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는 브랜드가 아니다(박은호)

[ 논설위원 칼럼 ] 교회의 브랜드화 우려

박은호목사 webmaster@pckworld.com
2012년 07월 27일(금) 13:17

[논설위원칼럼]

"30% 세일 명품관, 하루 손님 5명, 그나마 구경만"이란 기사를 본 적이 있다. 웬만한 불황에도 끄떡 않던 백화점 명품 코너의 경기가 요즘 최악이라고 한다. 한국교회에도 교회 역사나 전통, 또는 신흥 브랜드로 명품화, 대형화 교회를 추구하는 경향이 점증하고 있다. 우려스러운 건, 그런 대형교회들이 거친 표현으로 우리 사회의 '공공의 적'이 되어 가고 있다는 점이다. 상위 5%도 안되는 대형교회들이 한국교회의 주류를 형성하면서 95%가 넘는 대다수의 교회들이 가지고 있는 가치나 이미지까지도 잠식해버리고 있는 실정이다.
 
대형교회는 우리 사회의 곱지 않은 시선처럼 기독교 역사에 등장한 구조적인 악(惡)인가? 선(善)인가? 반대로 소형교회는 구조적인 선(善)인가? 악(惡)인가? 막 개척을 시작한 신생교회나 소형교회들은 우리 사회 속에 비쳐지고 있는 오늘 한국교회의 주류교회들이 만들어낸 브랜드 이미지 문제에서 논외대상이라도 된다는 말인가?
 
교회의 정체성은 교회의 크고 작음에 있는 것이 아니다. 크고 작음의 문제는 하나님께서 결정하시는 하나님의 영역이요, 하나님의 뜻이다. 일전에 분당우리교회 이찬수목사가 분당우리교회가 가지고 있는 '그 교회'의 영적과제를 고민하면서 선포한 설교내용을 가지고, 교회의 본질이 무엇인지도 모르는 언론들이 그들의 시각으로 마치 '한국교회의 새로운 이정표'라도 제시한 것처럼 보도한 것을 보면서 안타까움을 금할 수가 없었다.
 
또 이미 어느 교회가 실천한 교회 분립을 두고, 그 역시 새로운 패러다임의 교회 모델처럼 언급하고 있지만, 그 교회의 분립도 결코 자랑거리가 될 수 없다. 더더구나 모든 대형교회들이 그 교회처럼 교회분립을 해야 하는 것도 아니다. 그 교회가 대형교회의 길목에서 여러 교회로 분립한 것은 '그 교회가 직면한 그 교회만의 영적과제'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것을 붙잡고 하나님의 뜻을 구했을 때, 하나님께서 그 교회에 행하신 하나님의 방식이 분립이었던 것 뿐이다.
 
초기 예루살렘교회를 보라! 오순절성령강림으로, 마가라 하는 요한의 어머니 마리아의 집 다락방에서 시작된 1백20문도로 시작한 초기 예루살렘교회가 얼마 안 돼서 3천명 교회로, 그 3천명 교회가 또 5천명 넘는 교회가 되지 않았던가? 그 과정에서 사도들이 박해를 당했고, 교회 내 '아나니아와 삽비라' 사건, '히브리파와 헬라파 제자들' 사이에 갈등이 일어나기도 했지만 예루살렘교회는 하나님의 말씀이 점점 왕성하여, 제자의 수가 더 심히 많아지고, 허다한 제사장의 무리까지도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의 도 앞에 복종하는 교회가 되지 않았던가? 초기예루살렘교회가 부흥을 거듭하면서 대형교회가 되자, 교회의 대형화로 인한 갈등이 일어났던 교회이다. 그러나 교회의 대형화 자체를 본질적인 문제로 여기지는 않았다. 한 가지 다른 점은, 대형화 되면서 불거질 수밖에 없었던 갈등을 푸는 방식이 오늘 대형교회들 안에 일어나는 갈등해결 방식과 차원이 달랐을 뿐이다.
 
대형교회가 되어 가던 초기 예루살렘교회에 갈등이 일자 열두 사도들이 제시한 해법은, 두 가지였다. 첫째는, 사도들이 구호사역으로 잠시 소홀하게 여겼던 '기도하는 일'과 '말씀 사역'에 전무하기로 한 것이다. 둘째는, 그러기 위해서 성령과 지혜가 충만하여 칭찬 받는 사람 일곱을 택하여 새로운 일꾼을 세우는 일이었다. 갈등과정 속에서 뽑아 세운 일곱 사람 중 하나인 스데반이 새로운 교회변혁의 중심축이 되면서 초기 예루살렘교회는 역사적인 대 지각변동을 겪게 된다. 스데반 순교사건과 더불어 일어난 박해사건은, 대형교회로 고착되어 가던 초기 예루살렘교회를 산산조각 내고 말았다. 중요한 것은 바로 이 사건은, 하나님께서 직접 행하신 하나님의 섭리적인 사건이었다는 점이다. 하나님이 초기 예루살렘교회를 대형교회로 예루살렘에만 묶어 두지 않으시고 온 유대와 사마리아로, 땅 끝까지 복음 들고 나아가는 교회로 흩어지게 하셨던 것이다.
 
대형교회든, 소형교회든 그 규모와 외형으로 교회의 본질을 논하는 것은 부질없는 짓이다. 한 가지 부언한다면 교회의 대형화와 브랜드화를 추구하는 마케팅교회운동을 지양해야 한다는 점이다. 교회마다, 하나님의 부르심 앞에서 교회 본질을 붙잡고 고민하면, 하나님께서 각 교회들마다 가장 적절한 방법으로 하나님의 선교(Missio Dei)를 위해 써 주실 것이다.

박은호목사 / 정릉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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