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해의 독성

[ 논단 ] 오해의 독성

손달익목사
2012년 07월 30일(월) 10:35

[주간논단]

살면서 누군가로부터 오해를 받을 때보다 더 답답한 일은 없다. 사람의 속을 양말 뒤집듯 보여줄 수도 없고 오해를 풀기 위해 하는 말들이 또 다른 오해를 낳기도 한다. 때로 이 오해는 단순한 의사소통의 잘못으로 인한 헤프닝일 경우가 많다.
 
나폴레옹 3세(1808-1873)가 프랑스를 다스릴 때 정부에 불만을 품은 시민들이 궁궐로 난입한 적이 있었다. 궁궐을 지키던 호위장교 한 사람이 책임자였던 상 아루노 백작을 급히 찾아가 처리 지침을 요구했다. 심한 천식 때문에 발작적으로 기침을 하고 있던 백작은 '지독한 놈의 기침'이란 뜻으로 '마 사크레 투(ma sacre toux)'라고 중얼거렸다. 그런데 그의 이 말을 호위장교는 '모두 죽여라'는 의미의 '마사크레 투(massacrez tout)'로 알아들었다. 그리고는 무참한 살육으로 진압했다. 비극 중의 비극이었다. 상관의 뜻을 오해한 데서 빚어진 끔찍한 일이었다.
 
오해는 여기에만 있는 것은 아니다. 선의로 베푼 호의를 악의로 해석하여 대응함으로 서로 원수가 되기도 한다. 역대상 19장에 이런 역사가 기록되어 있다. 다윗이 집권한 후 그의 세력이 날로 확장되어 서쪽 지중해 연안에서 동쪽 유브라데 지경까지의 지배권을 확보하게 되었다. 남쪽 에돔까지 조공국가로 만든 다윗의 위세는 실로 파죽지세였다.
 
이 시기에 암몬의 국왕 나하스가 죽었다. 생전 다윗과 우호적 관계를 잘 유지했던 터여서 다윗은 그의 죽음을 애도하고 문상하기 위해 조문사절을 암몬으로 파송했다. 그러나 암몬의 젊은 왕 하눈의 생각은 달랐다. 다윗이 암몬 침략을 위해 조문사절을 빙자하여 간첩을 보냈다고 여기고 이 사절들을 모욕적으로 대우했다. 그들의 수염을 깍아버리고 옷을 찢어 볼기가 드러나게 한 다음 추방해버렸다. 오해는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분노한 다윗이 군사적 공격을 할 것이라고 짐작하고 은 일천 달란트를 주고 아람의 용병들을 데려와서는 이스라엘을 침공했다가 다윗에게 대패했다. 은 일천 달란트이면 무려 34톤이나 되는 막대한 양인데 이것을 다 허비하고 그의 지도력은 땅에 떨어졌고 국가적 위상은 처참하게 내려앉았다. 모든 것이 오해의 결과였다.
 
다윗이 보낸 조문 사절이 간첩일 것이라는 생각도 오해였고 분노한 다윗이 그들을 공격할 것이라는 판단도 근거 없는 추측이었고 오해였다. 만약 암몬의 왕 하눈이 한 번 만이라도 다윗에게 진심어린 대화를 요청하고 이 위험한 정국을 평화적으로 해결하기 위한 진지한 노력을 기울였다면 역사는 많이 달라졌을 것이다.
 
오해는 반복되고 내면화되면서 스스로를 세뇌시켜 자신의 생각을 절대화하기에 이른다. 그래서 회복 불가능의 잘못을 지속적으로 반복하게 하여 관계를 파괴하고 삶을 황폐하게 할 뿐만 아니라 역사를 아주 비극적이 되게 하기도 하는 매우 독성 강한 바이러스를 지니고 있다. 젊은 시절 바울이 아직 사울이었을 적 그는 살기등등한 모습으로 교회와 성도들을 괴롭히고 박해했었다. 그러면서도 단 한 번도 '내가 잘못하고 있다'라고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당시의 그를 빌립보서 3장 6절에서 그는 스스로 "열심으로는 교회를 박해하고…"라고 소개했다. 하나님께 대한 충성심으로 열심히 박해의 선봉에 섰다는 것이다. 지독한 오해였다. 이 오해가 그를 죄인 중의 괴수가 되는 삶을 살게 했다.
 
진리를 그릇 인식하여 스스로를 절대화하면 그리스도 예수의 원수로 행하면서도 스스로는 그리스도의 일을 한다고 착각하게 된다. 바른 인식과 판단의 능력이 더욱 절실하게 요구되는 것은 이 때문이다. 우리 주위에 신뢰와 존경에 근거한 진정어린 소통을 위한 대화 모습을 발견하기는 어렵고 오해와 편견으로 갈등과 대립을 일삼고 이것이 더 큰 오해를 서로 불러일으켜 회복 불가능의 상처를 입히는 일들이 허다하다. 그래서 바울은 '신령한 지혜와 총명에 하나님의 뜻을 아는 것으로 채우게 하시기'를 간구했다. 상황을 판단하는 일에나 진리를 깨닫는 것에나 우리가 서로를 알아가는 일에 성령의 도우심이 있기를 간절히 기도하게 된다. 누군가를 오해하는 것은 내 스스로를 파괴하는 결과가 되기에 더욱 그러하다.

손달익목사 / 부총회장ㆍ서문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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