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7회 이기혁 총회장, 제48회 강신명 총회장

[ 김수진목사의 총회장 열전 ] 총회장열전

김수진목사 webmaster@pckworld.com
2012년 07월 11일(수) 13:43

 제47회 이기혁 총회장

이기혁(李基赫, 1898-1984) 목사는 평안북도 용천에서 출생하였으며, 일찍이 고향으로 떠나 의성으로 이사를 하여 그곳 용산교회 주일학교시절부터 신앙생활을 했다. 어머니는 그를 선천 신성중학교에 유학 시키고 아들의 학비를 위해 식당에서 일을 했으며, 이기혁도 학내 목공실습소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중학교를 졸업했다.
 
1930년 평양 장로회신학교에 진학을 하였으며, 신학교를 졸업하고 목사 안수를 받은 후 1939년 용천에 있는 용암제일교회에서 화던 중 1940년 용천노회장으로 선임되기도 했다. 이곳에 목회하던 중 8ㆍ15 해방을 만나자 소련군의 진주로 어느덧 공산주의 세상이 되고 말았다. 이 무렵 공산주의 세력들은 용암포제일교회를 습격하고 이기혁을 타도하자는 말에 더 이상 용암포에 있을 수 없음을 알았던 이기혁은 가족을 이끌고 1947년 야밤을 이용하여 월남을 단행했다. 그런데 이미 인천에서는 서울 영락교회 여전도회에서 파송을 받았던 황병혁목사가 월남했던 교인들과 가정예배를 드리다가 황병혁목사가 다른 지역으로 이동해 가자 그곳에 이기혁목사가 부임했다. 때마침 일본인교회를 접수하고 예배를 드렸다. 해가 갈수록 이북에서 시낭의 자유를 찾아 온 월남인들이 많아지자 자연히 부흥성장해 가게 되었다. 일본인 교회당을 헐고 새로 교회당을 신축했지만 계속 교회가 부흥되자, 피난민들이 살고 있는 연수교회를 비롯해서 군자교회, 남동교회, 송도교회, 주안교회, 인천 제2교회, 제3교회, 제4교회, 제5교회 등을 분립시켜 주었다.
 
이기혁 목사는 인천에서 대형 교회로 성장시킬 수 있었지만 감리교 선교구역이었던 인천에서 교회를 분산하는 것이 좋겠다는 목회철학을 갖고 인천 시내에 많은 장로교회를 설립하면서 감리교 선교 구역이었던 인천 장로교 선교구역을 만들어 가고 있었다. 여기에 인성초등학교부터 인성여자중. 고등학교까지 설립을 하였다. 이러한 경력이 인정이 되어 1962년 9월 영락교회에서 모이는 총회에서 총회장으로 선임되었다. 
 

 제48회 강신명 총회장

강신명(姜信明, 1909-1985) 목사는 경상북도 영주에서 강병주 목사의 장남으로 출생을 했다. 일찍이 부친께서 기독교에 접목이 되어 그의 영향으로 평양 숭실학교를 거쳐 평양숭실전문학교에 진학했다. 여기에 부친의 영향을 받고 평양 장로회신학교를 진학하여 1938년에 졸업했다. 목사안수를 받고 1940년 일본 동경에 있는 동경신학대학에 유학하여 구마노(能野義孝)교수 밑에서 종말론과 에큐메니칼 신학을 배웠다. 다시 귀국하여 선천 북교회에서 목회를 하였으며, 이미 그는 음악에 뛰어난 재간이 있어서 3백 여곡에 달하는 동요를 남기기도 했다.
 
그러나 1945년 8ㆍ15 해방을 맞이하자 난데없는 소련군이 설자리를 잃고 곧 바로 월남하여 서울 동대문 밖에 동흥중학교를 설립했다. 이때 그는 서울 영락교회 한경직목사와 함께 동사목사로 시무를 했다. 1953년 도미하여 미국 프린스톤신학교에서 역사신학과 함께 종교교육을 전공하고 귀국했다. 귀국 한지 얼마 안되어 새문안교회에서 목사 청빙을 받고 그 교회에서 목회를 하기 시작했다. 그는 남다른 명석한 머리를 갖고 있었다. 대심방을 맞이하게 되면 교적부 없이 심방하는 가정마다 모든 식구들의 이름을 거론하면서 기도하는 모두들 놀래키고 말았다.
 
여기에 더 놀라운 일은 남자 여자 가리지 않고 교인이 사망하게 되면 직접 염을 하여 모두들 놀랐다. 이러한 일로 새문안교회는 계속 부흥 성장하면서 한국 장로교회의 모교회의 자리를 잡아 가고 있었다. 역시 그는 학자였기에 장로회신학대학교에서 기독교육을 강의를 하게 되면 60명이 넘는 신학생들의 이름을 다 암기 할 정도니 그의 머리가 어떠했음을 잘 보여주는 장면이기도 하다. 또한 새문안 교회 내에 야간으로 공부할 수 있는 장로회신학교(현 서울장신대학교)를 설립하여 많은 목회자를 배출하기도 했다. 그 후 교회를 은퇴하고도 숭실대학 총장을 역임을 했다. 
 
 
김수진목사 / 한국교회사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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