톨스토이 좋아하세요?

[ 데스크창 ] 데스크창

안홍철 기자 hcahn@pckworld.com
2012년 07월 03일(화) 18:06
톨스토이 좋아하세요? 지난 해 모스크바를 방문할 기회가 있어서 톨스토이의 생가가 있는 툴라 지역의 야스나야 폴라냐를 방문하게 됐습니다. 2010년 한ㆍ러 수교 20주년 기념사업의 일환으로 모 일간지에서 기획했던 '소설가 이문열씨와 함께 하는 러시아 문학기행'이라는 프로그램이 있었죠. '귀여운 여인'의 작가 안톤 체호프나,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의 시인 푸쉬킨, '닥터 지바고'의 보리스 파스테르나크, 그리고 말이 필요없는 톨스토이 등 러시아가 자랑하는 대 문호들을 만나보는 문학기행! 참여하고 싶은 마음은 굴뚝 같았지만 직장에 매인 사람이 그 어디 쉬운 일이겠습니까?
 
이 전에도 러시아에 두 번 출장 다녀온 일이 있었지만 일 때문에 가서 톨스토이를 만난다는 것은 꿈도 못 꿀 일이었습니다. 그런데 지난 해 세 번 째 러시아를 방문하게 됐고 모스크바 장신대의 도움으로 많은 선교지를 둘러보는 가운데 잠시 짬을 내어 야스나야 폴라냐를 방문하게 됐으니 그 감동은 실로 엄청난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툴라지역의 선교지를 방문하고 그 곳에서 설교한 후 오후에 도착한 관계로 이미 입장객 수를 넘겨 그가 생전에 간직했던 생가 내부에는 들어가 보지 못했습니다.
 
그가 소설을 써 내려간 서재를 보는 즐거움은 누리지 못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입구의 호수가를 지나 그가 사색을 즐겼던 자작나무 숲길을 거닐며 그를 느껴보고, 그의 생가와 영지 바깥에 사는 농노들을 데려다가 글을 가르쳤던 농민학교를 보며 그가 품었던 경천애인(敬天愛人)의 사상을 느낄 수가 있었습니다. 한가지 재미있는 것은 한국 관광객들이 너무나 많아져서 생가 구석 구석 이정표가 아예 러시아어와 한글이 병기돼 있었습니다. 국내 기업의 협력으로 이뤄졌다는데 새삼 대한민국의 힘(?)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그의 생가를 지나 1백여 미터 쯤 가면 잔디가 덮여 있는 직사각형 모양의 흙더미가 있습니다. 묘비도 없는 관(棺)모양의 흙무덤, "이것이 러시아 대문호의 무덤이라니!" 꽃다발이 없었으면 무덤인지도 모를 그런 곳에 그가 1백년이 넘도록 묻혀있다는 생각을 하면서 문득 그의 단편 중 '사람은 얼마만큼의 땅을 필요로 하는가'제하의 소설이 생각났습니다. 학창시절 읽었던 톨스토이 단편선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에 수록된 작품이죠. 톰 크루즈와 니콜 키드먼이 주연한 영화 '파앤어웨이(Far and away)'도 이를 원작으로 하여 헐리우드식으로 만들었다는 후문이 있습니다.
 
톨스토이는 대지주의 아들이었지만 자신의 재산을 농노들을 위해 사용하고자 했습니다. 농노들의 문맹퇴치와 관련하여 아내 소피아와의 갈등이 심해지자 그는 가출했고 결국 아스타포보 기차역에서 싸늘한 시신으로 발견됩니다. 결국 유언대로 비석도 없이 묻혀있는 그의 무덤을 보며 작품의 깊이를 새삼 깨닫습니다. 단지 몸을 누일만한 3평 남짓 땅만 있으면 족하다는 것을 웅변적으로 보여주는 것 아닐까요?
 
그의 팔십 평생 중 50여 년을 살았던 '밝은 숲 속의 초원'이라는 뜻의 지명, 야스나야 폴라냐! 여름이 깊어가면서 백야로 바뀌어지는 러시아의 저녁, 그 '빛나던 들녁'을 1년이 지난 지금도 선명하게 기억하게 되는 것은 그가 말과 삶이 일치했던 작가였기 때문일 것입니다. 말씀과 삶이 일치하는 그리스도인들이 귀해서인지 그가 더욱 소중해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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