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63회, 64회 총회장 김두봉목사, 조원곤목사

[ 김수진목사의 총회장 열전 ] 김두봉-조원곤 전총회장

김수진목사 webmaster@pckworld.com
2012년 09월 07일(금) 15:58
[김수진목사의 총회장 열전]

제63회 총회장 김두봉목사
 
김두봉(金斗鳳, 1924-2006)목사는 경북 영일군 기계면 생법리에서 김순형과 박시천 사이에서 출생하였으며, 일찍이 모태 신앙으로 생법교회에 출석하였다. 선친 되신 김순형 장로의 재력으로 일본 오사카에 있는 중학교에 진학하여 유학생활을 하던 중 태평양전쟁으로 모든 중학생들이 지원하여 전쟁터에 나가고 있을 때 양심적인 일본인 담임교사의 권유로 졸업을 하자마자 귀국을 하게 됐다.
 
때마침 김두봉은 하나님의 은혜로 일본군인으로 징집되지 않았던 일을 생각해서 목사가 되고자 서울 용산구 동자동에 있는 조선신학교에 진학하여 학부 3년을 다니던 중 6ㆍ25전쟁이 일어나자 고향으로 피난을 갔다. 부산에서 임시로 개학한다는 소식을 듣고 가건물에서 얼마동안 교육을 받고 1951년 7월 피난지 부산에서 졸업을 하였다. 1954년 3월 6일 경주제일교회에서 목사청원을 받고 1954년 9월 경동노회에서 목사안수를 받았다. 때마침 그의 설교에 큰 감화를 받았던 부산 소정교회에서는 1961년에서 반 강제적으로 청빙해 갔다.
 
부산 소정교회에서 목회한 김두봉 목사는 조선신학교 출신임에도 불구하고 1978년 9월 서울 영락교회에서 모이는 제63회 총회에서 총회장으로 선출되었다. 특별히 김두봉 총회장은 유신 독재 하에서 노동자들을 위해 목회하고 있는 도신산업선교회에 대해서 불순세력집단으로 보고 취한 행동을 묵과 할 수 없어서 1979년 8월 15일 광복절을 맞이하여 기본적인 입장을 정리하여 정부와 언론의 왜곡보도에 대해서 중지하고 도시산업선교회에서 일하다가 긴급조치위반으로 구속된 본 교단의 목회자를 석방하라는 내용의 성명서를 발표했던 일이 있었다. 당시로서는 이러한 성명서를 낸다는 게 보통 힘든 일이 아니었지만 기독교의 본질을 잘 인식했던 김두봉 총회장은 도시산업선교회에서 하고 있는 선교운동이 인생 밑바닥에서 고생하고 있는 수많은 노동자들의 이웃이라는 사실을 인식했기에 그 막강한 유신 독재 하에서 예장의 수장(首長)으로서 그 위상을 확립하는 총회장이었다.  
 
제64회 총회장 조원곤목사
 
조원곤(趙元坤, 1921-현존)목사는 전북 김제에서 출생 하였다. 해방을 만나자 신학의 뜻을 두고 1945년 조선신학교에 진학을 하였다. 그런데 1947년 조선신학교에서 김재준교수의 신학방법론이 문제가 되자 자퇴하고 박형룡박사가 설립한 장로회신학교에 편입학을 하였다. 졸업하자 곧 옥구 개정교회의 청빙을 받고 군산노회에서 목사안수를 받고 시무를 하였다. 그 후 이리신광교회, 서울 신당중앙교회, 순천중앙교회의 청빙을 받고 목회를 하였다.
 
1971년 광주 양림교회의 청빙을 받고 광주에서 사역을 하였다. 성공적인 그의 목회로 광주 양림교회는 계속 부흥되어 갔었으며, 이 일로 그의 명성은 전국적으로 알려졌다. 서울 영락교회에서는 모이는 1979년 9월 64회 총회에서 총회장으로 선임됐다. 그런데 조원곤 목사가 총회장으로 선임 된지 얼마 안 되어 10ㆍ26 사태가 일어났으며, 그 다음해인 1980년 5월 18일에는 그가 몸담고 있는 광주지역에서 5ㆍ18 광주 민주화 운동이 일어났다.
 
그는 10ㆍ26사태가 일어난지 얼마 안되어 12ㆍ12 신군부 쿠데타가 일어나자 이에 대한 견해를 '시국선언서'라 하여 총회장의 명의로 전국교회에 보냈던 일이 있었다. 5개 항으로 된 '시국선언서'이지만 이중 3항을 소개하면 하며 다음과 같다. "우리교단은 그 동안 침체되었던 정치발전을 포함한 균형된 국가발전이 가능해야 될 것을 확인한다. 그러므로 우리교단은 정의로우며 모든 사람들이 참여할 수 있으며, 지속해 나갈 수 있는 사회와 통일된 국가를 이룩하기 위해 우리 교단에게 주어진 시대적 사명이 지대함을 고백한다. 그러므로 앞으로 전개될 정치 발전의 절차나 헌법개정의 내용은 신앙과 선교의 자유가 완전 보장되며 인권과 사회정의가 구현 될 수 있도록 우리 교단은 예언자적 사명을 다 하는 일에 더욱 충실 할 것이다." 조원곤목사는 총회장으로서 당시 상황에 맞는 말을 하였으며, 더욱이 호남지방에서 목회하면서 많은 군부독재로부터 차별을 받았던 사실을 잘 알았기에 이런 글을 발표 할 수 있었다. 1983년 조기 은퇴하고 미국에서 여생을 보내고 있다.
 
 
김수진목사/한국교회사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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