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신도 시대의 평신도(하)

[ 교계 ] 잘 훈련된 평신도의 힘

이성희목사 webmaster@pckworld.com
2012년 08월 10일(금) 14:01
종교개혁 이후 개혁주의의 개혁의 목표는 탈 성직주의와 탈 제도주의이다. 루터는 평신도의 사제성과 보편적 사제성을 강조하였고 만인제사장설을 주창하였다. "오직 너희는 택하신 족속이요 왕 같은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된 백성이니(벧전 2:9)"라는 구절을 인용하여 복음은 모든 신자들의 소유물이며 이제는 더 이상 구약의 제사장직을 제사장만의 독점물이 아니라 모든 신자들의 공유물이라는 것을 강조하였던 것이다. 그러므로 루터에 의하면 평신도들은 복음에 의하여 그것의 이중 형태인 말씀과 성례전을 위한 사제들이 되는 것이다. 말씀을 소유한다는 것은 사제직을 소유한다는 의미이며 사제도 그 직책의 소유자 이상의 아무 것도 아니며 직책을 떠나면 다른 사람과 똑같은 사람이다. 그런 의미에서 루터는 당시에 성직자들에 의하여 독점되었던 성경을 평신도의 손에 들어오게 하였다.
 
성직자와 평신도 사이의 사역의 협력은 성경에 많은 예를 남겨주고 있다. 포로에서 예루살렘으로 귀환할 때 에스라와 느헤미야는 함께 귀환하여 성직자인 에스라는 성전을 다시세우고 종교를 개혁하였고, 평신도인 느헤미야는 귀환하여 예루살렘 성벽을 수축하였다. 초대교회에는 제1선은 아니지만 제2선에서 1선의 지도자를 도와 교회를 유익하게 한 인물들이 많이 있다. 바나바, 마가, 누가, 디모데, 브리스가와 아굴라 등이다. 이들이 없이 초대 교회를 생각할 수 없을 만큼 이들의 교회에 대한 공헌은 컸지만 이들은 한 번도 사도라고 불린 적도 없고 사도가 아니라고 불평한 적도 없다. 이런 인물들은 한 결 같이 제2선에서 제1선의 사도들을 충실히 도와 교회가 교회답게 만든 모범적 평신도였다. 이런 평신도들에 대하여 바울은 성직자와 전혀 구별하지 않고 '함께 일하는 자' 혹은 '도와주는 자'란 뜻의 '동역자'라고 하였다. 평신도는 성직자와 함께 일하는 자로서 동반적 성격을 지닌다. 성직자와 평신도는 종속적 관계가 아니라 공존적 관계이며 평신도는 성직자에게 의존적이 아니라 상호 보조적이라는 것이다. 초대교회는 가정이 교회의 원형이었고 교회 공동체의 지도자들을 '동역자'(롬 16:3, 고후 8:23) 혹은 '주의 일에 힘쓰는 자'(고전 15:58)라고 불렀다.
 
지난 시대의 리더십의 중심은 상위에 있는 리더였다. 국가나 기업이나 조직에서 산업사회의 중심구조가 정보사회에서는 하부로 중심이 이동하고 있다. 지난 시대의 리더십의 형태를 '위에서 아래' 형태라고 한다. 흔히 '상명하복'으로 표현되는 이전 시대의 리더십의 체계는 위에서 명령하면 아래에서 복종하는 형태였다. 그러나 이 시대의 리더십의 중심은 하위에 있는 '중심아'(opinion leader)이다. 그래서 이 시대의 리더십의 형태를 '바닥에서 위로' 형태라고 한다. 리더십의 중심이 완전히 이동한 미래 현상 때문이다. 국가에서도 행정수반 보다 국민이 중심이며, 기업도 사장이 아니라 사원이며, 회사가 아니라 고객이며, 조직도 조직의 장이 아니라 조직원이다.
 
이러한 변화는 교회에도 예외가 아니다. 성직자 중심의 교회가 이제는 서서히 평신도 중심으로 그 중심이 이동되고 있으며 평신도의 역할이 증대되고 그러므로 평신도 훈련이 목회의 중심사역으로 변화하고 있다. 동시에 잘 훈련된 평신도를 많이 가진 교회가 미래 사회에 경쟁력을 가지게 되는 것이다. 그간의 성직자 중심의 편중된 교회 구조를 평신도 중심의 분산된 교회 구조로 조정이 되어가고 있다. 성직자에게 편중된 교회 구조를 평신도와 함께 나눌 수 있다면 교회와 성직자 개인에게 유익이 될 것이고 또 미래 교회는 자연히 성직자 중심의 구조에서 평신도 중심의 구조로 전환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성직자에게 편중된 교회 구조를 평신도와 함께 나눌 수 있다면 교회와 성직자 개인에게 유익이 될 것이고 또 미래 교회는 자연히 성직자 중심의 구조에서 평신도 중심의 구조로 전환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러므로 평신도를 새로운 리더로, 중간 지도자로 육성하는 것은 시대 변화에 적응하는 사역의 새로운 패러다임이 될 것이다.
 
1881년 미국에서 시작된 기독교면려청년회는 빠른 속도로 미국 전역과 캐나다, 영국, 유럽 그리고 아시아 전역으로 파급되었다. 우리나라에는 1917년 면려운동이 소개되어 전국으로 확산되어 전국연합회의 창립을 주도하게 되어 남선교회로 발전하였다. 1898년 평양 널다리골 교회에서 63명의 여성도들이 처음으로 여전도회를 조직하여 전도 사업에 매진한 것이 대한예수교장로회의 여전도회의 효시이다. 남선교회와 여전도회는 선교와 봉사 등 평신도의 기능적 역할을 시대에 따라 충실히 수행한 교회의 실제적 중심이었다.
 
이 시대 교회는 평신도에게 기대감을 가지고 있다. 잘 훈련된 평신도가 교회 사역의 중심이기 때문이다. 현상적으로도 잘 훈련된 평신도를 가진 교회가 성장하며 사회적 책임을 수행하는 것을 확실하게 증명하고 있다. 교회의 잠재적 자원인 평신도는 급변하는 시대의 변화에 민감하게 스스로 대처하고 변신하여 교회 사역의 중심에 설 수 있도록 스스로 훈련하고 노력해야 할 것이다. 칼뱅은 "교회는 훈련이다"라고 하였다. 교회 생활은 전체가 훈련이며 잘 훈련된 평신도가 교회의 사역의 '중심아'가 될 수 있을 것이다. 평신도의 정체성은 훈련을 통하여 정립될 수 있으며 바른 정체성을 가진 평신도가 우리 시대 교회의 새로운 사역자로 우뚝 서게 될 것이다.
 

이성희목사
연동교회
이 기사는 한국기독공보 홈페이지(http://www.pckworld.com)에서 프린트 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