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동지역 초기 기독교 부흥의 선구자를 찾아

[ 교계 ] 제1회 안동지역 기독교인물 세미나, 김영옥ㆍ이대영목사의 삶 조명

신동하 기자 sdh@pckworld.com
2012년 06월 19일(화) 15:28
【안동=신동하차장】 경북 안동지역의 초기 기독교 부흥에 헌신한 선구자들의 업적을 조명해보는 작업이 이뤄지고 있다.
 
   
경안노회 안동교회(김승학목사 시무)는 14일 부설 백주년기념관 영곡아트홀에서 '제1회 안동지역 기독교 인물 세미나'를 개최했다. 1백여 년 전 유교문화의 중심이었던 안동에서 복음의 씨앗을 뿌린 신앙선조들의 흔적을 찾아보고 숭고한 선교정신을 기리고자 세미나가 마련됐다.
 
이번 제1회 세미나에서는 안동교회 초대 및 6대 담임 김영옥목사와 2대 담임 이대영목사에 대한 삶을 펼쳤다. 김영옥목사는 한국교회 최초의 조사(助事)로 거론되고 있으며, 이대영목사는 예장 통합과 합동 분열 전 총회장을 지낸 인물이다.
 
김영옥목사의 신앙사는 친손자인 김형태목사(증경총회장ㆍ연동교회 원로)가 조사와 발제를 맡았다. 발제에 따르면, 김영옥목사는 1871년 황해도 배천군 해월면 부소미리에서 태어나 14세에 언더우드선교사에 의해 세례를 받고 모삼열선교사의 매서로 활동한 신앙경험을 갖고 있다.
 
이후 평양신학교를 졸업하고 1911년 9월 안동교회 초대 담임목사로 부임해 1921년까지 시무하다 사임한 후 1939~1942년 다시 안동교회에서 목회활동을 했다. 초대목사 시무 당시에는 안동의 삼일 만세운동을 주도하는 등 독립운동에도 기여했다.
 
김형태목사는 조부 김영옥목사에 대해, "성실한 지도력을 나타내신 분이다. 가정적으로나 교회적으로, 사생활이나 공생애에 있어 성실하게 사셨다"며 "자신의 유익을 위해 남을 이용하지 않으시고 스스로를 희생해 봉사하셨다. 근면하고 공정한 지도력과 삶은 가족과 동역자들과 교인들, 그리고 사회에 긍정적인 믿음과 희망을 심어주셨다"고 설명했다.
 
또한 김형태목사는 조부의 '청렴결백'을 강조했다. "세속적 물욕이 없으셨어요. 매번 선교사가 사준 사택이나 유일한 교통수단인 당나귀마저 교회당 건축을 위해 모두 헌납하셨죠. 그래서 지도력이 권위가 있고 신뢰와 존경을 받았습니다."
 
이대영목사는 한국기독교교회역사 주영연구소 대표 이교남목사가 연구 조사했다. 이대영목사는 1887년 경북 예천군 용문면 상금곡리에서 태어나 1907년 회심 후 전도인으로 활동하다 평양신학교를 졸업하고 1921년 2월 안동교회 2대 담임에 부임한 것으로 전해졌다.
 
발제자는 이대영목사에 대해, "안동교회에 있을 때 조선 최초의 '기독청년면려회'의 조직을 안대선선교사의 주선으로 시작했다"고 전했다. 또 당회록을 근거로 해 "야학과 계명사숙 개설을 하는 등 다양한 교육을 펼쳤다. 가르치고 전도하고 성례, 학습(세례)을 거행하고 주일학교와 유년회 전도회를 조직했다"고 밝히며, 그 결과 그의 지도를 받은 후예들이 한국교회 발전에 크게 기여했다고 설명했다.
 
또한 이대영목사는 안동교회 사임 후 1922년~1948년 중국 산동에서 선교를 하다 귀국해 승동교회 목회를 했으며, 1956년 제41회 총회장에 피선된 것으로 전해졌다.
 
안동교회 담임 김승학목사는 이번 세미나에 대해 "믿음의 선배들의 미담이 뇌리 속에서 사라져가고 있다. 그래서 그들이 남긴 거룩한 유산과 발자취를 찾아가는 작업을 시작하려고 한다"며 "앞으로 지역을 경북북부로 확대하고 목회자는 물론 평신도들의 선교업적도 발굴해 한국교회에 알릴 계획"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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