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숙인들에게 재활의 꿈 심는 '금정희망의집'

[ 아름다운세상 ] 금정희망의집

표현모 기자 hmpyo@pckworld.com
2012년 06월 29일(금) 14:49

아름다운세상

"그대 남루한 인생에 희망돼 줄게요"
   
노숙인 50~60명이 모여사는 금정희망의집. 여느 노숙인쉼터와는 달리 정결함을 유지하고 있는 것은 다름아닌 이필숙원장의 잔소리가 비결. 사진은 이필숙원장(중앙)과 새로운 인생을 꿈꾸며 재활을 다짐하는 희망의집 사람들.

【부산】 부산광역시 금정구 서동에 위치한 금정희망의집(원장:이필숙). 여기서 생활하는 50~60명의 노숙인들은 타시설 노숙인들과는 좀 구별된 특징이 있다. 너무 깨끗하고 깔끔해서 노숙인 티가 잘 안난다는 것이다. 숙소를 들어가봐도 먼지 하나 없을 정도로 깨끗하다.
 
일반인 남성의 방에 들어가더라도 퀴퀴한 냄새가 나는 경우가 많은데 노숙인들이 6~8명씩이나 생활하는 방에 들어가도 별다른 냄새조차 없다. 방 안 곳곳에 빨래를 마친 옷들이 깨끗하게 걸려있다. 이곳의 노숙인들은 집이 없어 노숙인이라 불릴 뿐이지 적어도 불결한 모습은 없었다. 인터뷰 도중에도 온몸에 땟국물이 흐르던 노숙인 한명이 입소를 위해 찾아왔다. 약 30분 후 이 노숙인은 알아보기가 어려울 정도로 깨끗한 중년이 되어 앉아 신문을 읽고 있었다.
 
그렇다면 왜 유독 금정희망의집의 노숙인들만 이렇게 깨끗한 것일까? 직원들,노숙인들과의 대화에서 어렵지 않게 그 이유를 찾아낼 수 있었다. 바로 이필숙원장 때문이다.
 
금정희망의집 고참 노숙인들은 이필숙원장이 들어왔다는 소리가 들리면 담배를 피워야된다는 이유,물건을 사러간다는 이유 등 갖가지 이유를 대며 슬슬 자리를 피한다. 혹시라도 몸이 더럽거나 냄새가 나면 원장의 천둥 같은 잔소리를 들어야 하기 때문이다. 방 청소 상태가 불량해도 원장의 잔소리를 피해갈 수는 없다.
 
꼬장꼬장한 원장의 잔소리와 밤 10시면 '칼' 같이 셔터가 닫히는 금정희망의집. 그런데도 이곳은 부산의 노숙인들 사이에 가장 가고 싶은 노숙인 시설로 꼽히는 인기만점의 숙소다.
 
비록 원장의 잔소리와 밤 10시 이전에 들어와야 하는 통행금지 규정은 불편한 점이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그 이면에 있는 이필숙원장의 따뜻한 마음과 직원들의 헌신적인 노력을 모두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삶에 있어서 기본적인 것이 흔들리면 모든 일에 의욕이 잘 생기지 않아요. 자기 몸이 지저분한 것을 그대로 두면서 재활의욕을 가진 사람을 못봤습니다. 그래서 머리 감는 것부터 간섭하기 시작해요. 비록 여성이지만 남성 숙소를 불시 점검하곤 합니다. 몇몇 분들은 그게 불만이긴 하지만 그렇지 않으면 금새 냄새나고 더러워지는걸요. 어떤 분들은 원장님 못올라오게 우리 전부다 팬티만 입고 돌아다닐거라고 해요. 그래도 저는 절대 안지죠. 결국 그분들도 두 손 들었어요. 우리가 벌거 벗었다고 원장님 안들어올 분도 아니고, 잘 씻고 청소 잘 할께요,한다니까요. 하하하!"
 
이 원장의 이런 괄괄한 성격은 타고난 것은 아니었다고 한다. 처음 1998년 12월 금정희망의집을 처음 개소할 때만 해도 이 원장은 어린이집을 운영하면서 아기자기한 것과 예쁜 것을 좋아하는 여성이었다. 어린 아이들과 함께 행복한 나날을 보내던 이 원장은 IMF 외환위기 당시 노숙인들이 늘어나고 정부가 본교단 사회봉사부 빈민사역자들에게 노숙인 사역을 해줄 것을 의뢰하면서 어쩔 수 없이 떠맡게 된 일이라고 고백한다.
 
"정말 하고 싶지 않았어요. 처음 노숙인들을 대하는데 너무 무섭더라구요. 그분들이 또 거칠잖아요. 초창기에는 너무 힘들어서 일주일동안 교회에 틀어박혀 울기만 했어요. 노숙인 사역 안 하고 싶다고. 하도 울어서 나흘째 되는 날은 눈물도 잘 안나오더라구요. 그래도 억지로 억지로 울면서 떼를 썼지요."
 
이 원장의 눈물의 기도는 즉시 응답이 왔다. 며칠 후 당시 인근에서 치과병원 원장을 하던 장로가 기도 중에 금정희망의집을 도우라는 음성을 듣고 도울 일이 없는지 찾아온 것. 그 사람이 바로 현재 몽골선교사로 나가 있는 허석구목사다.
 
그는 이후 노숙인들을 위해 새벽기도와 집회 등을 인도하며 열정적으로 금정희망의집 사역을 도왔다. 이런 도움을 힘입어 이 원장은 다시 사역을 전개할 힘을 얻었고,이후 15년 여가 흐르면서 자연스럽게 '호랑이 원장'이 되어 있었다.
 
이곳에서 생활하면서 재기에 성공하는 이들을 보면 이 원장은 지난 15년간의 말 못할 고생이 한 순간에 보상 받는 것 같은 느낌이라고 말한다. 지난 15년간 이 원장은 월급 한푼 받지 않으면서 자신의 사비에 빚까지 끌어다 쓰면서 노숙인들을 돌봐왔다. 이 원장은 어린이집 원장을 맡고 있어 금정희망의집에서는 월급을 받지 않고 있다.
 
현재 금정희망의집은 노숙인 쉼터 이외에도 다양한 사업으로 노숙인 재활을 위해 물심양면의 지원을 하고 있다. 무료이용서비스,의료지원(관내 보건소,시립병원,병원 입원치료 연계),취업지원,텃밭가꾸기 사업,매입임대주택사업,여가활동 및 교육,설ㆍ추석 무료급식,희망교회 운영 등이 그것.
   
 
여기에 최근에는 노숙인 자활사업으로 희망담은 전동휠체어 고치미 센터 운영을 지난달부터 시작했다. 병원과 복지관마다 수리를 받지 못한 고장난 휠체어들이 이곳을 거치면서 새 휠체어처럼 바뀌어 나가고 있어 인기를 끌고 있다. 이 원장은 이 수리센터를 통해 노숙인들이 새롭게 일어서는 새 희망의 장소가 되기를 바라고 있다.
 
"전동휠체어 고치미 센터가 비록 시작은 미약하지만 분명히 창대한 결과를 가져다 줄 것으로 믿어요. 운영이 성공적으로 잘 돼서 많은 노숙인들이 새 삶을 얻게 됐으면 좋겠습니다. 그래야 그분들도 제 잔소리를 안 듣게 되고 좋잖아요. 하하하!"
 
노숙인들이 자활을 해서 쉼터를 떠나더라도 이 원장의 털털한 웃음소리는 쉽게 잊을 수 없는 고마운 기억으로 남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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