에 다시 생기가 돋기 시작했다. 미국 장로교회에 우리의 희망사항을 다시 문의하기로 했다. 이번에는 좀 더 적극적인 방법을 사용하기로 했다. 1982년도 8월에 열린 여전도회전국연합회 정기총회에서 나는 미국 장로교회 총회에 선교사 사택대지를 우리에게 기증해 달라는 탄원서를 보내기로 결의했다. 그 탄원서에 총대 6백명 전원이 서명을 했다. 서명된 탄원서를 내가 직접 들고 미국으로 날아갔다. 비행기 안에서 내내 기도하면서 만나야 할 사람들과 어떤 대화를 나눌 것인지 구상했다. 엄청난 긴장 때문에 마음이 무거웠다. 나는 미국장로교회 총회의 총무 맥크라우드목사를 만났다. 그에게 한국 여전도회의 회관 건축이 얼마나 중요하고 시급한 사안인지 알리는 탄원서를 제출했다. 맥크라우드가 나에게 물었다. "(단지) 땅 기증 문제 하나 때문에 (한국에서) 미국에 왔습니까?" 내 대답은 분명했다. "네, 오로지 그것 하나 때문에 여기까지 왔습니다." 맥크라우드 총무는 매우 난처해하면서 재산관리위원회 이사회가 내린 결정은 재론이 불가능하다고 설명했다. 결국 여전도회전국연합회 총대 전원이 서명한 탄원서는 미국 장로교회를 설득하지 못했다.
 
그러나 나는 이대로 포기할 수가 없었다. 나는 미국 장로교회를 다시 설득해 보기로 했다. 이번에는 그 땅을 그냥 기증해 주십사 문의하는 것이 아니라 그 땅을 기증해 주면 그곳에서 우리가 무엇 무엇을 하겠다는 구체적인 대안을 마련해서 설득해 보기로 했다. 이때 나에게 번개처럼 번쩍이며 떠오르는 아이디어가 있었다. 그것은 바로 '평생교육'이었다. '평생교육'은 1970~80년대에 미국 전 지역의 각 대학마다 유행처럼 생겨난 교육 프로그램이었다. 미국의 평생교육 프로그램에 착안해 한국교회의 여성을 위한 평생교육 프로그램을 만들고, 이 교육 프로그램으로 미국 장로교회 총회를 설득해 보기로 했다. 우선 미국 장로교회의 제도에 비추어서 한국교회의 현안 문제를 설명했는데, 미국교회에서는 여성안수가 제도로 잘 정착되어서 여성목사와 여성장로가 배출되었고, 이에따라 여성 지도자도 양육되어서 여성 지도력이 탁월하게 발휘되었다. 이에 비해 한국의 장로교회에서는 여성 안수 문제가 총회에 상정되어 계속 논의하는 중에 있고, 이에 따라 여성의 지도력이 아직 제도적으로 공인받지 못한 상태인데, 이런 상태에서 교회 여성에게 여성 의식을 불어 넣고 여성 지도자 배출을 위한 평생교육 프로그램을 실시하는 것이 중요하고도 시급하다는 점을 호소했다. 마지막에는 이런 평생교육 프로그램을 위해 여전도회 회관 건축이 시급하다는 주장을 펼쳤다. 이러한 내용들을 문건으로 만들어서 영어로 번역했다. 이 문건에 여전도회전국연합회 총대 전원이 또 다시 서명했다. 이것을 들고서 나는 다시 미국으로 날아갔다.

 
이연옥명예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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