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제가 다시 행복해 질 수 있을까요?

[ 상담Q&A ] 성폭력 피해 여성

안명숙교수
2012년 06월 26일(화) 13:33

   
Q. 저는 몇 년전에 아는 사람으로부터 성폭행을 당했습니다. 부모님조차도 모르는 사실입니다. 교회 청년부에 나가고 있지만 저는 위선자입니다. 이제 교회를 나가는 것도 어렵게 느껴집니다. 겉으로는 웃지만 속으로는 눈물을 흘립니다. 제가 다시 행복해질 수 있을 것 같지 않습니다. 모든 것이 달라졌고 제 인생은 망가졌습니다. 하나님이 계시다면 저를 왜 도와주지 않으셨을까요?

A. 성폭행의 경험은 일반적으로 두 가지 주요한 감정을 야기합니다. 죄책감과 수치심입니다.
 
죄책감은 고통의 원인이 자신에게 있다고 보는 것입니다. 내가 뭔가 잘못해서 이런 일이 일어났다는 감정입니다. 수치심은 자신을 부정적이고 비판적으로 평가하는 감정입니다. 스스로 받아들일 수 없고 무가치하고 나쁘다고 느끼는 것입니다. 죄책감과 수치심으로 결국 외톨이가 됩니다. 가해자에 의해 고통을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수치심과 죄책감은 자신에게 더 큰 징벌을 내리며 심리적 감옥에 가둡니다. 그리고 신앙마저 잃어버리게 됩니다.
 
인생의 예기치 않은 고통이 찾아올 때 우리는 어찌하여 하나님이 나를 도와주지 않으셨을까라는 의문을 갖게 됩니다. 고통은 좋은 것이 아니지만 일단 고통이 온 이상 의미없는 것도 아닙니다. 그것은 누구도 피해갈 수 없는 인간의 현실입니다. 십자가에 못박히는 것 같은 고통이 모든 사람에게 찾아옵니다. 그러나 십자가의 예수님은 가장 큰 고통과 상실의 자리에 하나님이 현존하고 계시다는 것, 그리고 믿는 자들에게 십자가는 마지막 말이 아니라는 것을 부활을 통해 보여주십니다. 예수님의 십자가와 부활은 고통과 상실과 죽음이 우리의 마지막 말이 아니며 생명과 행복은 언제나 가능하다는 희망의 이야기입니다.
 
생명과 행복으로 나아가기 위해서, 첫째 '고통을 기억하기'가 필요합니다. 상처가 있는데 괜찮다고 하는 것은 거짓평화(렘 6:14)입니다. 삶이 원치않는 외상으로 조각날 때 그 고통을 둘러가거나 묵살하고 갈 수 없으며 통과해야만 합니다. 상처 받았음을 시인하면서 외상의 기억을 직면하는 것이 거짓된 삶을 거부하는 첫발걸음입니다.
 
둘째, '내 잘못이 아니야'라고 말할 수 있어야 합니다. 가해자를 분명하게 하지 않으면 죄책감과 수치심으로 우울해지거나 엉뚱한 사람에게 화풀이하게 됩니다.
 
셋째, '자신을 용서'해야 합니다. 가해자를 용서한다는 것이 아닙니다. 가해자를 용서해야 한다는 용서의 환상으로 인해 용서하지 못하는 자신에 대한 죄책감이 가중됩니다. 가해자에 대한 용서의 결단에 앞서 아픔의 치유가 필요합니다. 자신을 용서하기란 더 이상 가해자로 인해서 나의 삶이 망가지도록 허락하지 않겠다라는 결단입니다.
 
넷째, 다시 행복해 질 수 있다는 사실을 믿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못자국의 흔적을 안고 부활하셨듯이 상처받은 자도 고통의 흔적을 가지고도 다시 안정감을 회복하고 일상의 행복으로 서서히 돌아갈 수 있습니다. 때때로 아픔이 되살아 날 수 있겠지만, "그러나 외상은 더 이상 인생의 중심이 되지 못할 것입니다."(주디스 허만, 2007)

안명숙교수 / 서울장신 겸임ㆍ고양상담코칭센터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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