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명의식을 가지고 사는 사람

[ 젊은이를 위한 팡세 ] 소명의식이 있는가

김형준목사 webmaster@pckworld.com
2012년 08월 20일(월) 14:48
[젊은이를 위한 팡세]

의미요법(Logotherapy)의 창시자인 빅터 프랭클이 '죽음의 수용소에서'라는 책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산다는 것은 바로 질문을 받는 것입니다. 우리 모두는 대답해야 하는 자들입니다. 삶에 책임지고 답변하는 것 말입니다."
 
왜 사느냐는 질문에 삶을 통해서 답을 할 수 있는 것을 '소명'이라고 생각합니다. 소명은 내가 사는 이유와 삶의 의미를 알고 살아가는 것입니다. 소명은 여러가지로 설명할 수 있지만 보편적으로 상대적 가치가 아닌 절대적 가치를 가지고 있어야 합니다. 즉 내가 하는 일을 세속적 가치로 평가하지 않는 것입니다. 따라서 결과와 더불어 과정을 즐기고 누릴줄 아는 것입니다. 그리고 자신이 한 일에 대한 결과를 자신의 소유로만 삼지않고 기꺼히 나누어 주는 삶을 말합니다.
 
자신이 왜 살아야 하는지에 대한 답을 하지 못하는 삶은 살아있지만 죽은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자신의 절대가치와 자신이 하는 일에 대한 분명한 부르심을 이해할 때 삶에는 생명력이 넘치게 됩니다. 비교당함의 유혹에서 이길 수 있습니다. 결과의 풍요로움 앞에 교만하지 않고, 결과의 빈곤함 앞에 비굴하지 않습니다. 환경을 탓하지 않습니다. 자기에게 주어진 어떤 여건이든지 자신이 해야 할 일을 변함없이 이루어 갑니다. 그래서 환경의 다양함은 마치 무지개처럼 화려하고 풍성한 삶을 만들어 냅니다. 사도바울의 환경이 평탄했다면 그가 이루어가는 소명의 과정은 단순했을 것입니다. 다양하고 힘들수록 그의 삶은 많은 사람들에게 풍성함을 줄 수 있었고 하나님의 많은 모습들을 표현해 낼 수 있었습니다.
 
소명의식을 가지고 사는 사람에게는 관계성과 책임성의 문제와 씨름해야 합니다. 모세는 하나님께 부름받을 때 "자신은 누구이며 자신을 부르는 하나님은 누구십니까?"라는 질문을 했습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결정적으로 물어본 것이 "너희는 나를 누구라고 하느냐?"라는 것입니다. 이것은 관계성에 관한 질문이었습니다. 성경은 하나님과의 지속적인 관계의 이야기를 기록하고 있습니다. 관계성 중에 가장 강한 것이 바로 '사랑의 관계'입니다. 복음서와 사도행전의 큰 변화의 사이에 "네가 나를사랑하느냐?"라는 질문이 복음서의 마지막을 장식하면서 동시에 사도행전의 새로운 역사를 열고 있습니다. 자기를 부르신 그 분을 알고 사랑하기에, 자신이 하고 있는 일을 사랑하고 즐거워하게 되는 것입니다.
 
소명을 가지고 사는 사람에게 나타나는 또 하나의 요소는 '책임감'입니다. 이것은 마지막까지 자신이 서야하는 자리에 서게하는 것이요, 자신이 해야 할 일을 끝까지 하게 하는 것입니다. 책임감을 가진 사람은 길이 있어서 가는 것이 아닙니다. 자신이 길을 만들어서 가는 것입니다. 모세의 소명은 홍해를 길처럼 건너는 역사를 이루었습니다. 모세가 걸어 간 길을 최강의 바로군대는 건너지 못했습니다. 물속에서 죽었습니다. 시대를 새롭게 열어간 사람의 특징은 없던 길을 만들고, 불가능하다고 하던 것을 가능하게 만들었던 사람입니다. 그것은 바로 소명에서 나온 책임감이 만든 삶이었습니다.
 
오늘날을 감성세대라고 합니다. 그래서 변화와 자기중심적인 사고가 시대적 화두입니다. 게다가 실용주의적인 가치관이 물질주의와 만나면서 사람들은 물질과 자기만족과 사람들의 인기와 인정으로 가치를 인정받고 있습니다. 소명의 자리에 서십시오. 이것이 해결되기까지 고민하십시오. 그리고 질문하십시오. 모세의 인생을 만든 것은 궁전이나 광야의 장소나, 목자나 왕자의 자리나, 얼마의 세월이 걸렸느냐에 달려있지 않았습니다. 바로 소명에 눈을 뜨고 그것을 향해가는 그때부터 모세는 성경의 역사에 기록되기 시작했습니다. 소명을 위한 질문앞에 다시 서십시다. "너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 "너는 나를 사랑하느냐?" 신앙고백은 입술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삶을 통해 나타나야 할 사랑과 책임감입니다.


김형준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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