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사회에서 이웃은 누구인가, 영화-이웃사람

[ 말씀&MOVIE ] 영화-이웃사람

최성수목사 webmaster@pckworld.com
2012년 09월 03일(월) 13:58
[말씀&MOVIE] 이웃사람(김휘 감독, 범죄 스릴러, 청소년관람불가, 2012)

'이웃사람'은 만화작가 강풀의 동명 만화를 원작으로 해서 만든 영화다. 강풀의 만화는 건전한 내용은 물론이고(혹 내용은 그렇지 않다 해도) 인간 본질의 따뜻한 정서를 구현하는 이미지로 잘 알려져 있다. 지금까지 그의 만화를 바탕으로 만들어진 영화들이 원작에 대한 폭발적인 관심에 비해 저조한 흥행을 기록한 이유에 대해서는 다각도로 설명되고 있지만, 이번에 개봉된 '이웃사람'은 예외가 될 것이라는 분석이 많다. 화려한 캐스팅과 그에 걸맞은 훌륭한 연기는 물론이고, 범죄심리학적인 관점에서 볼 때 캐릭터들의 심리가 아주 세밀하게 다뤄졌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물론 잔혹한 연쇄살인범을 이웃으로 설정하면서 한편에서는 현실에서 이웃에 대한 두려움과 경각심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는 우려를 나타내 보이기도 한다.
 
영화는 사실 그런 면이 없지 않다. 살인 사건의 현장 주변에 살고 있는 사람들은 범인들의 이웃이었고, 그들은 범인이 평소에 보였던 이미지와는 아주 다르게 끔찍한 살인범이었다는 사실을 알고는 경악한다. 현실에서 범인과 피해자 모두는 원하든 원하지 않든 누군가의 이웃임에 분명하다. 범인의 이웃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함으로써 아마도 영화를 본 사람들은 한 동안 이웃에 대한 경계심으로 긴장하며 살아갈 것이라는 생각이 들 정도다. 그러나 엄밀한 의미에서 영화의 포인트는 이웃에 대한 경각심을 일깨우기 위한 것이 아니라 이웃으로서 살아가면서 우리 자신은 누구였는가 하는 것을 묻는 데에 있다. 다시 말해서 이웃으로서 우리는 누구인가 하는 것이다.
 
이런 질문에 집중하고 있기 때문에 감독은 '악마를 보았다'에서와 같이 사이코패스의 범죄 행각과 그에 대한 보복 행위를 보여주는 데에 초점을 맞추지 않았다. 기본적으로 범죄 스릴러로서 관객들의 긴장감을 고조시키기 위해 그런 면을 배제할 수 없겠지만, 영화의 초점은 다른 데에 있었다. 영화는 현대인들이 이웃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 지에 대한 몇 가지 관점을 제시하고 있다. 이와 관련해서 범죄와 범인에 대한 이웃들의 생각, 피해자에 대한 그들의 생각, 피해자의 관점에서 일상과 이웃이 어떻게 보일 것인지 하는 점들을 부각시키고 있다.
 
지배적인 것은 자본주의 사회에서 이웃이 갖는 여러 차원의 의미에 대한 성찰이다. 첫째, 이웃은 소비자일 뿐이다. 가방 가게의 주인은 자신이 판 가방과 범죄 현장에서 발견된 가방이 동일한 것임을 확인하고는 신고할 마음을 갖지만, 가게 운영에 미칠 피해를 염려해서 신고를 주저한다. 오직 그가 가방 값으로 받은 수표의 진위여부만을 확인한 후에 안도의 한숨을 내쉴 뿐이다. 다소 다르지는 하지만 피자 가게의 주인도 마찬가지고, 특히 아파트 부녀회장과 부녀회원 역시 유쾌하지 않은 소문으로 아파트값이 떨어질 것을 염려할 뿐, 사건의 중심에서 가장 큰 고통을 받고 있을 이웃인 피해자를 위로할 생각은 하지 않는다.
 
이에 비해 둘째, 이웃은 시혜와 구휼의 대상이다. 부녀회장의 딸 수연(김새론 분)은 관계에서 소외된 사람들을 돕는 일에 열심을 낸다. 관리 아저씨들에 대한 따뜻한 배려는 감동적이고 보기에도 훈훈함을 느끼게 해주는 장면들이다. 그런데 이런 따뜻한 마음은 같은 학교 동급생 피해자인 여선(김새론 일인이역)을 생각하면 참으로 아이러니하다. 여선은 창가에 매달린 감을 까치밥으로 생각할 정도로 따뜻한 마음을 가졌지만, 새엄마와의 관계에서뿐만 아니라 새로 전학 온 학교에서도 힘겹고 외로운 삶을 살아간다. 여선이가 비오는 밤거리를 우산도 없이 혼자 걸을 수밖에 없을 때, 누구도 그녀에게 친절을 베풀지 않았다. 자신의 아이들만을 태우고 떠나는 자동차의 모습은 무척 냉혹한 현실을 반영한다.
 
셋째, 이웃의 현실 문제에서 자신의 가족이나 자신들의 살길만을 생각하는 현대인의 모습이다. 비오는 밤거리 여선을 남겨두고 떠나는 자신의 자녀만을 태우고 떠나는 자동차의 모습에서 잘 나타나 있기도 하지만, 아파트 값이 떨어질 것을 염려하는 부녀회장을 비롯해서 범죄 사건을 보는 이웃들의 시각에서 엿볼 수 있다. 자신의 문제에 집중해서 신고를 하지 않는 관리인 역시 마찬가지다. 그러나 이런 이웃들의 이기적인 모습에도 불구하고 결국 범인을 잡을 수 있었던 큰 힘은 이웃에게서 나왔다는 사실을 눈여겨보아야 할 것이다.
 
우리 주위에는 이렇게 다양한 이야기를 갖고 사는 이웃들이 있다. 그러나 영화의 목적은 다양한 군상의 이웃의 모습을 재현하는 것에만 있지 않다. 그들과 그들이 서로에 대해 갖는 관계들을 보도록 함으로써 관객들에게 바로 그러한 이웃들에게 있어서 우리는 누구이고 또 누구이어야 하는가라는 질문을 성찰하게 한다. 나를 중심으로 생각할 때, 이웃은 언제나 내 삶의 방편이나 하나의 우연에 불과한 존재이지만, 도움을 필요로 하는 사람을 중심으로 생각한다면, 이웃은 돕는 자가 된다. 이것은 선한 사마리아 사람의 비유에서 이미 드러난 사실이다. 자신을 중심에 놓고 나의 이웃이 누구인지를 묻는 질문에 대해 예수님은 도움을 필요로 하는 사람을 중심에 놓고 그 사람과의 관계에서 어떤 이웃이 될 것인지를 고민하도록 이끄셨다.
 
이웃이란 그저 옆에 있거나 가까운 곳에서 사는 사람이 아니다. 나의 필요를 채워주는 사람도 아니다. 나의 가족이나 친척도 아니다. 내가 베푸는 구휼과 시혜의 대상도 아니다. 참된 이웃이란 도움을 필요로 하는 사람을 중심에 놓고 기꺼이 그에게 다가가거나 그와의 관계 맺음에 주저하지 않는 사람이다. 그의 구원과 행복을 위해 애쓰는 사람이다. 이럴 때 진정한 공동체 정신이 구현될 수 있다. 영화 '이웃사람'은 이웃을 의심하고 이웃에 대한 경각심을 불러일으키기보다는 보는 자들로 하여금 진정한 이웃의 모습을 환기한다. 보이는 장면에 매여 이웃을 경계하고 조심하라는 메시지만을 읽는다면, 영화의 진정한 의미를 놓치는 일이다.
 
 
최성수목사 / 神博ㆍ영화 및 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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