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전도회관이 종로5가에 건립된 배경

[ 이연옥명예회장의 향유 가득한 옥합 ] 여전도회관 건립 배경

이연옥명예회장 webmaster@pckworld.com
2012년 08월 28일(화) 10:10

세계화 시대를 맞이하여 계속교육원은 세계적 안목을 가진 21세기 한국교회 여성 지도자를 양성하고자 해외연수 프로그램을 개발했다. 1990년도부터 시작된 이 프로그램은 그동안 계속교육원에서 훈련받은 여전도회 회원에게 참가자격을 부여했다. 그 해 6월 하순부터 7월 중순까지 약 보름 동안 진행된 제1회 해외연수교육은 미국 시카고에 있는 맥코믹 신학교에서 가졌으며 15명이 참가했다. 교육내용은 성경연구(성서 속에서의 여성), 여성 지도력 훈련, 현대 신학의 흐름, 고고학 박물관 견학, 현지 한인교회 방문, 미국 교회 방문(록펠러 기념교회 등), 미국 장로교회 여전도회 활동, 미국교회의 노인복지 봉사 등 매우 다양했다. 연수교육을 무사히 잘 마친 연수생 회원들은 미국까지 와서 집중훈련을 받았다는 뿌듯한 기쁨을 누리며 수료식을 가졌다. 이들은 이제 미국 연수교육을 통해 세계를 품는 여성이 되었을 뿐만 아니라 성경을 통해 말씀하시는 하나님께 더욱 간절히 나아가는 기독 여성이 되었다. 제2회 해외연수교육(1991.7.5~24)에는 16명이 참가했고, 참가자들은 맥코믹 신학교에서 연수훈련을 마친 다음 미국장로교회 여성대회에 참석했다.
 
미국 맥코믹 신학교에서 해외연수교육을 수료한 회원들에게 한 층 더 높은 단계의 해외연수를 받는 프로그램을 마련했다. 이것은 해외연수 연장 교육 프로그램이었는데 1993년부터 미국 동부에 있는 프린스턴 신학교에서 이 교육을 실시했다. 그해 7월에 개최한 제1회 프린스턴 신학교 해외 연수 교육에는 15명이 참석했다. 이리하여 2005년도까지 맥코믹 신학교 해외연수교육은 총 13회에 걸쳐 191명이 수료했고 프린스턴 신학교 해외연수교육은 2006년도까지 총 8회에 걸쳐 1백13명이 이수했다. 해외연수교육은 지금도 높은 호응 속에서 잘 진행되고 있다.
 
이후 해외연수교육은 이스라엘 성지답사로 확대되었다. 성경의 땅인 이스라엘로 떠나는 순례답사가 2007년도에 시작되었고 3년 동안 해마다 실시했는데 매번 약 20명 내외의 회원들이 순례답사에 참석했다.
 
여전도회 전국연합회 창립 50주년인 1978년을 몇 해 앞둔 시점이었는데 50주년 기념사업에 대한 구상이 하나둘 나오면서 여러가지 아이디어가 제시됐다. 그 가운데 1963년 신의경 회장이 제안한 여전도회 회관 건축문제가 다시 수면 위로 올라왔다. 현재 임원단과 역대 임원들의 의견을 수렴한 끝에 여전도회 창립 50주년 기념사업으로 회관 건축을 추진하기로 했다. 1977년에 건축위원회가 구성되었고 내가 전국연합회의 회장이어서 건축위원장을 맡게 되었다. 내 양쪽 어깨 위에 엄청나게 무거운 짐이 얹어진 느낌이었다.
 
건축위원회는 회관을 건축할 땅부터 찾아야 했다. 서울 시내 여러 곳을 찾아다녔으나 마땅한 부지를 찾지 못했다. 계속 땅을 알아보다가 이제 막 개발되기 시작한 서울 강남 압구정동까지 갔다. 지금 현대교회가 있는 근처, 곧 현대 아파트 81동과 82동 근처였는데 그 당시에는 그곳이 온통 배 농사를 짓는 과수원이었다. 그곳에 땅 5백평이 나왔다고 어느 부동산 회사가 소개해 찾아가 보았다. 땅 한 평에 6만원이라고 했다. 그 정도의 땅값이면 아주 괜찮다는 위원회의 의견이 모아져서 여전도회 임원들도 그곳을 찾아가 보았다. 그리고 그곳에서 예배를 드렸다. 임원회가 이 일을 위해 모여서 의논하며 수차례 기도회를 열었다. 이제 임원회가 마음을 정하게 되어 1차 구두로 그 땅을 계약하기로 약속했고 다음날 직접 계약금을 들고 가서 계약서를 체결하기로 한 상태에서 마지막 기도회로 모였다.
 
기도회를 마치고 나오는데 임춘복총무가 갑자기 땅 계약을 반대하고 나섰다. 모두들 깜짝 놀라게 한 충격적인 발언이었다. 이 돌발적인 발언 때문에 모두 한참 동안 서로 얼굴만 쳐다보고 있다가 마음을 진정시킨 다음에 총무가 그렇게 발언한 이유가 무엇인지 물었다. 한마디로 "너무 멀다"는 것이었다. 서울 종로 5가를 기준으로 하여 거리를 재어 볼 때 강남의 압구정동은 한강을 건너가야 하므로 거리가 너무 멀다는 것이었다. 강남지역의 개발이 아직은 본격적으로 진행되지 않았던 시대였으므로 그 시대의 안목에서 보면 강남은 한강 건너 변두리 지역이었다.
 
이제 땅을 매입하기로 하고 정식으로 계약하려는 시점에서 브레이크가 걸렸다. 평소에 나는 마음 속으로 "만일 위원들 가운데 한 사람이라도 반대하게 되면 나는 그 자리에서 딱 멈추겠다"고 다짐했던 터라 계약체결을 보류시켰다. 그리고 총무에게 따지듯이 물었다. "반대하려면 진작 말할 것이지 계약서를 작성하려는 이 시점에서 왜 그러십니까?" 그러자 총무는 "회장님. 왠일인지 내 마음에 자꾸 그런 생각이 일어납니다"라고 응답했다. 나는 또 마음 속으로 하나님께서 총무를 통해 이번 계약이 성사되지 않게 하시려는 것으로 생각했다. 이 무렵, 여전도회가 소속된 장로교회의 교단(예장 통합) 총회가 종로 5가 연지동에 한국교회백주년기념관을 지으려고 터를 닦고 있었는데 장차 이 기념관에 총회본부가 들어설 테고 그렇다면 여전도회 회관이 총회본부 가까이에 있는 것이 훨씬 더 낫다는 견해가 대두되었다.

 
이연옥명예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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