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월30~8월4일

[ 가정예배 ] 가정예배 7.30~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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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07월 27일(금) 15:49

[가정예배]

월- 좋은 소식을 전하는 자의 발
본문: 로마서 10:9∼15
찬송가: 500장
 
신문이나 방송을 접하다 보면 '믿을 만한 소식통'이라는 말을 보게 된다. 이 말은 전하는 소식의 출처가 신빙성이 있다는 것이다. 그런가 하면 '익명을 요구한 소식통'이라는 말도 본다. 이 말은 신빙성이 조금 떨어진다는 말이다. 그렇다면,  '구원의 출처'는 무엇일까? 성경은 구원의 소식을 '믿을 만한 소식통'이라고 말하고 있다. 오늘 본문 13절은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고 했다. 그러므로 구원은 주님께로부터 오며,그를 부르고 마음으로 믿고 입으로 시인할 때에 구원을 얻을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더 중요한 것은 그를 부르고,믿고,시인할 수 있도록 '좋은 소식을 전해주는 발'이 있어야 한다. 이기풍목사님이 제주도에 가셔서 복음을 전하여 오늘 제주도에는 장로교통합측 교회가 1백여 개나 된다. 또한 본문 14절에 "그런 즉 저희가 믿지 아니하는 이를 어찌 부르리요 듣지도 못한 이를 어찌 믿으리요 전파하는 자가 없이 어찌 들으리요"라는 말씀에 귀를 기울어야 한다.
 
그러면 구원은 어떻게 해서 이루어지는가?
 
첫째,입으로 예수님을 '주'라 시인하고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심을 마음으로 믿어야 한다. 인류에게 있어서 가장 큰 '적'과 '문제'는 '죽음'이다. 모든 질병과 고통의 문제도 결국에는 '사망'과 연결되어 있다. 그런데 이 사망의 문제를 해결해 주는 기쁜 소식이 인류에게 들려 왔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예수님을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게 하신 것이다. 우리는 부활의 주님을 입으로 주라 시인하고 마음으로 믿기만 하면 구원을 얻는 것이다. 믿음이란,예수그리스도를 '주'라 고백하고,"나는 그의 종입니다"라고 말하는 것이다. 주를 전인격적으로 신뢰한다는 뜻이다.
 
둘째,구원 역사에는 반드시 필요요건이 있다. 그것은 객관적인 말씀,성령의 감화를 받는 것이다. 성령은 반드시 말씀 위에 역사한다. 왜냐하면 성령은 인격체이시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은혜의 말씀과 성령이 결합될 때 구원의 역사가 일어난다. 그리고 효과적인 언어가 필요하다. 왜냐하면 각 나라와 민족의 언어로 복음이 전달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또한 구원의 역사에는 사랑하는 사람이 필요하다. 사랑하는 사람의 말은 상대방의 마음의 문을 쉽게 열기 때문이다. 만약 사랑하는 사람의 말을 듣지 않는다면 그 속에는 사랑이 없다는 증거이다. 그 뿐만 아니라 말씀을 잘 듣도록 전해야 한다. 전도에는 말씀준비가 있어야 하고 성령의 충만함을 받고 사랑하는 사람에게 가서 효과적으로 복음을 전해야 한다.
 
셋째,구원의 결과는 무엇인가?
부끄러움을 당하지 않는다. "누구든지 저를 믿는 자는 부끄러움을 당하지 아니하리라." 또한 구원받은 자는 부요케 된다고 12절에서 말씀하신다.
 
'좋은 소식을 전해주는 발'이 되어서 인류의 평화와 죽어가는 영혼을 구원하는 데 힘써야 할 것이다.
 
<오늘의 기도>
은혜가 풍성하신 하나님 아버지,오늘도 우리를 구원케 하시고 죽어가는 영혼을 살리는 복된 소식을 전하는 자로 사용하여 주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정진모목사 / 평화교회


화-복된 가정
본문:시편 128:1
찬송가:559장
 
가정은 나라의 근본이 되는 곳이다. 가정 속에 국가와 교회의 외형이 나타나 있다. 사회는 가정으로부터 시작된다. 더욱 복된 가정은 하나님 아버지를 모시고 예수 그리스도를 구세주로 믿음으로 영접한 가정이다. 예수그리스도의 사랑 안에서 하나되는 아름다운 곳이 가정이다(행16:34).
 
첫째,여호와 하나님을 경외하는 가정이다.
 
가정이 복을 받는 것은 하나님을 경외하며 하나님의 말씀 안에서 세워져 갈 때이다. 유대인들은 성전에 올라갈 때 시편 128편 1절을 부르며 올라갔다. 그리고 안식일을 지킨 후 저녁에 온 가족이 함께 모여 가정예배를 드렸다. 여호수아는 "오직 나와 내 집은 여호와를 섬기겠다"고 말한다. 예수님을 믿는 믿음의 가정은 정말 복된 가정이다. 우리들에게 최고 복은 예수님 믿고 구원받는 복이다. 예수님을 믿고 구원받은 가정의 아름다운 가족이 하나되고 식탁이 하나된다면 그것만큼 복된 가정은 없다.
 
둘째,사랑의 훈계가 있어야 복된 가정이다. 부부의 아름다운 관계 속에 자녀들은 육체적으로 정신적으로 아름답게 성장한다. 부부가 예수님을 구주로 믿고 서로 존경할 때 진정한 행복이 넘치는 복된 가정이 된다. 그럴 때 자신들이 해야 할 본분에 충실하고 자녀를 잘 훈계하며 예수님을 모신 복된 가정이 된다. 에베소서 6장 4절을 보면 "또 이비들아 너희 자녀를 노엽게 하지 말고 오직 주의 교훈과 훈계로 양육하라"고 말씀하신다. "자녀에게 부지런히 가르치며 집에 앉아 있을 때 길을 행할 때 누웠을 때 일어날 때든지 하나님의 말씀을 강론하라(신명기 6:7)."
 
예수님께서 말씀하시길 "나와 아버지는 하나이니라(요10:30)"고 하신 말씀과 같이 부부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 되어야 한다. 그래야 올바른 교육과 훈계가 이루어져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행복하고 따뜻한 복된 가정이 된다.
 
셋째,맡은 일에 충실할 때 복된 가정이 된다. 남편으로서의 책임을 다하고 아내로서의 책임을 다하면 그 속에서 자라나는 자녀는 삐뚤어 질 수 없다. 맡은 자에서 구할 것은 일에도 충실,가정에도 충실할 때에 주어진 하나님의 일에도 충실하다. "영혼 없는 몸이 죽은 것 같이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것(약 2:26)"이라고 말씀하고 있다. 부모로서 주님 안에서 최선을 다해 일하고 자녀들은 자신들의 신분에 맞게 최선을 다해야 한다. 예수님을 모신 가정은 주 안에서 모든 일이 시작되고 마쳐야 복된 가정이다.
 
"나를 사랑하고 내 계명을 지키는 자에게는 천대까지 은혜를 베푸느니라(신명기 5:10)"

여호와 하나님을 경외하고 예수 안에서 사랑의 훈계가 있는 가정은 아름답고 복된 가정이다.
 
<오늘의 기도 >
여호와를 경외하며 그 도에 행하는 자마다 복이 있도다. 하나님 감사합니다. 오직 나와 내 집은 여호와만 섬기게 하소서. 그래서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는 가정의 복을 받데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다 구원 받게 하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윤금자목사 / 하늘빛교회


수-만남의 축복
본문: 마가복음 2:1~12
찬송가: 543장
 
만남은 축복이 될 수도 있고 저주가 될 수도 있다. 오늘 본문의 말씀은 한 중풍병자가 네 명의 좋은 친구를 만남으로,예수님으로부터 영육이 고침받는 말씀이다. 가족,친구,이웃,교인을 잘못 만나서 패가 망신하는 경우가 얼마나 많은가? 먼저 우리 자신이 좋은 만남이 되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오늘 우리 사회에는 분열과 갈등이 가득하다. 이런 상황 속에서는 누구도 건강하거나 행복할 수 없다. 외롭고 상처 많은 세상에서 축복의 만남으로 치료되고 회복되며 복된 생애가 되기를 바란다.
 
예수님 중심의 만남이 있어야 한다.
 
예수님께서 마을에 들어오시자 예수님이 오셨다는 소문은 인근 각처에 퍼진다. 예수님 계신 곳에 사람들로 인산인해를 이루었다. 예수님은 이런 상황에 오직 천국 복음을 선포하는 기회로 삼으셨다. 오늘 본문에서 '도를 말씀하셨다'는 것은,구원의 메시지,복된 소식,하나님 나라의 비밀이란 의미로 사용되었다.
 
예수님께서는 인생의 궁극적인 문제를 해결해 주시기 위해 참 생명의 진리를 가르치셨다. 무엇에도 치우치지 않고,오직 하나님의 영광과 인간 구원을 위해 애쓰시는 예수님의 모습은 감동적이다. 예수님께만 구원과 생명과 행복이 있다. 중풍병자와 4명의 친구들이 예수님께 간 것이 축복이다. 예수님 이외의 모든 것은 허상이고 가짜이다. 예수님 없는 삶은 공허하고 무가치하다. 무엇도 예수님의 자리를 채울 수 없다. 우리의 생각,언어,삶,가정,교회가 더욱 예수님 중심이 되어야 한다.
 
사랑 중심의 만남이 있어야 한다.
 
중풍병자는 다른 사람의 도움을 받아야만 한다. 오늘 본문에 등장한 네 사람은 중풍병자를 위해 아낌없이 헌신했다. 아무런 이익이나 대가를 바라지 않고,무조건 베푸는 것이 감동이고 사랑이다. 우리의 봉사가 사업이나 투자가 되어서는 안된다. 베푸는 순간 모든 것을 잊어야 한다. 이런 네 명의 친구가 있다면 얼마나 든든하고 행복할까? 미움은 없고 사랑만 있는 하나님의 사랑으로,가족과 이웃을 사랑하는 만남이 계속 이어지길 바란다.
 
믿음 중심의 만남이 있어야 한다.
 
헌신적인 네 명의 친구의 도움으로 중풍병자가 예수님 계신 곳에 왔다. 그러나 입추의 여지도 없는 군중들로 인해 예수님 앞에 갈 수 없었다. 그러자 친구들은 지붕을 뜯어 구멍을 내었고,결국 상을 달아 예수님께 내려놓았다. 최선을 다하는 모습이다. 예수님은 이런 친구들의 믿음을 보시고,중풍병자의 죄를 사하여 주셨고 병도 치료하여 걸어가게 하셨다. 믿음은 결코 포기하지 않는다. 예수님을 만날 때까지 나아가야 한다. 목적이 이루어질 때까지 달려가야 한다. 믿음은 결단이며 모험이며 값을 치르는 것이다. 예수님이 감동하시는 믿음을 소유하기를 바란다. 믿음 중심의 만남에는 반드시 축복의 열매가 맺혀진다.

<오늘의 기도>
인생의 모든 만남이 예수님 중심,사랑 중심,믿음 중심의 축복의 만남이 계속 되기 원합니다.하나님께 큰 영광을 돌리며 살아가는 우리게 되게 하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심태식목사 / 화목교회


목-열매는 인내의 결과입니다.
본문: 약 5:7-11
찬송가: 187장
 
죠지 아틀레이라는 선교사는 중앙아프리카의 어느 마을에서 원주민들을 상대로 목숨을 걸고 선교했다. 그런데 어느 날 그의 선교활동을 싫어하는 원주민들의 습격을 받았다. 원주민들은 그를 몽둥이로 때리고 창으로 찌르며 무참하게 살해했다. 원주민들은 시체를 버리기 위해서 그를 끌고 갔다. 그 때 원주민 중 한 사람이 선교사의 주머니에서 권총 하나를 발견했다.
 
그 권총은 영국제 다연발총이었고,수 십 발의 탄환이 장전되어 있었다. 그런데 아틀레이 선교사는 몽둥이로 맞고 창에 찔려 죽어가면서도 총을 쏘지 않은 것이다. 왜냐하면 자기가 원주민을 향하여 총을 쏘게 되면,그곳에서의 선교는 끝난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는 스스로 죽음의 길을 선택한 것이다. 그의 주머니에서 총을 발견한 원주민들은 결국 모두 회개하고 예수님을 믿게 되었다. 죠지 아틀레이 선교사는 원주민들의 영혼을 살리기 위해 한 알의 밀알이 된 것이다.
 
하나님은 자비로우시다.
 
하나님은 긍휼히 여기신다. 하나님께서는 욥에게 동방의 제일 부자가 되게 하시고 열 자녀를 주셨다. 그는 하나님을 경외하여 악에서 떠난 자였다. 하나님은 사단에게 욥을 자랑하신다. 사단의 도전 앞에 하나님은 그의 몸만 놔두고 다 건드려도 좋다고 허락하셨다. 그는 재산을 다 잃고,자녀도 잃고,병도 들었지만 하나님을 끝까지 붙잡았다.
 
하나님은 풍성하시다. 결국 그는 갑절의 복을 받는다. 욥은 자기의 신앙을 고백한다. "나의 가는 길을 그가 아시나니 그가 나를 단련하신 후에는 정금같이 나오리라." 성경에는 욥이 고난 받을 당시 70세였으나 1백40년을 더 살았다고 한다. 자세한 기록은 없지만 다시 열 남매를 낳은 것을 보면,부부관계도 회복된 것 같다. 모든 땅에서 욥의 딸보다 아름다운 여자가 없었다. 그는 이전보다 두 배나 많은 재산을 다시 얻는다. 하나님의 회복은 온전한 회복이며 하나님의 축복은 온전한 축복이다.
 
원망하지 말자.
 
광야에서 원망했던 이스라엘 백성들 중 한 사람도 가나안에 들어가지 못했다. "사람이 미련하므로 자기 길을 굽게 하고 마음으로 여호와를 원망하느니라(잠19:3)." 우리가 시련이 올 때 남을 원망하거나 하나님을 원망해서는 안된다. 주님은 은혜주시기를 원하신다. 시험을 통과하면 더 큰 은혜를 주신다.
 
인내해야 한다.
 
주님께서 다시 오실 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 주님께서는 모든 일을 도와주신다. 기도하면 된다. 농부는 씨를 뿌리고,이른 비와 늦은 비를 기다린다. 건조한 날씨,습한 날씨,해충과 질병,잡초,가시나무와 같은 시련들과 싸운다. 그러나 그는 시련을 이기기 위해 할 수 있는 모든 일을 다 한다. 왜 그럴까? 그의 눈은 추수 때 고정되어 있다. 주님은 우리가 열매맺기를 기다리신다.
 
<오늘의 기도>
오늘도 새날을 주시고 일거리를 주시고 그때그때 우리의 기도를 들으시며 도와주시는 살아계신 하나님 아버지 감사합니다. 어려운 일이 오더라도 인내하게 해주세요. 피할 길을 주신다 하신 주님의 말씀을 붙잡습니다.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김신호목사 / 부천명성교회


금-사람의 방법으로 싸웠다면
본문: 고전 15:29-34
찬송가: 300장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로서 세례를 받고 그에 따르는 합당한 신앙을 생활을 하고 있다. 세례는 교회에 참가하는 엄숙한 입회를 의미하며 자신에게는 은혜의 계약에 인침을 받는 표가 되어 그리스도에게 접붙임을 받고 중생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새 생명으로 살겠다고 하나님께 자신을 봉헌하는 표와 인침이다.
 
이러한 세례의 의미와 같이 바울은 거듭남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새생명을 이어갔다. 바울은 삶의 매일을 죽음과 직면하였다. 그가 험한 세월을 살았음을 우리는 그의 고백을 통하여 알수 있다.
 
"그들이 그리스도의 일꾼이냐 정신 없는 말을 하거니와 나는 더욱 그러하도다 내가 수고를 넘치도록 하고 옥에 갇히기도 더 많이 하고 매도 수없이 맞고 여러 번 죽을 뻔하였으니 유대인들에게 사십에서 하나 감한 매를 다섯 번 맞았으며 세 번 태장으로 맞고 한 번 돌로 맞고 세 번 파선하고 일 주야를 깊은 바다에서 지냈으며 여러 번 여행하면서 강의 위험과 강도의 위험과 동족의 위험과 이방인의 위험과 시내의 위험과 광야의 위험과 바다의 위험과 거짓 형제 중의 위험을 당하고 또 수고하며 애쓰고 여러 번 자지 못하고 주리며 목마르고 여러 번 굶고 춥고 헐벗었노라(고후 11:23-27)."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의 자랑은 '나의 약한 것(고전 11:30)'이다.
 
바울에게는 매일 살아가는 것이 어려움이었음에도 그의 마음에 예수 그리스도께서 보증해 주신 부활에 대한 소망이 있었기 때문에 나는 날마다 죽는다며 살았을 것이다. 바울이 거듭남에 대한 확신이 있고 부활에 대한 소망이 있어 에베소에서도 짐승과 싸울 수 있었다. 그것은 영웅이 되려는 바울이 아니었다. 바울은 내일에 대한 소망으로 오늘이 끝이 아님을 아는 부활의식이 충만하였다. 그 부활의식이 없다면 내일이면 죽을 것이기에 오늘 먹고 마시자고 할 것이다.
 
우리가 부활 의식이 있다면 오늘 살아가는 삶의 자리에서 깨어나 거룩한 삶을 살아야 한다. 하나님을 제대로 알지 못한다면 거룩한 삶을 살지 못하기 때문에 오늘 우리 삶의 자리가 부끄럽게 될 것이다.
 
우리가 살아가는 방법으로 바울의 방법과 사람의 방법이 있다. 바울의 방법은 약한 것이 자랑이 되어 나는 날마다 죽는다는 고백이다. 사람의 방법은 영웅처럼 되는 것이며 우리는 내일이면 죽을 것이기에 오늘을 먹고 마시자는 쾌락주의에 빠지는 것이다.
 
신앙인들이 의를 위하여 죽음을 무릅쓰는 것은 장래의 부활을 믿기 때문이다. 이런 모험적 신앙의 마음가짐은 사람의 힘으로 되는 것은 아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부활신앙을 믿는 은혜로 말미암아 이루어지게 되는 것이다.
 
사람의 방법으로 오늘 먹고 마시며 즐기며 사는 것보다는 바울의 방법으로 나는 날마다 죽는다며 오늘을 사는 우리들이 되어야 하는 것이다.
 
<오늘의 기도>
오늘도 하루 해를 주심에 감사드리며 나는 날마다 죽는다는 마음으로 부끄럽지 않은 오늘을 지내게 하여주시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김찬형목사 / 영광교회


토-마음의 소원을 이루는 비결
본문: 시 37:3-7
찬송가: 299장

사람들은 나름대로 희망과 비전을 가지고 산다. 또한 사람들은 자신의 미래에 대해 알고자 하는 욕구가 있어서 우상을 숭배하고,동양철학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사주팔자를 보는 것이다. 그러나 인간의 운명은 생사화복을 주관하시는 하나님의 손에 달려있다. 주님께서 내 앞길을 인도하실 때 불행했던 사람이 행복자가 되고 인간의 힘으로 불가능한 일이 하나님의 힘으로 가능하게 되는 줄로 믿는다. 그러면 우리의 마음의 소원이 이루어지기 위해서 우리가 어떻게 해야 할까?
 
여호와를 의뢰하여 선을 행하되 성실하게 살아야 한다.
 
의뢰한다는 말은 힘 있는 자를 의지하고 자기의 어려운 문제를 그 분에게 부탁하는 것을 말한다. 우리는 하나님 앞에서 철부지 어린아이 같다. 어린이는 분별력이 모자라고 힘이 모자라기 때문에 혼자 가면 길을 잃는다. 그러나 엄마 손 붙들고 가면 안전한 것처럼 성도가 주님의 손에 이끌리어 살 때 안전한 삶이 될 줄 믿는다. 이 세상 살아가는 동안 우리를 온전히 지켜주실 선한 목자는 오직 하나님 밖에 없다.
 
첫째,성경말씀을 읽고 듣고 배우고 암송하고 묵상하는 삶을 우리는 주님 안에 산다고 말한다. 하나님은 말씀 안에 계시기 때문에 말씀을 가까이 하여 읽고,배우고 묵상하는 것이 목자 곁에 있는 양이 된다. 또한 기도를 쉬지 않는 것이다. 마귀의 능력이 제아무리 크더라도 기도하는 시간만큼은 하나님의 손을 붙잡는 시간이기에 마귀가 절대로 헤치지 못한다. 험악한 죄악 세상에서 하나님이 나를 붙잡아주시고,내가 예수님 안에 있으면,능히 마귀를 대적해 이길 수 있다.
 
마음의 소원을 이루기 위해서는 주님에게 맡겨야 한다.
 
길을 맡기라는 말은 인생 전체 여정을 맡기라는 것이다. 교회생활을 영적으로 해야지,육신의 생각대로 하면 늘 곤고하고 문제가 남는다. 오늘 나의 현실이 칠흑같이 어둡다 할지라도 하나님의 약속을 붙들고 내일의 영광을 바라보는 사람은 그 믿음대로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무슨 일을 만나도 부정적으로 생각하거나 말하지 말고 '하나님이 힘주시면 할 수 있습니다. 주님이 나를 도우시니 할 수 있다'는 마음자세로 주님을 온전히 신뢰하고 모든 것을 주님에게 맡기고 살아가므로 마음의 소원을 이루기 바란다.
 
마음의 소원을 이루기 원하거든 때를 기다려야 한다.
 
신앙생활은 농사짓는 것과 비슷하다. 농부가 풍성한 가을을 기대할 때 봄에 씨를 뿌리고 여름에 정성껏 가꾸고 그 다음에 기다림이 필요하다. 내가 해야 할 도리를 다 했으면 이제 기다려야 된다. 또 이 기다리라는 말은 시선을 집중시키라는 말로써 '하나님께서 반드시 좋은 길로 나를 인도할 것이라. 하나님을 바라보는 마음이 변함없이 끝까지 그 길로 가라'는 말이다. 할 도리를 다하고 때를 기다리면 때가 되면 반드시 주님이 이루어주실 것이다.

<오늘의 기도>
한 치 앞을 알 수 없는 삶 속에서도 모든 것을 주님께 맡기고 주님이 이루실 때를 기다리며 성실하게 살게 하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조기덕목사 / 성산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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