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가 나를 영화롭게 하리라

[ 생명의양식(설교) ] 환란이 있으면 기도하자

이호준목사 webmaster@pckworld.com
2012년 08월 10일(금) 14:53
[생명의 양식]

▶본문말씀 : "환난 날에 나를 부르라 내가 너를 건지리니 네가 나를 영화롭게 하리로다"(시 50:15)
 
 
 
여호와를 부르는 사람은 여호와를 영화롭게 하는 사람이 됩니다. 환난 날에 기도하는 사람은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삶으로 변화를 받습니다. 어떤 사람에게든지 환난이 있습니다. 삶이 있는 곳에는 고난이 있습니다. 태어나고, 늙고, 병들고, 죽는 것을 인생의 네 가지 고통이라고 생각하는 종교철학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자연의 이치일 뿐, 그것을 고통이라고 보는 것은 비관적인 관점입니다. 태어나고 죽는 것은 하나님의 섭리요 축복입니다.
 
사람으로 세상에 태어나는 것이 얼마나 큰 축복입니까? 이 세상 만물 중에 누가 창조주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를 수가 있겠습니까? 전능하시고 사랑 충만하신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를 수 있는 사람 중에 고난을 당한다 해서 절망하고 비관할 사람이 있겠습니까? 사람의 환난이나 고통은 오히려 하나님께로 더 가까이 다가가는 계기가 될 것입니다.
 
환난 날에 하나님을 부를 수 있는 믿음의 사람에게는 '생로병사(生老病死)'가 모두 하나님 앞에 더 가까이 다가가는 과정일 뿐입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두려워할 대상은 세상도 아니고 질병도 아니고 죽음도 아닙니다. 부활과 영생을 믿는다면 죽음도 두렵지 않아야 합니다. 죽음은 부활의 전제이기 때문입니다. 죽음이 없다면 부활도 없습니다. 그래서 부활과 영생은 모든 두려움을 물리치게 되는 것입니다.
 
의를 행하다가 당하는 고난은 오히려 찬송이 될 수가 있습니다. 그렇지만 죄 가운데 당하는 고난은 더욱 비참하게 느껴집니다. 어떤 경우라도 하나님 아버지를 찾아야 합니다. "주께서 인생으로 고생하며 근심하게 하심이 본심이 아니로다"(애 3:33)하셨고, 예레미야 애가 3장 22절에는 "여호와의 인자와 긍휼이 무궁하시므로 우리가 진멸되지 아니 함이니이다"라고 하셨습니다.
 
우리 민족도 환난이 많았습니다. 고구려 때는 수나라가 쳐들어오고 고려시대에는 몽고가 침략해오고 조선시대에는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이 있었고 20세기에는 일본이 강제 합병하여 35년 동안 압박을 받다가 해방되었고, 6ㆍ25사변 등의 역사적 환난이 많았지만 하나님 여호와의 긍휼로 오늘에 이르렀습니다.
 
근대 대한민국의 역사 발전은 기독교의 전파와 교회의 발전이 경제 성장이나 정치 발전과 그 궤도를 같이하고 있습니다. 외부의 침략이나 정치적 압제나 전쟁과 경제적 빈곤과 같은 환난 가운데서도 여호와 하나님께 부르짖는 기도가 응답되어진 것이라고 믿습니다. 환난을 당할 때에 절망하거나 포기하지 않고 하나님께 간절히 기도하는 자에게 하나님께서는 응답하실 준비가 항상 되어 있음을 믿어야 합니다. 아시스의 성 프란시스도 젊은 날에 열병으로 생사의 갈림길에서 그의 모친과 함께 하나님께 간절히 기도했더니 살려주셨고, 그 후 프란시스는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생애로 거듭났습니다.
 
과학자요 철학자인 프랑스의 파스칼도 전장에서 중상을 입고 고난 중에 하나님께 기도하고 여호와께서 건져주심으로 진정한 신자가 되었습니다. 세상에서 소망이 끊어지고 눈앞이 캄캄하고 생명의 줄이 끊어지려 할 때에도 간절히 찾고 찾으면 하나님은 만나주시는 줄 믿어야 합니다.
 
기도는 약속의 말씀을 붙잡고 믿음으로 드려야 합니다. 사도 바울이 로마로 행하던 중 지중해에서 14일 동안 태풍에 시달릴 때가 있었습니다. 복음전파의 사명을 이루기 위해서 충성하는 바울에게 닥친 이 고난은 하나님의 전능하심과 사랑하심을 다시 한 번 경험하는 기회가 되었습니다. 돛대도 부러지고 키도 부러지고 배마저 곧 깨어질 것 같은 그 때에 바울은 기도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 응답하시기를 "그 배는 깨어질 것이다. 그러나 그 배에 타고 있는 2백76명은 한 사람도 죽지 아니하리라"고 하셨습니다. 사도 바울은 그 말씀을 그대로 믿었습니다. 이성적으로는 이해가 안 되는 상황 이였습니다. 이 풍랑 중에서 배가 깨어지면 살 사람이 어디 있겠습니까? 라고 반문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 제발 배는 깨어지지 않게 해주십시오'라고 기도하지도 않았습니다. 바울은 배에 있는 사람들을 모아 놓고 기도에 응답받은 대로 전달합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이여 안심하라 나는 내게 말씀하신대로 되리라고 하나님을 믿는다(행27:25)"라고 확신있게 말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이성으로 판단할 분이 아니십니다. 초자연, 초과학, 초이성적인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의 말씀만은 분석하고 이해하는 것이 올바른 태도는 아닙니다. 믿고 순종하는 것이 옳은 것입니다. 환난 날에 기도하는 사람은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사람이 될 것입니다.

이호준목사 / 덕산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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