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장과 교사

[ 이연옥명예회장의 향유 가득한 옥합 ] 교장과 교사

이연옥명예회장 webmaster@pckworld.com
2012년 07월 17일(화) 09:46
(이연옥명예회장의 향유 가득한 옥합)

교원 인사행정을 하다 보면 기독교 학교의 정체성을 살리고 계승하기가 참 어려운 일이 종종 발생했다. 신임 교원을 뽑을 때 그 선발기준을 신앙상태(세례교인 기준)에 우선 점수를 줘야 할 것인지, 아니면 실력에 점수를 줘야 할 것인지 고심해야 할 경우가 드물지 않았다. 물론 신앙 좋고 실력도 탁월한 이가 지원한다면 고민할 필요가 전혀 없겠으나 가끔은 둘 가운데 하나를 선택해야 했다. 정신학원의 교원 선발은 1차 서류 심사를 통해 후보자 몇 명을 선발하고, 교장이 교감과 머리를 맞대고 그 후보자들의 이력서를 낱낱이 꼼꼼하게 살핀 다음 2~3명을 임용 후보자로 선발해서 이사회에 올리면 이사회가 그중에서 한 명을 낙점해 최종 결정했다. 그 과정에서 이사회는 대체로 교장의 의견을 경청하고 나서 후보자들 가운데 한 사람을 뽑았다. 그런데 이때 세례를 받지는 않았으나 교장인 나로서 "욕심 나는 사람"이 나타나면, 그 사람을 이사회가 낙점하도록 강력하게 추천했다. 그러면 이사회는 나더러 "일 년 안에 이 사람이 예수 믿고 교회 잘 다니게 하겠다"는 각서를 쓰게 하고서 그의 임용을 최종 결정했다.
 
이런 식으로 선발된 선생님 두 분이 내 기억에 남아 있는데 한 분은 술과 담배를 끊지 못해 종래 학교를 떠났고, 또 다른 한 분은 예수 잘 믿고 나중에 장로님이 되셨다. 어느 날 담배를 좀처럼 끊지 못하던 그 선생님은 자신이 금연하지 못한다는 사실을 교장이 알고 있을 뿐 아니라 자신과 금연을 위해 이렇게 껌을 사들고 집으로 방문했다는 것에 감동을 받았다. 그러나 결국 금연 노력에도 불구하고 성공하지 못하고 학교를 떠났다.
 
교사들이 모이는 사회에서도 비슷한 사람들끼리 모임을 만드는 일이 가끔 있었다. 새로 학교에 부임한 새내기 젊은 선생들이 자기들끼리 모임을 가졌는데, 그 가운데서 고려대학교를 졸업한 국어 교사가 가장 말발이 좋았다. 이분을 중심으로 똘똘 뭉친 선생님들이 툭하면 학교의 정책을 비판하고 학교행정에 대해 이러쿵저러쿵 뒤에서 수근거렸다. 나는 참다 못해 그 국어 선생님을 교장실로 불러다 앉혀 놓고 집단행동을 삼가라고 충고하며 따끔하게 꾸짖은 다음 교장의 학교운영 방침에 협조해 달라고 당부했다. 그리고 나서 그 모임에 속해 있는 교사들을 한명 한명 따로 불러서 면담했다.
 
그러면서 이분들 스스로가 새로운 발전과 더 나은 길을 찾아 나서도록 충고했다. 장래가 창창한 젊은 교사들이 이 학교에서 가르치는 데 만족해 그냥 주저앉지 말고 대학원에 진학해 공부를 더 하라고 권면했다. 오후 4시 반이나 5시 정도에 조금 일찍 퇴근하면 얼마든지 야간 대학원에 다닐 수 있기에 교장으로서 내가 선생님들이 공부하도록 밀어 주겠다고 권했다. 그랬더니 그중에 몇몇이 대학원에 진학했다. 그중 한명은 청주대학의 교수가 되었다. 또 다른 이는 신학대학원에 진학해 목사가 되었다. 세월이 지나고 내 나이 회갑이 되었을 때 그때 선생님들 스무 명 정도가 나를 위해 회갑잔치를 열어 주었다. 기쁜 마음으로 그 자리에 참석한 나는 답사에서 "나를 그렇게 애먹이던 분들이 내 회갑잔치를 열어 주시니 참으로 감회가 깊다"고 술회했다. 그러자 그 자리에 참석한 모든 이들이 웃음으로 화답했다. 나는 그들의 아름답고도 발전적인 변화에 감사했다. 정신학원의 고등학교 교장 선생님이 정년 은퇴하시고 나서는 내가 그 자리로 부임하게 되었다. 1976년 봄학기에 나는 고등학교 교장에 취임했다.
 
그런데 부임하면서 걱정거리가 생겼다. 교장은 항상 교감의 협조를 잘 받아야 하는데 어떻게 해야 교감 선생님과 좋은 동역관계를 유지하며 교장 업무를 수행할 수 있을까 고민이 된 것이다. 혼자서 이 궁리 저 궁리 하다가 남편 임옥 목사에게 이 고민을 털어 놓았다. 내 고민을 들은 남편이 교감 선생님 내외와 우리 부부가 만나서 함께 식사하자고 제안했다. 나는 좋은 제안이라고 생각되어 교감 선생님 부부를 초대했다. 임옥목사님은 이 부부를 위해 자필로 기념인사를 적어 넣은 성경찬송을 준비했다. 예약한 식당에서 우리 부부는 교감 선생님 부부와 식사한 다음 남편 임옥 목사님이 "우리 집 사람이 초년병이나 다름없는데 교감 선생님이 우리 집 사람보다 연세도 높으시고 경험도 풍부하시니 신임 교장이 된 우리 집 사람을 잘 도와주시면 대단히 감사하겠습니다"라고 인사드렸다.
 
이날의 만남은 매우 유익했다. 그 이후에 나는 교감 선생님과 좋은 관계 속에서 원만하게 업무를 처리했다. 그래서 지금도 그때를 되살리며 "만남이 은혜가 되어야 한다. 만남이 원수로 갈라지게 해서는 안 된다"는 소신을 갖고 있다. 내 생애를 돌이켜 보면 항상 이렇게 귀한 만남의 연속이었다. 그 가운데서도 가장 으뜸은 내 남편 임옥 목사님과의 만남일 것이다. 교장으로서 내가 늘 관심을 둔 사람들은 학교의 청소와 환경미화를 도맡아서 일하는 분들이었다. 그래서 이 분들이 자기 스스로 하는 일에 보람을 얻고 만족할 수 있도록 늘 챙기고 다독거렸다. 그래서인지 이들이 자주 상담하러 교장실로 찾아왔다.
 
 
이연옥 명예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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