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교지의 복병, 외로움

[ 선교 ] 선교사 멤버 케어

장창일 기자 jangci@pckworld.com
2012년 06월 27일(수) 14:29
사연1>동남아시아 모국에서 몇 해 전 난데없이 선교사가 관련된 성추문 소식이 전해졌다. 내용인즉은 선교사가 세운 학교에서 고용한 한 여성을 선교사가 추행했다는 것이었고, 이로인해 현지 경찰이 출동을 했으며 선교사가 조서를 쓰고 자백을 했다는 등 흉흉한 소문이 확산되기 시작했다. 하지만 선교부와 후원교회 등에서 실사단을 급파해 현지조사를 한 결과 알려진 내용과 실제 사실이 엄청나게 다르다는 걸 확인했고 결국은 해프닝으로 마무리 됐다. 성추행을 당했다고 주장한 현지인 여성이 다른 남성과 공모해 선교사를 함정에 빠트린 것이 사건의 전모였다. 하지만 모든 일이 겉으로는 수습된 뒤부터 선교사 부부는 마음고생을 시작했다. 일상 속에서 억울함을 하소연할 곳도 없고, 그렇다고 매번 한국에 있는 가족과 동료들에게 위로를 받을 수도 없는 일이었다. 선교지를 돌보며 사역에 매진하려고 해도 안 좋은 기억으로 인한 트라우마가 번번이 발목을 잡았다.
 
 
사연2>낯선 문화와 아무리 노력해도 현지인처럼 익숙해 지지 않는 언어. 현지인 동역자의 배신과 사기. 고장난 수도를 금방 고쳐 주겠다고 돈까지 받아간 사람은 일주일이 지나도 오지 않아 씻지도 못하고 지내는 하루하루. 강화된 비자법으로 공안으로부터 늘상 당하는 감시. 선교후원이 끊어질까봐 전전긍긍하는 하루살이 인생. 중국 내륙의 한 도시에서 만난 한국인 선교사들은 사역 경력이 이미 10년이 넘은 베테랑들이었지만 자신들을 '영원한 비정규직'이라고 소개했다. 이들이 말한 비정규직의 의미는 소신있는 사역을 결정할 어떤 권한도 없다는 것으로 연차가 오래될수록 후원교회가 시키는 일만 하는 '마리오네트'가 되는 것 같아 괴롭다고 고충을 털어 놓았다. 하지만 이들도 이런 고통을 딱히 털어 놓을 데가 마땅치 않다. 사정이 이렇다보니 극심한 외로움이 밀려오는 것을 막을 길이 없다.
 
 
앞선 두 사연들은 사실 선교사들에게는 그리 낯선 이야기들이 아니다. 그만큼 선교지는 척박하고 낯설고, 고통과 핍박이 상존하는 '땅끝'이다. 물론 선교사들이 '아골 골짜기, 빈들'인 줄 모르고 선교사로 헌신한 것은 아닐 것이다. 하지만 사역의 열매를 보다 많이 맺기 위해서는 '선교의 효율성'이 반드시 필요하다. 다시말해 선교사들이 현장에서 받는 스트레스를 적절히 풀수 있는 방법이 반드시 마련되어야 한다는 점이다. 최근 기자와 만난 몽골 허석구선교사는 "선교사가 되기 전 개업을 했던 의사였지만 선교지에서 접하는 많은 문제들, 그로 인한 극심한 외로움들을 스스로 해결하는 것은 쉽지 않았다"면서, "기본적으로 선교지에 산다는 것 자체가 극심한 스트레스 속에 놓이는 것을 의미하는데 늘상 생각하지도 못한 문제들이 연이어 벌어지고 문화가 낯선 선교사가 빠르게 대처하는 것이 힘들기 때문에 더욱 마음의 병이 생긴다"고 말했다. 허 선교사는 "반복되는 스트레스를 절적히 해소하지 못한다면 결국 선교사도 사람이라 선교할 힘을 소진하고 만다"면서, "아무리 스트레스가 없는 곳은 선교지가 아니라고 선교사들도 이야기를 한다해도 외로움에서 시작된 선교사들의 마음의 병을 치료할 수 있는 시스템은 마련되어져야 한다"고 덧붙였다.
 
결국 삶 속에서 지속적으로 발생하는 여러가지 문제들로 인한 스트레스, 이를 해소하지 못해 결국 극심한 외로움에 빠지는 선교사들의 수를 줄이고 이들의 마음의 짐을 덜기 위해서는 그들의 외로움 또한 선교의 한 부분임을 인정해야 하는 인식의 전환이 필요하다. 선교 부흥 2세기의 청사진을 그리고 있는 한국교회가 더이상 선교사들에게 '희생'과 '헌신'만을 강요해서는 '선교의 풍년'을 기대하기란 쉬운 일이 아닐 것이다.
 
체계적인 선교사 멤버케어를 통해 선교사들이 가지고 있는 마음의 상처를 치료해야 하는 당위성이 바로 여기에 있다. 태국에서 사역하는 전미화선교사는 "선교현장에 나가는 선교사들이 아무리 많은 훈련을 받고 헌신되었다고 해도 현장에 막상 나가면 수 많은 일들로 어려움을 겪게 되는데 문제는 이것이 마음의 병을 키우는 주범이라는 사실을 전혀 깨닫지 못한다는 데 있다"면서, "선교사 멤버케어를 위한 체계적인 시스템이 갖춰진다면 선교사들과 그 가정의 아픔을 잘 살피고 그들이 갖고 있는 마음의 병을 치료한다면 결과적으로 선교의 결실도 더욱 많이 거둘 수 있다"고 지적했다.
 
국내 선교계도 선교사들의 마음의 병을 치료하기 위한 장치들을 마련해 나가고 있다. 수 년 전부터 선교단체들을 중심으로 시작된 '디브리핑 세미나'가 그것. 본교단 세계선교부도 최근 안식년 선교사들을 대상으로 첫번째 디브리핑 세미나를 개최해 좋은 평가를 받기도 했다. 선교계는 디브리핑(debriefing)을 '회복'이라는 의미로 사용하고 있다. 한국/아시아 교회 선교전략(IMB) 책임자인 신기황목사는 한국위기관리재단 주최로 열린 위기 디브리핑 세미나에서 "위기 상황에서 멤버 케어가 필요한 이유는 여러가지 사건과 문제들로 인해 상처를 입은 선교사를 위해 그리스도의 지체가 돼 주는 것을 의미한다"면서, "디브리핑 등 멤버 케어가 부재한 경우 외로움 속에 빠져 있는 선교사는 오랜 기간 동안 신체적, 정서적, 영적, 고통을 받을 수밖에 없고 결국 사역에 영향을 줄 수밖에 없다"고 설명하며, '회복'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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