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있게 한 첫 사랑의 열매

[ NGO칼럼 ] 사회복지와의 첫 인연

신동헌국장 webmaster@pckworld.com
2012년 08월 10일(금) 14:37
[NGO칼럼]

필자가 사회복지와 첫 인연을 맺은 곳은 갈 곳 없는 어른들을 보호하는 '부랑인 시설'이다. 사연을 듣다보면 살아온 인생이 참으로 기구하지만 사지가 멀쩡한 사람들은 어김없이 알코올 중독자이거나 정신질환과 신체적 장애를 가진 사람들이다.
 
가족들이 있어 자신을 도와 줄 것이라 믿고 전화한 사람에게 "나 그런 사람 모릅니다"며 버림 받은 사람, 부모가 병들었다고 자식들이 버린 어르신들, 심지어는 죽은 동료의 몸을 씻겨 주라며 내어준 술을 씻기는 것은 뒷전이요, 술 한잔 더 먹어 보겠다고 다투는 사람들이 살고 있는 곳이다. 작은 것 하나에도 악다구니를 부리며 싸우는 그곳이 필자가 아는 사람들로부터 멀리 도망가고 싶어 선택한 제주도 땅에서 맞닥뜨린 사람들이다.
 
시설을 떠나면 당장 먹고 잘 곳을 걱정해야 하는 사람들이지만 이곳을 떠나 자유롭게 살고 싶어한다. 특히 따듯한 봄날이 되면 여길 떠나는 사람들이 많다. 몇 달 지나지 않아 술에 찌들고 만신창이가 된 몸으로 시청 차량에 실려오고, 가끔은 길에서 죽었다는 소리를 풍문으로 듣기도 한다. 외부에선 이해할 수 없겠지만 희망 없어 보이는 이곳도 조금 특별한 이력을 가진 사람들이 조금 다른 환경에서 살아갈 뿐 인간의 정이 있고, 사람 냄새가 나는 그런 곳이다.
 
기억에 남는 식구가 있다. 정신질환으로 들어온 작고 마른 체구의 예쁘장한 아이다. 질환이 심해져 정신요양원으로 옮겨 치료를 받던 중 뼈만 앙상한 모습을 하고 휠체어에 의지해 찾아온 적이 있다. 함께 온 선생 말로는 식사를 못해 말랐다고 하며 바깥 바람을 쏘여주고 싶어 데려왔다고 한다. 주변을 둘러싸고 안부를 묻는 동료들의 모습을 보며 그 친구가 환하게 웃는다. 내가 주는 간식을 받고 "선생님 고맙습니다" 하는데 그 모습이 너무 안쓰러웠다. 다음날 아침 요양원 건물에 앰블런스가 세워져 있어 직감적으로 '누가 죽었구나' 했는데 담요에 싸여 나오는 사람은 어제 왔던 그 아이다. 돌보던 직원은 얼마나 울었는지 눈이 부어 있고, 친구를 싣고 떠나는 앰블런스를 향해 시설 식구들은 좋은데 가라며 손을 흔들어 준다. 그날 자기 친구가 죽었다며 알아들을 수 없는 말을 중얼 중얼거리며 하루 종일 슬퍼하는 명순이를 봐야 했다.
 
1년 5개월을 끝으로 필자는 부랑인 시설을 그만두었다. 이후 장애인 기관에서 19개월을 더 근무하다 제주도 생활을 접고 서울로 올라왔다.
 
서울로 오기 전 인사차 찾은 기관에서 시설 식구들을 만났다. 인사를 마치고 가려는 필자를 명순이는 가지 말라며 붙잡고 놓아주질 않는다. 주변에서 나무라며 떼내자 그 나이에 엉엉 운다. 순덕이 아줌마는 불편한 다리를 절며 "잘 가라요"하며 한쪽 구석에서 눈물만 훔친다. 명철이 아저씨는 가다 맛있는 것 사먹으라며 마다하는 내 손에 만원짜리 한 장을 꼭 쥐어준다. "잘 살라고 언제 다시 만나겠냐며 자식 같이 생각했다"며 60이 넘은 나이에 그 거친 손으로 눈물을 훔친다.
 
이런 모습들이 필자가 삭막하고 인생 막장 같은 이곳에서 느낀 인간의 정이요, 사람 사는 냄새다. 당시 하늘 나는 비행기만 봐도 외로움에 눈물 흘리던 시절 필자를 지탱해준 소중한 분들이다.
 
오늘의 필자를 있게 한 첫 사랑의 열매들이고 사회복지 외길을 가도록 동력을 달아준 사람들이다. 이제는 얼굴도 희미하지만  필자의 기억 속에 살아 있는 그 분들이 보고 싶다.

신동헌국장 / 영락사회복지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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