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멘붕' 그리고 감정이입

[ 젊은이를 위한 팡세 ] 멘붕의 극복

김권수목사 webmaster@pckworld.com
2012년 08월 27일(월) 11:20
[젊은이를 위한 팡세]

'멘붕'이라는 신조어가 요즘 젊은이들 사이에서 화두입니다. 멘붕이란 '멘탈 붕괴'의 약어로 우리나라 신조어입니다. 근본적인 문제는 없지만 비본질적인 이유로 인해 어이없는 상황이 전개될 때 정신적인 충격으로 인해 멘탈이 붕괴되는 것이지요. 그 동안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골프낭자들을 챔피언십 문밖으로 몰아내곤 하던 청야니가 예선 탈락 등 계속 추락하는 슬럼프에 빠졌다고 합니다. 타이거 우즈보다도 더 어린나이에 메이저 대회 5승을 챙길 정도의 탄탄한 기본은 구비되었지만 두려움과 염려 때문에 파생된 멘붕 때문이라고 합니다.
 
이에 반해 요셉, 다윗, 다니엘과 바울 그리고 카타콤 공동체의 믿음의 선배들은 청야니의 상황과는 비교가 안 될 정도로 황당하고 어이없는 상황에 직면하지만 멘붕의 희생양이 되지는 않았습니다. 그 비결이 무엇이었습니까? 믿음의 영웅들은 흥망성쇠 주관자이신 하나님과 감정이입을 할 수 있었고, 이웃들과도 감정이입을 하는데 어려움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개인이건 공동체이건 멘붕의 유무는 감정이입과 불가불리의 관계에 있습니다. 범사 주관자 하나님과의 감정이입의 실패가 개인의 멘붕을 불러일으키고, 이웃에 대한 감정이입의 실패가 공동체의 멘붕을 불러일으킵니다. 상황에 맞게 감정이입을 하느냐 못하느냐에 따라 멘붕을 방지할 수도 있고 멘붕의 희생양이 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기준 없는 감정이입은 곤란합니다. 요즘의 인본주의 풍조는 공감의 능력, 감정이입의 능력이 모든 문제의 해결책이 되는 것인양 낭만적으로 가르치고 이야기합니다. 그렇지만 범죄자가 현장에서 웃는 것을 보고 감정이입해서 웃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그것은 인격파탄자입니다. 기독 청년들이라면 그보다 한발자국 더 나아가 건강한 감정이입을 모색해봐야 합니다.
 
건강한 감정이입은 경건훈련이 뒷받침되어야 합니다. 물론 시시각각 변하는 세상에서 감정이입을 제대로 하는 일이 도통 쉽지가 않습니다. 똑 같은 상황이지만 '새로움'과 '어색함' 사이에서 중심을 잡으려면 상식선이 있어야 합니다. 그것은 우리에게 절대적이면서도 변할 수 없고 시공을 초월한 진리의 속성을 구비해야 합니다. 이렇듯 '건강한 감정이입'이란 자신의 감정에 익숙해야만 소통되는 반쪽짜리 감정이입을 넘어서서 진리 중심의 감정이입이어야 합니다. 그런 연유로 멘붕의 극복이나 사전예방 차원에서 성경적 영성훈련이 필요합니다.
 
함께 웃어주고 함께 울어주기에도 버거운 유한한 세상입니다. 그래서 멘붕이라는 신조어가 파생된 것은 씁쓸하지만 당연한 일인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런 현실이기에 우는 사람에게 더 큰 아픔을 주고, 웃는 사람의 마음에 초를 치는 기독교인이 되어서는 곤란하고, 범사 주관자 하나님과 지체인 이웃들과 소통하며 감정이입하려는 노력을 포기한 채 자기연민과 자기집중에 허우적거리는 것도 안 됩니다. 성경적 감정이입을 훈련하면서 건강하게 멘붕 저항력을 키워가는 것, 더불어 살아가는 빛과 소금의 기독교인들에게 소중하다고 생각합니다.


김권수목사/동신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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