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와 현실이 맞닿는 곳, 영화 미드나잇 인 파리

[ 말씀&MOVIE ] 영화 '미드나잇..'

최성수목사 webmaster@pckworld.com
2012년 07월 27일(금) 13:59
[말씀&MOVIE] <미드나잇 인 파리> (우디 앨런, 판타지, 로맨스, 코미디, 15세, 2011)

여행이 한편의 좋은 책을 읽는 독서와 같다면 어떨까? 현대와 같은 비주얼 시대에 여행은 그 어느 때보다도 각광을 받을 수밖에 없다. 과거엔 책으로만 접할 수밖에 없었던 곳을 직접 보고 경험하는 여행은 우리 시대에 적합한 또 하나의 독서방식이다. 그런데 여행을 그저 '스트레스 풀기' 혹은 '추억 만들기'로만 본다면, 특히 경험담의 목록에 채워 넣을 것들을 수집하는 것으로만 본다면, 비싼 여비와 시간에 비해 참으로 안타까운 여행이 아닐 수 없다. 만일 여행지 사람들을 만나고 그들의 삶을 체험하며 그들의 문화를 이해하는 것으로 보면 괜한 궁상을 떠는 일일까?
 
모두가 여행을 계획하고 꿈꾸는 휴가철에 참으로 적절한 소재로 제작된 영화 '미드나잇 인 파리'은 노년의 우디 앨런의 작품이다. 영화보다는 수양딸과 결혼한 스캔들 때문에 더욱 유명해진 코미디언으로서 감독이지만, 이번에는 제대로 된 영화로 관객을 사로잡고 있다. 파리 여행을 소재로 하고 있지만, 기존의 휴가지에서 일어난 일을 다루는 방식과는 전혀 다른 측면의 이야기들을 담고 있고, 대단히 참신한 방식으로 또 재미있게 만들어진 작품이다. 과거와 현재를 넘나들며 과거와 현재 속에서 삶의 의미와 방향을 성찰하는 방식을 대하면서, 여행이란 바로 이런 것이라고 무릎을 치게 만든다.
 
먼저, '미드나잇 인 파리'는 파리 여행에 관한 이야기다. 로드무비는 아니라도 역사적인 유물로 가득한 파리의 곳곳을 배경 삼아 전개되는 장면들은 파리를 회상하게 하고 또 새로운 파리 여행을 자극한다. 영화는 부모의 스케줄에 얹혀 여행에 오른 두 약혼자가 파리에 대한 서로 다른 생각을 나누는 것으로 시작한다. 길(오웬 윌슨 분)은 유명 시나리오 작가이지만 소설을 쓰고 싶어 한다. 그래서 파리에 머물면서 파리 시내 곳곳에 묻어있는 역사적인 흔적들을 호흡하며 자신의 소설을 완성하길 원한다. 심지어는 파리에서 살고 싶어 한다. 길에게 파리는 단순한 여행지가 아니었다. 그러나 그의 약혼녀(레이첼 맥아담스 분)에게 파리는 그저 일시적인 방문지며 여행지일 뿐이다. 결혼을 위한 혼수 준비에 여념이 없고 가능한한 유쾌한 시간을 보내고자 한다. 게다가 파리에서 만난, 대단히 현학적인 미국인 친구와 어울려 다니기를 좋아한다. 그에게 파리는 지식의 일부인 역사적인 도시이지만, 길에게 파리는 충분히 느끼고 공감할 필요가 있는 생동감 넘치는 도시다. 여하튼 파리 여행에 대한 생각의 차이는 여행의 의미가 무엇인지를 진지하게 고민하게 한다.
 
둘째, '미드나잇 인 파리'는 시간 여행에 대한 판타지다. 시간 여행을 다룬 여러 영화들이 있지만 특히 문화사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1920년대와 1890년대의 문화사를 알지 못하면 쉽게 이해하지 못할 정도로 당시 문인이나 예술인들과 조우하는 장면들이 연속된다. 자정을 알리는 종소리와 함께 길은 고풍스런 차를 타고 1920년대로 달려간다. 그곳에서 그는 평소에 존경하고 흠모하며 또 동경하던 작가들과 예술가들을 만난다. 스콧 피츠제럴드와 그의 연인과 친구가 되고, 콜 포터의 노래와 연주를 라이브로 들으며, 피카소와 그의 연인이었던 아드리아느를 직접 대면하는 기쁨도 컸지만, 무엇보다 자신의 작품이 헤밍웨이나 거트루드 스타인에 의해서 읽혀지고 또 평가되는 사실로 충격에 사로잡힌다. 한층 더 나아가 그는 피카소의 연인이었던 아드리아느와 사랑에 빠진다. 그야말로 시공을 초월한 사랑이다. 그녀를 이상적으로 여기며 한창 사랑이 무르익었다 싶을 때, 길은 그녀와 함께 1890년대로 간다. 1890년대의 세계는 길이 아닌 그녀가 동경하던 곳이다. 이처럼 과거와 현재를 오가면서 길은 자신의 삶과 작품, 그리고 약혼녀와의 관계에 대해 새롭게 정립해나간다.
 
셋째, '미드나잇 인 파리'는 사랑 이야기다. 약혼녀와의 사랑이 전부라고 생각했던 길은 파리 여행을 계기로 그녀가 자신에게 맞지 않다는 사실을 확인한다. 그가 하는 일을 이해하지 못하고 또 만족스러워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녀는 길이 헐리웃에서 잘 나가는 시나리오 작가로서 계속 머물러 있기를 바란다. 안정을 바라는 전형적인 여성이었다. 길은 1920년대의 세계에서 이상적인 여인 아드리아느를 만나지만, 그녀가 동경하는 세계는 과거, 곧 1890년대의 세계다. 현실에 만족하며 살기를 원하는 약혼녀와 과거의 세계를 꿈꾸며 그곳에 머물기를 바라는 그녀 모두 길에게는 낯설기만 하다. 그가 바라는 여인은 현실에만 머무는 것도 또 과거에만 머무는 것도 아니었다. 마지막 장면에서 비오는 파리의 거리를 함께 거닐 수 있는 중고품 판매상의 여인을 발견한 것은 길의 파리 여정에서 얻은 가장 큰 행운이며 로맨스였다. 그녀와 길의 사랑을 상상하는 것은 결코 무리가 아니다.
 
파리는 과거와 현재가 함께 어우러지는 도시다. 여행지와 삶을 같은 공간 속에 넣어 둠으로써 누구든 맘만 먹으면 과거로의 여행을 할 수 있도록 구조되었다. 그러나 어떻게 여행하느냐에 따라 전혀 다른 느낌을 받는다는 사실을 영화를 통해서 확인하게 된다. 여행은 낯선 것들과의 조우를 통해 나를 돌아볼 수 있는 기회를 준다. 이제는 "왔노라! 보았노라! (사진을)찍었노라!"로 일관하는 여행에서 벗어나야 할 것이다. 단순한 관광이 아니라 하나의 공감적인 독서가 되고 또한 나를 성찰하는 여정이 될 수 있는 여행이어야 한다. 잘 준비되고 충분히 공감적인 여행에서 과거와 현실(현재가 아니라!)은 언제나 서로 맞닿아 있다. 과거와 현실이 절묘하게 맞닿아 있는 곳에서 우리는 몰아의 경험을 기대할 수도 있다.
 
 
최성수목사 / 神博ㆍ영화 및 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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