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를 떠도는 4백만 팔레스타인 난민, 이ㆍ팔분쟁의 가장 큰 걸림돌

[ 이강근의 중동이야기 ] 이강근 중동이야기

이강근목사 webmaster@pckworld.com
2012년 06월 27일(수) 09:51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간에 평화모색을 가로막는 최대 이슈 중 하나가 팔레스타인 난민이다. 팔레스타인 난민이란 1946년 6월부터 1948년 5월 사이 이스라엘-아랍 간의 전쟁 중 발생한 난민이다. 팔레스타인 난민은 중동 전역에 걸쳐 분포해 있다. 당시 전쟁을 피해 인근 아랍국가로 떠났거나, 아랍국가들에 체류하던 중 전쟁으로 고향에 돌아가지 못하고 있거나, 이스라엘이 점령한 지역민들이 팔레스타인 지역이나 해외로 추방되어 난민이 발생했다. 전쟁은 끝난지가 수십년이 지났지만 이스라엘은 국경문을 닫고 이들의 귀환을 허락하지 않고 있다.
 
팔레스타인 난민들은 세계인권선언의 13조, "모든 사람은 자국을 포함하여 어떠한 나라를 떠날 권리와 또한 자국으로 돌아올 권리를 가진다"라는 조항에 근거해 자신들의 귀환권리를 주장한다. 그러나 난민문제를 해결하는데 있어 논쟁의 핵심은 난민 수다. 1950년에 팔레스타인 난민은 71만 1천명이었으나 계속된 자연출생과 이후 난민 발생으로 2002년에 UN에 기재된 수가 4백만 명을 넘어섰다. 이스라엘은 1950년 당시 40만 정도라고 주장하나, 아랍국은 95만명, 유엔은 71만명이라고 말한다. 이렇게 숫자상의 불일치에 대해 난민등록이 중복되었거나, 이스라엘이 점령한 영토가 아닌 지역에서 추방당한 수도 포함했거나, 난민이 아닌 가난한 사람들까지도 포함되었거나, 난민의 출생 수는 포함되었지만 사망자 수가 적용되지 않았다는 이유를 들고 있다.
 
게다가 다른 아랍 국가의 시민이 된 사람들, 특히 요르단에 귀화한 사람들의 난민 지위도 인정한다. 또한 난민 지위를 남자 난민의 후손들에게까지 적용함으로써 팔레스타인 난민은 난민 지위를 다음 세대에게 물려주는 것이 허용됐다. 그리고 1967년 6일 전쟁의 결과로 발생한 난민까지 팔레스타인 난민으로 분류되었다. 통상적으로 난민은 시간이 지나면 줄어들게 마련이지만 팔레스타인 난민 수는 지난 60년 동안 7배로 불어난 것이다. 이는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분쟁해결의 선결조건 중 하나인 난민문제를 더욱 복잡하게 만들고 있다.
 
이스라엘이 난민귀환을 허락하지 않는 가장 큰 이유는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간의 인구대비 안보문제이다. 팔레스타인 내 급격한 인구증가는 이스라엘에 군사적으로도 큰 위협이 되기 때문이다. 팔레스타인 난민 귀환수를 최소한으로 줄이고, 서방세계의 주요국가들이 수만에서 수십만씩 흡수해 준다 하더라도 해외에서 적의감에 불타는 세력의 유입은 이스라엘의 안보에 치명적이다.
 
난민문제와 직결되는 또 하나의 문제는 난민들이 남기고 간 재산이다. 이스라엘 정부는 부재자재산법안을 통과시켜 팔레스타인 난민들의 재산을 압류하기 위한 길을 열었다. 이스라엘은 난민들이 거주했던 많은 마을들을 이스라엘 마을로 재정비했고, 많은 주택들을 유대인 이민자들로 채웠다. 이스라엘은 이에 대한 명분으로 아랍국가에서 쫓겨난 유대인들을 든다. 이스라엘 역시 이들을 반유대주의에 의한 유대인 난민이라 부른다. 건국 이후 아랍과 이슬람권에서 나온 유대인들의 숫자가 60만명에 이른다. 이스라엘은 인구교환이라는 용어를 사용한다. 유대와 팔레스타인 땅에서 나간 팔레스타인들과 중동의 아랍과 이슬람권에서 나온 유대인 간의 인구와 재산을 맞바꾸었다는 주장이다.
 
난민문제가 합리적인 해결점을 찾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해결 가능한 실제난민으로 압축되어야 한다. 그리고 나서 이스라엘은 유대인들이 옛 고토로 돌아오기 바라는 만큼, 팔레스타인들에게도 옛 고향으로 돌아올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있어야 할 땅에 들어가지 않고서는 안정은 없다. 매년 땅을 잃은 날을 기념하는 팔레스타인들의 'Nakda Day'가 있다. 이들은 아직도 자신들이 쫓겨나온 땅의 집 열쇠를 흔들어 보인다.    
 
이강근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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