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월13~18일

[ 가정예배 ] 가정예배 8.13~8.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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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08월 08일(수) 14:27

월-물 떠온 하인들은 알더라(2)
본문: 요한복음 2:1-11
찬송가: 96장
 
예수님의 첫 번째 표적인 물이 변하여 포도주가 된 사건 속에는 여러 사람들이 등장한다. 그런데 그 가운데 실제적으로 표적의 내용을 가장 가까이에서 그리고 직접 체험한 사람은 물 떠온 하인들이었다. 그들은 이 표적을 통하여 예수님이 어떤 분이신가를 알게 되었다.
 
첫째, 예수님은 창조주 하나님이라는 사실이다.
 
물이 변하여 포도주가 된다는 것이 가능한 일일까? 인간의 능력으로는 가능성이 제로이다. 그런데 인간의 몸을 입은 예수님에 의하여 물이 변하여 포도주가 되었다는 사실이다. 이 본질적인 변화는 무에서 유를 창조하시는 창조주만이 하실 수 있는 일이다. 그러므로 예수님은 인간의 몸은 입으셨지만 바로 천지를 창조하신 창조주 하나님이시다. 예수님은 마리아의 아들이기 이전에 창조주 하나님이시다. 여기에 복음이 있다. 성삼위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피조물 가운데 우리가 포함되어 있다는 사실이다. 그러므로 우리 모두는 우리를 창조하신 창조주의 것이라는 사실을 인정해야 한다. 주님은 우리의 주인 되시고, 우리는 주님의 종이다. 그렇다면 우리가 주님의 것처럼 살고 있는가? 주인 앞에 종처럼 살고 있는가? 주님이 원하시는 대로 살고 있는가?
 
종은 내 맘대로 살아가면 안된다. 내 맘대로 살아간다면 주인의 것이 아니라 내 것일 뿐이다. 성경은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못한다고 말씀하고 있다(히11:6). 믿음으로 살아가는 것이 주님을 기쁘시게 하는 것이다. 믿음으로 산다는 것은 말씀대로 산다는 것이요, 말씀대로 산다는 것은 말씀이 나의 삶에 기준이 된다는 것이다.
 
둘째, 예수님은 전능하신 하나님이라는 사실이다. 물을 포도주로 만들 수 있는 분은 전능하셔야만 가능하다. 예수님은 맹물을 가지고 극상품의 포도주로 만들어 주셨다. 그러므로 예수님은 인간이기 이전에 전능하신 하나님이라는 사실이다. 전능하시기에 우리의 구원자가 되신다. 전능하시기에 죽음에서 우리를 살릴 수가 있는 것이다. 전능하시기에 환난에서, 질병에서, 가난에서 우리를 건져주실 수가 있는 것이다. 전능하시기에 우리의 삶을 역전시키시고 승리하게 만드신다. 전능하시기에 오늘도 성령님으로 우리와 함께 하고 계신 것이다. 그래서 우리의 삶을 간섭하시고 보호하시고 인도하여 주고 계신다. 또한 전능하시기에 기도의 대상자가 되신다. 이 세상에 존재한 그 어떤 것도 기도의 대상자가 될 수 없다. 전능하지 못한 존재가 어떻게 기도에 응답할 수 있겠는가? 그러므로 전능하신 주님만이 우리의 기도의 대상자가 되신다.
 
그래서 주님은 우리에게 무엇이든지 구하라고 말씀하셨다.
 
"구하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주실 것이요 찾으라 그리하면 찾아낼 것이요 문을 두드리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열릴 것이니(마7:7)."
 
두려운가? 평안이 없는가? 필요한 것이 있는가? 잃어버린 것이 있는가?
 
오늘도 우리와 함께하시고 우리의 기도에 귀를 기울이시는 전능하신 주님께 확신을 가지고 나아가자.
 
<오늘의 기도>
말씀이 삶의 기준이 되어 주님의 종으로 살겠습니다. 어떤 환경 속에서도 전능하신 하나님께 소망을 두고 살겠습니다.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박주환목사 / 석포교회

 


 

화-종말 의식
본문: 빌립보서4:4-9
찬송가: 300장
 
종말 의식은 사람을 강하게 만들며 종말 의식을 가지면 평소와 다른 사람이 된다. 그 대표적인 예가 알버트 슈바이처이다. 그는 목사가 되었고, 신학박사가 되었다. 오르간 연주도 잘 했고, 오르간을 제작하는 기술까지 있었다. 그러나 부귀영화의 기득권을 모두 버리고, 의사가 되어 아프리카로 들어갔다. 다름 아닌 그의 종말의식 때문이었다. 그는 바울서신을 읽으면서 바울의 종말의식에 감명을 받았다. 바울 사도가 머지않아 그리스도께서 재림하실 것이라는 종말의식을 가지고 산 것처럼 자신도 그렇게 살기를 원했다. 머지않아 세상이 끝나고 종말이 올 것이라는 생각은 그로 하여금 결단하도록 만들었다.
 
본문에는 바울의 종말 의식을 보여주는 말씀이 나온다. 5절에 '주께서 가까우시니라'라는 말씀이다. 주님께서 이 세상에 다시 오시는 재림의 날이 가까웠다는 말이다. 인생은 여행과도 같다. 그 길이 너무 험해서 많은 사람들이 지쳐있고 힘이 빠져 있다. 바울 사도도 마찬가지였다. 그는 당시 소아시아 전역과 유럽을 다니면서 복음을 전했는데, 낙심될 때가 많았다. 많은 핍박도 당했다. 그러나 바울은 그 힘든 인생 여행을 하는 동안 인생을 비관하거나, 사람들을 증오하지 않았다. 오히려 정 반대로 그는 좋은 일이 있는 사람처럼 살았다. 어떻게 하면 그렇게 살 수 있을까? 먼저 그는 '기뻐하라'고 말한다. 이 기쁨은 어디서 오는 걸까? '조금만 있으면 여행이 끝날 것'이라는 종말 의식으로부터 오는 것이다.
 
두번째로 바울은 '관용하라'고 말씀하신다. "너희 관용을 모든 사람에게 알게 하라 주께서 가까우시니라." 여행을 하다보면 이상한 사람들을 많이 만난다. 바울은 이런 사람들에게 관용하라고 말한다. 어떻게 관용을 베풀 수 있을까? 그것은 '주께서 가까우시기 때문'이다. 곧 인생 여행이 끝나고 영광을 누릴텐데, 조그마한 것 때문에 용서하지 못하고 다툰다면 얼마나 치졸한 것인가?
 
셋째로 바울은 '염려하지 말고 기도하라'고 한다. 여행을 하다가 강도를 만나 지갑을 빼앗겼다고 가정해보자. 어디서 먹고, 자야할 지 걱정이다. 그러나 염려할 필요가 없다. 아버지가 부자이기 때문이다. 염려하지 말고 아버지께 빨리 전화를 걸어야 한다. 그것이 우리의 기도이다. 인생 여행에서 기도보다 더 강력한 무기는 없다.
 
"그리하면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리라." '지각에 뛰어나다'는 것은 '우리의 상상을 초월하는, 미처 생각할 수도 없는 것'을 말한다. 뛰어난 평강을 주신다.
 
우리의 인생 여행이 힘들어도 흐트러진 모습을 보이면 안된다. 불쾌한 일을 당해도 흥분하면 안된다. 절망스런 상황을 만나도 의연하고 침착하게, 더 열심히 살아야 한다. 그러면서 날마다 하나님께 기도해야 한다. 하나님의 도움으로 인생 여행을 잘 마쳐야 한다. 내일이 우리의 종말인 것처럼 생각하면서 너그러운 믿음의 사람으로 인생 여행을 즐기자.

<오늘의 기도>
사랑의 하나님 아버지! 저희들에게 종말 신앙을 주셔서 주 안에서 늘 기뻐하게 하시고, 관용하며, 염려하지 말고 기도하는 삶을 살게 하셔서 평강을 누리게 하소서. 에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최광우목사 / 양일교회

 


 

수- 바다에서 만나는 큰 풍랑
본문 : 요나서 1장 4~12절
찬송 : 400장
 
80년대 해외 위문공연을 갔던 유명 코메디언이 미국의 샌프란시스코 공항에 도착하자 "샌프란에 왔는데, 시스코에는 언제가냐?"고 묻자, 한 사람이 "차를 타고 2시간쯤 가면된데!"라고 했다. 망각이라는 시간 속에서 자신을 잃어버린 현대인, 위치의 정체성을 상실한 상태가 바로 우리들의 모습이다.
 
파울로 코멜료의 '흐르는 강물처럼'이라는 책은 아담과 하와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에덴 동산에서 행복했던 하와에게 사탄이 선악과로 "이 실과를 먹어야 네 남자 눈에 아름답고 예쁘게 보일 수 있어!"라며 유혹했다. 하와가 이 동산에 우리 둘 밖에 없다며 유혹을 물리치자 우물로 데리고 가서는 "이 속에 아름다운 여인이 있어 한번 볼래?"라고 속삭였다. 하와가 우물 속에 비친 여인의 모습을 보고는 사탄의 선악과를 받아 먹었다. 의심과 불신의 유혹 때문에 행복한 낙원을 버리고, 분노와 원망 때문에 자기 자신의 모습을 잃어버린 우리들의 모습을 보게 한다.
 
오늘 주신 말씀은 하나님의 종, 요나가 하나님의 명령에 불순종해서 회개의 복음을 전하지 않고, 다시스로 가는 배를 타고 가다가 커다란 풍랑을 만나 절대 절명의 위기 앞에 놓이게 되었다. 이 큰 파도의 위기가 우리들에게 주는 교훈은 무엇인가?
 
첫째, '의심의 파도'란 위기이다.
 
중세 수도사 요한 타울러는 우리의 삶 속에서 나를 잃어버리게 하는 이유들을 설명하면서 '포퓰리즘' '탐욕' '분노와 조급함' '의심과 증오'라고 설명한다. 요나도 하나님의 크고 놀라운 뜻을 온전히 믿지 못하였기에 다시스 행 배를 타게 되었다. 그리고는 큰 풍랑과 파도를 만나게 되었다. 사탄의 유혹인 의심의 파도를 넘어서 믿음과 신뢰의 파도를 타고 승리했던 주님을 본받자.
 
둘째, '탐욕의 파도'란 위기이다.
 
오늘날 어디든지 위증과 탐욕이 넘쳐난다. 이상기후재앙도 인간들의 탐욕으로 자연을 파괴하고 무분별하게 자원을 낭비하며 내다버린 쓰레기 더미와 오염 물질들이 물과 땅과 공기를 오염시켜 오늘의 위기를 초래했다. 요나도 넓은 의미에선 하나님의 뜻과 주권에 불순종하며, 자신의 생각과 뜻에 집착하는 영적 탐욕 때문에 '탐욕의 파도'란 위기를 만난다. 주님은 "삼가 탐심을 물리치라 사람의 생명이 그 소유의 넉넉함에 있지 아니 하니라"고 말씀하셨다.
 
셋째, 사명의 파도를 타라.
 
정신 분석가 프리츠벌츠박사는 건강한 사람의 4가지 특징을 이렇게 설명하고 있다. 자신이 누구인지를 아는 사람, 현실을 도피하지 않고 도전하는 사람, 자신 인생에 책임감 강한 사람, 자신의 사명과 할 일을 분명히 아는 사람이다. 뒤늦었지만 요나는 "이 큰 폭풍을 만난 것이 나 때문인 줄을 내가 아노라!"고 말하며 자신의 책임을 깨닫고, 회개하자 하나님께서는 풍랑을 잔잔케 하실 뿐 아니라, 니느웨에 가서 전한 복음으로 놀라운 회개를 통한 구원의 역사를 이루셨다.
 
은혜의 풍랑 속에서 사명의 파도를 타서 가정과 행복을 지키는 순례자들이 되시길 바란다.
 
<오늘의 기도>
요나의 회개의 은혜를 우리에게도 주셔서 이 민족과 교회가 하나님의 사명을 회복하는 은혜를 베풀어 주시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권호임목사 / 베다니교회

 


 

목-밭에 감춰진 보화
본문 : 마 13:44-46.
찬송가 : 212장
 
어떤 부자가 보물이 담긴 항아리를 아무도 모르게 자신의 밭에 숨겨 놓았는데 갑자기 병으로 죽게 되었다. 어느 날 가난한 농부가 그 밭을 갈다가 보물이 담긴 항아리를 발견하게 된다. 농부는 전 재산을 팔아서 그 밭을 산다. 이 비유의 말씀을 통해 예수님께서 우리로 하여금 깨닫게 하기를 원하시는 뜻은 무엇일까?
 
첫째로 밭에 감춰진 보화를 찾는 것이 지혜이다. 잠언 2장에서는 하나님을 믿고 알고 깨닫는 지혜가 은을 주고도 바꿀 수 없는 보화라고 말씀하신다. 눈에 보이는 보화를 얻기 위해 광부들이 흙을 파고 돌을 깨고 용광로에 녹이는 것처럼 하나님의 감춰진 보화도 끈기있는 노력이 있어야 찾을 수 있다. 감춰진 보화를 찾는 것이 지혜이다. 만약 자신에게 세상 지식은 있어도 하나님의 말씀 성경에 대한 지식과 지혜가 부족하다면 하나님께 구하라고 말씀 하신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이 지혜이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에게는 지혜와 총명을 주셔서 하나님의 무한하신 사랑을 깨달아 알게 하시기 때문이다.
 
둘째로 밭에 감춰진 보화는 즉시 사야 한다. 농부는 밭에 감춰진 보화를 발견한 후 즉시 전 재산을 지불하여 그 밭을 샀다. 농부가 보물이 있는 밭을 기쁘게 살 수 있었던 것은 농부만이 아는 값진 보화가 있었기 때문이다. 농부는 보물이 담긴 항아리를 발견한 후 모든 생각이 그 밭으로 향하게 되었다. 우리도 예수님을 그렇게 믿어야한다. 아무리 많은 부와 명예를 준다 해도 예수님이 참 보물임을 알고 따라야 한다. 세상 사람들은 돈과 물질을 찾아 헤매고 있다. 누가복음 12장에서는 어리석은 부자 이야기를 하고 있다. 예수님께서는 세상에는 부요하고 하나님께는 인색한 자의 생명을 오늘밤에 찾으시면 쌓아놓은 재물이 누구의 것이 되겠느냐고 책망하신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삶이 참된 부요의 삶이다. 세상의 재물은 참 보화가 아니다.  "돈을 사랑함이 일만 악의 뿌리가 된다."(딤전 6:10)
 
셋째로 밭에 감춰진 보화는 예수 그리스도이시다.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목숨을 위하여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몸을 위하여 무엇을 입을까 염려하지 말라"고 말씀하신다. 사도바울은 "무엇이든지 내게 유익하던 것을 내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다 해로 여길뿐더러 또한 모든 것을 해로 여김은 내 주 그리스도 예수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상하기 때문이라 내가 그를 위하여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배설물로 여김은 그리스도를 얻고 그 안에서 발견되려 함이라"고 말하고 복음만을 전하는 증인된 삶을 살았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비밀이며 세상에서 다시 구할 수 없는 보화이다. 사르밧 과부에게 한 웅큼의 밀가루와 약간의 기름밖에 남지 않았다. 그리고 그것으로 떡을 만들어 아들과 함께 먹고 죽으려 했다. 그런데 하나님의 사람 엘리야가 음식을 만들어 먼저 자신에게 가져 오고  그 이후에 먹으라고 한다. 그가 말씀에 순종함으로 극한 가뭄의 때에 밀가루와 기름이 떨어지지 않는 축복이 임했다. 우리도 이와 같이 영원한 보화 영원한 생명이신 에수님을 모시고 살아가야겠다.

<오늘의 기도>
사랑의 하나님 감사합니다. 세상의 명예와 부귀만을 쫓아가다가 주님이 참 보화이심을 깨닫지 못했습니다. 안일하게 주님없이 살아오던 우리가 이제는 천국보화이신 예수님을 발견하며 그 은혜로 인하여 살아가게 하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이덕자목사 / 비전교회

 


 

금-오늘도 기적이 일어난다.
성경: 막 6:35-44 
찬송가: 325장
 
성경의 기적을 믿지 않는 한 여선생님이 학생들에게 말했다. "성경에 있는 기적은 정말로 있었던 것이 아니에요. 모세가 이스라엘 백성들을 끌고 홍해를 건너감은 20센티 깊이 밖에 안되는 갈대밭을 건너 간 것이지 바다를 건너 간 것이 아닙니다. 그러니 그건 기적이 아니지요."
 
그러자 그 말을 듣고 있던 학생이, "기적으로 인하여 하나님께 더욱 더 영광을 돌립니다"라고 말했다. 선생님은 매우 언짢은 기색으로, "무슨 기적이란 말인가요?"라고 묻자 다시 학생은, "바다도 아니고 20센티 깊이 밖에 안 되는 갈대밭에 그 많은 애굽의 대 군대를 모두 빠져 죽게 하셨다니 그것이 진짜 하나님의 기적이 아니겠습니까?"
 
성경은 기적의 기록이다. 그러나 인간의 입장에서 기적이지만 하나님의 입장에서 보면 얼마든지 하실 수 있는 지극히 평범한 일이다. 우리가 하나님은 믿는다는 것은 결국 이런 기적을 행하시는 하나님을 믿는다는 것이다.
 
오늘의 말씀은 오병이어의 기적이라고 부르는 유명한 사건의 기록이다. 어떻게 작은 음식을 가지고 그렇게 많은 사람을 먹일 수 있었을까? 상식으로는 이해가 되지 않는다. 그러나 성경에 기록된 오병이어의 기적은 단순히 옛날에 일어났던 사건으로 끝이 아니다. 빈들과 같은 인생, 날이 저무는 인생과 같은 오늘도 기적은 얼마든지 일어난다는 사실이다.
 
제자들이 걱정이 태산이었다. 수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믿고 따르는 것까지는 좋은데 이미 때는 저물어 가고 먹을 것이 없었다. 그곳은 빈들이었고, 당장 먹을 것을 구하러 간다고 해도 불가능한 일이다. 아무런 대책도 없는 상황에서 제자들은 주님에게 말씀한다. "때가 저물어 가매 제자들이 예수께 나아와 여짜오되 이곳은 빈들이요 날도 저물어가니…" 방법은 하나, 무리들을 돌려보내서 먹게 하라고 요청한다. 그런데 주님은 이렇게 말씀하고 있다. "대답하여 이르시되 너희가 먹을 것을 주라."
 
기가 막힌 말씀이다. 이곳은 빈들이고 해는 저물어 가고, 우리도 먹을 것이 없고 가진 돈도 없는데 다짜고짜 "너희가 먹을 것을 주라"니 이게 무슨 말씀인가? 이 말씀의 의미는 결국 '너희들이 먹을 것을 주게 될 것'이라는 미래적 약속이었다.
 
이게 어떻게 가능할까? 예수님이 거기 계셨기 때문이다. 아무리 빈들이요, 해가 저물어 가는 상황에서도 내가 너희와 함께 있으니 된다는 것이다. 주님은 말씀하셨다.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염려하지 말라. 이모든 것이 너희에게 있어야 할 것을 주님은 이미 알고 계시다(마 6:31-32)"고 했다. 그렇다. 주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면 된다. 그리고 주님이 원하시면 얼마든지 무엇이든지 이루어진다.
 
우리의 인생이 빈들과 같은 처지라도 괜찮다. 해가 저물어 가는 삶의 자리처럼 막막해도 괜찮다. 임마누엘의 예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면 기적은 오늘도 우리의 삶에 얼마든지 일어날 줄 우리는 분명히 믿는다. 
 
<오늘의 기도>
전능하신 하나님 아버지! 저물어 가는 인생, 아무것도 없는 빈들과 같은 인생의 자리에 있어도 염려하지 않겠습니다. 두려워하지 않겠습니다. 주님이 우리와 함께 계심을 믿기 때문입니다. 오늘도 기적을 이루시는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김수훈목사 / 동빙고교회

 


 

토-큰 믿음으로 나아가라
본문: 왕상 18: 41~46
찬송가: 545장
 
엘리야가 가뭄으로 인해 고통받은 백성들을 위해 갈멜산 꼭대기에 올라가 비가 내리도록 하나님께 간구했다. 7번이나 끊임없이 기도한 엘리야는 사람의 손 만한 작은 구름을 보고 하나님의 응답인 큰 비를 확신했다. 엘리야의 놀라운 응답의 비결을 살펴보자.
 
첫째, 엘리야는 바다 편을 바라보게 했다. 엘리야는 앞서 사환에게 바다 쪽을 바라보게 시키며 하나님의 응답을 빠르게 확인할 수 있는 곳에 포커스를 맞췄다. 수증기가 구름이 되고 구름이 곧 비가 되어 내려지기 때문에 수증기가 많이 있는 습한 곳, 즉 바다가 가장 빠른 응답을 확인할 수 있는 곳이기 때문이다. 그는 사환으로 하여금 바다 편을 바라보게 하면서도 그 자신은 하나님 보좌를 움직이는 끈기의 기도를 멈추지 않았고, 하나님의 작은 싸인도 응답으로 확신하여 민감하고 빠르게 반응했다. 간절히 기도하였다면 응답을 확인할 수 있는 곳으로 시선을 고정하라.
 
둘째, 엘리야는 사람의 손 만한 작은 구름을 보고 큰 비가 올 것을 확신했다. 작은 구름이 바로 비가 되어 땅으로 떨어지는 경우는 없다. 많은 구름입자가 모이기 위해서는 그만큼 시간이 소요가 되는 것이기에, 작은 구름을 보고 큰 비가 바로 올 것임을 확신하는 것은 상식적이지 않다. 그러나 엘리야는 사람의 생각과 상식으로 하나님의 응답의 사인을 놓치지 않았고, 오히려 응답을 빠르게 알아채고 큰 비가 올 것임을 왕 앞에 선포했다. 하나님의 응답을 절대 확신하지 않는다면 왕으로 하여금 장소를 옮기라고 감히 말할 수 없는 것이다.
 
이렇게 작은 신호에도 하나님의 응답을 확신하는 자들이 있는가 하면, 오히려 정확한 응답을 눈 앞에 보여주어도 그것을 믿지 못하는 자들이 있다.
 
세상의 불치병과 같은 피곤함, 분주함, 근심과 걱정이 그들의 눈과 귀를 어둡게 하여 하나님의 사인을 보지도 깨닫지도 못하는 것이다. 세상의 불치병에 포커스를 두지 말고 하나님의 응답의 신호를 빠르게 확인할 수 있는 곳에 집중하라.
 
셋째, 여호와의 능력이 임했던 자이다. 비가 온다는 소식을 들은 아합왕은 마차를 타고 이스르엘로 출발한다. 그러나 베테랑 말들이 끄는 마차보다 앞서 달려갔던 이가 바로 엘리야였다.
 
그는 이미 갈멜산 꼭대기에 올라갔었고, 또한 비가 올 때까지 끊임없이 일곱 번이나 기도했다. 그는 여호와의 능력으로 인해 사람에게 있는 최고의 방법과 비교할 수 없는 능력의 모습을 나타내게 된다.
 
기도는 사람의 에너지가 소모될 지 모르지만, 하나님이 주시는 영적인 능력이 나타나는 과정이다. 진짜 에너지를 쏟는 살아있는 기도를 드린 자는 결코 탈진하여 쓰러지는 것이 아니라, 다시금 샘 솟는 강한 능력과 힘을 경험할 수 있다. 왜냐하면 그 기도를 통해 하나님의 능력이 그에게 임하기 때문이다.
 
<오늘의 기도>
하늘 보좌를 움직이는 기도의 사람, 주님의 응답을 확신하며 주님의 작은 싸인에도 빠르게 반응하여 응답을 성취해 나갈 수 있는 사람이 되게 하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박선범목사 / 효자천성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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