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힌 변기를 뚫어주는 교장 선생님

[ 이연옥명예회장의 향유 가득한 옥합 ] 이연옥명예회장

이연옥명예회장 webmaster@pckworld.com
2012년 07월 11일(수) 10:31
이연옥명예회장의 향유 가득한 옥합

김필례 이사장님은 선생님들에게도 큰 관심과 사랑으로 대하셨다. 당시만 해도 미국에서 들어오는 구호물자가 많았는데 김 이사장님은 소위 '구제품' 양복을 한 아름 구해 와서 교무실에 갖다 놓고 선생님들이 각자 몸치수대로 골라 입게 하셨다. 이사장 김필례 선생님은 학생 배려와 학생 사랑에 바탕을 둔 학교 행정을 나에게 전수해 주셨고,나 또한 그분에게서 깊은 감동을 받으며 그분의 가르침을 받아 들였다. 그분이 그렇게 하셨듯이 나도 매일 아침 보리차 끓이는 것을 꼼꼼하게 점검했고 날마다 몇 번씩 화장실 위생 상태를 점검했다. 전교 학생이 수업 받느라 교실에 있는 시간에 나는 텅 비어 있는 화장실로 가서 일일이 문을 열어 보고 변기 속을 들여다 보았다. 이때만 해도 서울의 일반 가정에서는 재래식 화장실을 사용했고 학교는 수세식 화장실을 설치했다. 그런데 그 당시 학생들은 수세식 화장실용 화장지를 사용하지 않고 종이(신문지)를 사용했다. 때문에 변기 구멍이 수시로 막혔다. 그렇게 막힌 변기를 직업 손으로 뚫을 때가 많았다. 이것을 우연히 목격하게된 학생들 가운데는 교장이란 화장실 청소하고 막힌 변기를 뚫는 사람으로 알았다.

한번은 5월 어느 날 날씨가 조금 덥다고 느껴져서 교장실 문을 조금 열어 놓고 의자에 한가하게 앉아서 신문을 보고 있는데 중학교 1학년 7반 반장과 부반장이 나를 찾아왔다. 그 학생들이 다급한 목소리로 보고하기를 "교장 선생님 우리 화장실이 막혀서 물이 안 내려 갑니다."라는 것이었다. 그 아이들을 데리고 나는 얼른 화장실로 갔고 거기에서 당장 직원을 불러서 화장실을 고쳐 놓게 했다. 내가 중학교 교장으로 일할 때였다. 초여름으로 접어든 계절이었는데 학부형 한 분이 나를 찾아오셨다. 삼십대로 보이는 젊은 부인이었는데 옷차람이 매우 허름했다. 그분을 교장실 안으로 모시고 자리를 권한 다음 "어떻게 오셨느냐"고 말을 건넸다. 그 부인은 가정의 경제사정을 이야기했다. 딸아이가 지금 중학교 1학년에 다니고 있는데 그 아이는 네 자녀의 맏이이며 아빠는 지금 병으로 꼼짝도 못하고 자리에 누워 있고 엄마인 자신이 인천에서 생선을 떼어다가 동새문 시장으로 가져와 장사하며 겨우겨우 먹고 산다는 것이었다. 사정이 그러하다 보니 딸아이의 등록금을 제때에 마련할 수가 없다고 했다. 당시에는 중ㆍ고등학교의 등록금 고지서가 분기별로 3개월마다 1년에 네번 나가는데 만일 등록금을 제때에 납부하지 않으면 학교에 나와도 출석으로 인정되지 않았고 시험을 치러도 평가 점수가 나오지 않았다.

이러한 학교행정 때문에 등록금을 내지 못한 그 학생은 선생님이 출석을 부를 때 자기 이름을 쏙 빼고 부르고 시험을 쳤는데도 채점 결과가 나오지 않는 매우 안타까운 상황에 처해 있었다. 속이 상할 대로 상한 그 아이가 엉엉 울면서 엄마에게 학교에 다니지 않겠다고 했다고 한다. 딸아이의 등을 떠다밀며 억지로 학교에 보낸 엄마는 그 아이와 같은 심정을 안고서 학교의 서무과장을 찾아뵙고 형편과 사정을 이야기했다. 딱한 사정을 들은 서무과장은 행정적인 답변만 할 수 있을 뿐 그 어떤 해결책도 제시할 수가 없었다. 출구가 꽈 막힌 상황으로 내몰린 엄마는 급기야 교장실로 찾아와 하소연하게 되었다.

나는 그분의 말씀을 다 듣고 나서,"서무과장하고 잘 의논해서 일단 딸아이가 학교에 다닐 수 있도록 처리할 터이니 등록금이 마련되는 즉시 학교에 납부하시라"고 말했다. 그러자 무거운 발걸음으로 교장실을 찾아온 엄마의 얼굴이 갑자기 환하게 피어오르는 것이었다. 생선 광주리를 머리에 이고 다녀서 그런지 얼굴이 햇빛에 그을었는데,그 얼굴에 하얀 이를 드러내며 환한 미소를 띠고 험한 노동으로 거칠어진 두 손으로 내 손을 감싸쥐며 "감사하다"는 말을 되풀이했다. 나는 그 분을 복도 끝까지 안내했다. 그 엄마는 작별인사를 하고 몇 걸음 걸어가다가 뒤돌아서서 나를 향해 팔뚝을 쑥 내 보이며 이런 말을 던졌다. "교장 선생님,장사가 여의치 않으면 제가 피를 뽑아서라도 딸아이 등록금을 꼭 마련하겠습니다." 그때 나는 세삼 생각했다. "이것이 우리나라 어머니의 심정이구나!" 이것은 수십 년 전에 있었던 일이어서 그 아이의 이름도 잊어버렸고 또 그 엄마의 얼굴도 아련하지만 그분에게서 받은 어머니의 마음만은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되고 있다.

이 학교의 교목 출신인 나는 중학교 3학년만을 위한 특별 신앙훈련 프로그램인 '신앙연수'를 실시했다. 요즘 말로 표현하자면 '신앙부흥회'였다. 학교에서 해마다 개최되는 부흥회 이외에 중학교 3학년만을 위한 특별신앙집회를 시작한 것이다. 학교의 연례행사로 개최되는 부흥회는 중학교 전체가 다 함께 참석하는데 3학년 신앙연수는 그 학년만 따로 며칠 동안 영락교회 기도원으로 올가가서 수업 대신 신앙훈련을 실시했다. 졸업을 앞둔 3학년 학생에게 이런 신앙훈련이 꼭 필요하다는 확신에서 시작한 프로그램이었다. 이 신앙훈련을 위하여 교목실의 모든 역량을 결집시켰다. 그때 이 신앙훈련을 받은 학생들이 이제는 나이 50,60대의 여성이 되었는데 그들의 이야기로는 이 신앙훈련이 학창시절을 기억하는 가장 큰 추억이고 신앙생활에 자양분이 되었다고 한다.


이연옥명예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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