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교단,과연 장로교회인가?

[ 논단 ] 장로교 예배 모범

정장복총장 webmaster@pckworld.com
2012년 07월 09일(월) 17:01

주간논단

20세기 중반까지 세계적인 물리학자로 명성을 떨쳤던 알베르트 아인슈타인이 '만년에 생각한다'는 글에서 "종교 없는 과학은 절름발이이며,과학 없는 종교는 맹목(盲目)이다"라는 유명한 말을 남긴 바 있다. 그래서 인류는 종교만을 의지하던 시대를 지나 과학과 병행하는 시대를 추구하면서 오늘에 이르고 있다. 그런데 문제는 종교가 종교다워야 종교로서 인정을 받는다. 그렇지 않은 종교는 모두 사이비 종교집단들로서 어느 한정된 시간에 등장했다가 사라지는 것이 종교의 역사이다.

바른 종교에 대한 종교학자들의 견해는 언제나 다음의 3대 요소를 갖추어야 한다는데 일치하고 있다. 먼저는,인간이 믿고 섬기는 대상이다. 둘째는,자신이 신앙하는 대상을 예배하는 의식이 있어야 한다. 셋째는,현세 이후에 있어야 할 내세관이 확고해야 한다. 이상과 같은 종교에 대한 정의를 보면서 우리 기독교는 어떤 종교보다 우월한 내용을 갖추고 있음을 본다. 특별히 장로교는 성삼위 일체 되신 하나님을 섬기는 종교로서 그 대상이 확고하다. 그리고 하나님을 예배하는 예배 행위가 정중하고 진지하여 그 우수성을 인정받고 있다. 거기에 더하여 구원받아 하나님의 자녀들이 현세를 떠났을 때 가야 할 내세관이 뚜렷하다.

그런데 우리 한국장로교는 최근 들어 종교의 두 번째 요소인 예배 행위에 매우 큰 탈선의 조짐을 보인다. 유구한 장로교 예배의 틀이나 내용이 매우 많이 사라지고 있다. 예배의 내용은 장로교 예배의 전통을 상실하고 그 흔적마저 보이지 않는 교회가 속속 등장하는 현실이다. 뿐만 아니라 예배를 드리는 예배의 공간에서 나타나는 문제점은 실로 심각한 경지에 이르고 있다. 예배를 진행하는 성단의 형태에서 우리는 매우 큰 실수를 범하고 있다. 그것은 예배당마다 성단을 모두가 무대의 개념만을 도입하고 있다는데 아연실색하지 않을 수 없다. 말씀이 선포되고 성찬성례전이 집례 되고 있는 성단에 전혀 존엄성이 보이지를 않는다. 원래의 기독교 전통은 성단에 지성소를 갖추었다. 그것이 정교회가 지금껏 보존해온 형태이다. 그 후 1054년 동서방교회가 분열되면서 서방교회인 로마 가톨릭교회는 지성소를 없애고 그 신비하고 엄숙함을 유지하는 성단을 갖추었다. 종교개혁자들 중에 루터교나 성공회 계열은 가톨릭의 모습에서 약간 빗나갔지만 매주 성찬성례전을 집례해야 하기에 성단에서 지성소의 느낌을 주도록 애를 썼다. 그러나 개혁교회는 성찬성례전을 연 4회로 축소하고 설교 위주의 예배로 나아가면서 성단의 지성소 개념은 대폭 축소되었다. 그러나 예배당마다 성단의 성스러움과 엄숙함을 지키려는 노력하면서 장로교는 예배당마다 그 아름다운 전통을 유지해왔다.

한국교회는 지금 경쟁적으로 예배당을 신축하거나 리모델링을 하는 추세이다. 그러면서 성단은 거의 무대의 개념만을 도입하여 뛰고 춤추는 무대로 전락하고 있는 현실이다. 아무리 눈을 씻고 보아도 높고 엄숙한 지성소의 개념을 찾을 길이 없다. 하나님을 예배하는 곳인지 공연장인지 분간하기 어려운 경우가 많다. 지성소의 개념을 조금이라도 가미한 한국교회 예배당의 성단이어야 한다. 그리고 예배의 내용도 인간의 취향이나 감각에 초점을 두지 않고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데 모든 초점을 맞추어야 한다. '하나님께 영광의 박수'와 같은 엉뚱한 행위가 아니라 예배의 내용으로 하나님의 영광에 주안점을 두어야 한다.

우리 대한예수교장로회가 이어받은 신학의 뿌리는 칼뱅이 성경 중심으로 집대성한 신학이며,예배의 뿌리는 그 신학에 바탕을 두고 존 낙스가 만든 장로교 예배 모범이다. 이 전통이 사라지고 흔적이 없어진다면 우리는 이름뿐인 장로교로 훗날 평가를 받게 될 것이다. 종교가 종교다워야 종교로 인정을 받듯이 장로교가 장로교다워야 장로교로 인정을 받는다는 사실을 우리의 교회는 새롭게 상기할 시점에 서 있다.


정장복총장/한일장신대학교

이 기사는 한국기독공보 홈페이지(http://www.pckworld.com)에서 프린트 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