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외된 곳을 찾아서 IⅤ- 농어촌 미자립교회와 나환자촌

[ 최종률장로의 빈방있습니까? ] 미자립교회 나환자촌

최종률장로 webmaster@pckworld.com
2012년 07월 10일(화) 13:34
최종률 장로의 빈 방 이야기 <25>

극단을 초청하는 교회 담임목사님의 전화를 받는다. "죄송한 말씀이지만,교회가 아직 힘이 없어서 모실만한 형편이 못 됩니다. 그래도 도와주신다면 저희로서는 큰 도움이 되겠습니다."

"염려마세요. 목사님. 하나님께서 채워 주시니까요." 사례를 걱정하시는 목사님을 안심시켜드리고 나면 또 한 번의 순회공연 준비로 바빠진다. 선교극단들의 순회공연은 원칙적으로 자비량 사역이다. 물론 배우나 스태프도 사례는 없다. 장거리 순회를 하고 돌아와 자정을 넘기는 경우 택시비 나눠주는 것이 전부다. 어떤 곳이든 부르면 달려가다 보니 어떤 조건,어떤 환경에서도 공연이 가능하도록 나름의 노하우도 생겼다. 농어촌의 작은 교회들을 방문할 때면 좁은 무대도 문제지만 무엇보다 관객 동원의 어려움이 있다. 주민들이 농사일과 바다일로 바쁜데다가 교회 행사에는 별 관심이 없기 때문이다. 이때 위력을 발휘하는 것이 포스터와 노방 홍보 작전이다. 특히 TV탤런트들로 구성된 극단 '믿음'의 경우 방송으로 얼굴이 알려진 배우들이 많아 홍보효과가 크다.

"할머니,저 혹시 아세요?"
"글쎄… 어디서 본 것 같기도 하고……."
"'대추나무 사랑 걸렸네'의 이장." "저는 둘째 며느리."
"맞다!"
"오늘 밤,여덟시에 교회에서 재미있는 연극 하는데 저녁 잡수시고 꼭 오세요."

그날 밤,손주들을 거느리고 오신 할머니는 연극과 설교를 통해 십자가의 피 묻은 복음을 듣게 되고 담임 목사님에게 교회 나올 것을 약속한다. 공연 후 우리는 교회 옆 텃밭에서 집사님들이 뜯어온 신선한 완전 무공해 제철 채소로 쌈밥 정식(?)을 즐긴다. 사례비는 없다. 농어촌 미자립 교회 방문공연의 풍경은 대략 이렇다.

한 번은 상계동에 있는 나환자촌 교회의 초청을 받았다. 늦은 봄 화창한 주일 오후였다. 마을 입구에 들어서자 우리를 환영하기 위해 예배당 앞에 도열해 있는 환우들이 보였다. 음성 나환자들이라 얼굴과 손가락이 변형돼 있었다. 순간 당혹감이 몰려왔다. 저 분들하고 악수를 해야 할 텐데……. 시작부터 난관이다.

애써 표정관리를 하며 겨우 그 분들과 악수와 인사를 나누고는 교회 안으로 들어갔다. 이번에는 특이한 냄새가 신경이 쓰였다. 이 정도의 상황에도 힘들어하고 있는 자신이 부끄러워졌다. 기도를 한 후 단원들과 무대 세팅에 들어갔다. 무대가 너무 좁아서 술집 공간은 객석의 절반을 차지해버렸다. 배우들이 퇴장해도 대기할 공간이 없어서 할 수 없이 객석 옆으로 돌아 일단 밖으로 나갔다가 암전이 되면 다시 들어와야 하는 곤란한 상황이었다. 그 날 어렵게 시작했던 공연은,그러나 여느 때와는 다른 특별한 감동을 경험하게 했다. 나환자들이 흘리는 눈물,복음 앞에 마음을 여는 가난한 영혼들……. 돌아오는 차 안에서 우리는 기쁨과 감사의 찬양을 드렸다.


최종률장로 / 연극연출가ㆍ배우ㆍ한동대겸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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