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외된 곳을 찾아서 V - 낙도의 선장

[ 최종률장로의 빈방있습니까? ] 낙도의 선장 목사

최종률장로 webmaster@pckworld.com
2012년 07월 13일(금) 19:34

최종률 장로의 빈방 이야기 <26>

서해의 외딴 섬에서 방위병으로 근무하던 증언의 배우 출신 젊은이가 있었다. 그의 주선으로 작은 낙도에 선교공연을 가게 됐다. 봄날 오후,모처럼 여유롭게 한적한 시골길을 달리는 기분이 무척이나 상쾌했다. 차창 밖으로 활짝 피어난 배꽃들이 봄의 정취를 물씬 풍기고 있었다. 선착장에 도착하고 보니 상상했던 풍경 속의 선착장이 아니라,바다 쪽으로 경사진 축대에 밧줄로 배를 고정시켜 놓은 게 전부였다. 육지에서는 몰랐는데 어느새 바닷바람이 심해져 있었고 파도가 축대를 때리는 모습이 심상치 않았다. 축대 위 말뚝에서 배까지 연결된 밧줄을 잡고 좌우로 흔들리는 배에 겨우 오르자 장화가 붙어있는 고무옷 차림의 선장이 우리를 반갑게 맞아주신다. 자기소개를 하실 때야 비로소 '○도 교회'의 목사님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파도에 요동치는 철갑 동력선 위에서 잔뜩 겁을 먹은 우리와는 달리 키를 잡은 선장 목사님은 여유 그 자체였다. 어떻게 목사님이 직접 배를 모느냐고 물었더니,배는 섬에서 목회하는 목사님들을 돕는 기관인 낙도선교회에서 마련해준 것이고,그 배는 섬에서 뭍으로 왕래하는 유일한 교통수단이어서 당신이 허락하지 않으면 주민들도 꼼짝을 못한다고 하며 껄껄 웃으신다. 그러면서 섬이 곧 지도상에서 사라지게 된다는 충격적인 얘기를 들려주신다. 작은 바위섬인 ○도가 건설회사에 팔렸는데, 회사에서는 섬을 폭파하여 돌을 건축자재로 되판다는 섬뜩한 내용이다. 이미 보상에 합의한 주민들이 뭍으로 이주하기 시작했고, 곧 발파 작업에 들어갈 것이라고 한다. 세상에! 어떻게 그런 일이 가능할까. 그 공포스러운 경제논리에 할 말을 잊었다.

그날 저녁,섬의 언덕받이에 서있는 작지만 그림처럼 예쁜 교회에서 어쩌면 주민들에게는 마지막이 될지도 모를 연극이 공연되고 있었다. 비록 다음날이 섬의 초등학교 소풍날이어서 도시락 준비 등으로 관객은 적었지만 무대에 임하는 우리의 자세는 사뭇 숙연했다. 공연 후 바다를 조망할 수 있도록 만들어놓은 별실에서 조개국과 숭어회로 맛있는 저녁식사를 대접받으며 우리는 목사님을 위로해드리려 애썼다. 그러나 정작 본인은 담담했다. "물론 하나님께서 인도하시겠지만,아마 다음 목회지도 섬이 되지 않을까 합니다." 가슴이 먹먹해왔다.

이튿날 뭍으로 나오는 뱃길은 화창해진 날씨로 순항이었다. 마침 썰물 때여서 섬과 육지의 중간지점에 작은 무인도가 백사장을 드러내고 있었다. 배를 대고 잠시 쉬어가기로 했는데 거기서 또 하나의 소설같은 얘기를 듣게 되었다. '○도 교회'에 부임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그 무인도에서 갑자기 불어난 밀물에 어린 딸을 잃었다는 슬픈 사연이었다. 글을 쓰고 있는 지금도 감정을 절제하기가 어려워진다.

하나님,소외된 곳,낮은 곳에서 이름 없이 빛도 없이 묵묵히 헌신하고 있는 주의 종들에게 은총을 베풀어 주소서. 한국교회가 저들을 돕는 일에 열심을 갖게 하소서…!


최종률장로 / 연극연출가ㆍ배우ㆍ한동대 겸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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