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18~23일

[ 가정예배 ] 가정예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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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06월 15일(금) 18:31

월-요나의 니느웨 선교
본문: 요나 3:1~17
찬송가: 520장
 
요나는 하나님을 등지고 도망가다가 물고기 뱃속에 들어갔고, 회개를 통해 다시 사명을 받고 니느웨로 간다. 니느웨의 선교는 요나의 노력과 마음의 자세가 부족한데도 불구하고 놀라운 변화를 이끌어 낸다. 하나님은 당신의 백성들에게 은혜를 베풀어 주셔서 부족한 사람에게도 사명을 감당하게 은혜를 주신다.
 
두번째로 임한 여호와의 말씀
 
하나님 안에서 '다시'라는 기회의 복이 있다. 명령을 어기고 도망을 가던 요나는 물고기 뱃속에서 회개를 했고 물고기는 요나를 육지에 토해 놓았다. 그리고 여호와께서 두 번째로 요나에게 사명을 주셨다. 예수님을 모른다고 부인했던 베드로에게 다시 사명을 주셨듯이 오늘 우리에게도 '다시'라는 기회를 주신다.
 
요나의 선교
 
메시지의 결실은 받아들이는 쪽에서 반응이 나타나야 한다. 요나의 설교 "사십 일이 지나면 니느웨가 무너지리라(3:4)"는 불과 다섯 단어의 설교를 들은 니느웨의 반응은 금식, 굵은 베옷, 부르짖음으로 인해 재앙이 사라졌다. 베드로의 설교를 들은 자들은 "어찌할꼬"했으나, 스데반의 설교를 들은 자들은 "이를 갈거늘" 결국 돌로 쳤다.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자는 '나를 깨우치는 말씀'으로 들어야지 '나를 치는 말씀'으로 들어서는 안 된다.

동물까지 회개에 동참
 
니느웨 사람들에게서 시작된 운동이 높고 낮은 자를 막론했고 니느웨 왕도 왕복을 벗고 굵은 베를 입고 재 위에 앉았다. 하나님 앞에서 계급은 없었으며 누구나 같은 회개에 동참했다. 심지어 동물도 금식에 동참했다. 바울은 "피조물이 다 이제까지 함께 탄식하며 함께 고통을 겪고(롬 8:22)"라는 말씀처럼 인간이 잘못하면 피조물도 함께 탄식하며 고통을 겪는다.

뜻을 돌이키신 하나님
 
니느웨 사람들이 회개 운동을 통하여 기대하는 것은 "하나님이 뜻을 돌이키시고 그 진노를 그치사 우리가 멸망하지 않게 하시리라"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니느웨 사람들이 악한 길에서 떠난 것을 보시고 "하나님께서 뜻을 돌이키사 그들에게 내리리라고 말씀하신 재앙을 내리지 아니하시니라"는 위대한 결과를 얻었다. 하나님은 언제나 인간의 구원에 초점을 맞추신다. 심지어 하나님께서 정하셨던 뜻을 돌이키면서까지 구원을 이루신다.
 
세 가지의 방향전환
 
요나에는 세 가지 방향전환이 나온다. 첫째는 하나님의 명령을 어기고 도망가던 요나가 니느웨로 방향전환(사명)을 한다. 둘째는 악독한 니느웨 사람들이 하나님께로 방향전환(회개)을 한다. 셋째는 하나님께서 니느웨를 멸망시키려던 뜻을 돌이키시는 방향전환(구원)을 하신다. 우리도 좋은 쪽으로 방향전환을 하면 하나님이 기뻐하실 뿐아니라 내 인생이 정말로 좋아진다. 내가 방향전환할 것이 무엇인가 돌아보자.
 
<오늘의 기도>
니느웨의 모든 사람들과 짐승까지 금식에 동참한 것처럼 삶을 위한 경성함이 온 국민에게 임하게 하옵소서. 그래서 절망에서 희망으로 방향이 전환되며 하나님의 자비하심을 얻게 하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신현주목사 / 남양주영락교회


화-모든 것에 넘치기를 사모하라
본문: 엡3:14-21
찬송가:95장
 
"우리 가운데서 역사하시는 능력대로 우리가 구하거나 생각하는 모든 것에 더 넘치도록 능히 하실 이에게…"(20절)
 
바울사도는 하나님을 자녀된 우리에게 모든 것을 넘치게 능히 주시는 분으로 소개했다. 이렇게 소개하는 이유가 무엇일까?
 
첫째, 말씀으로 약속 하셨기 때문이다.
 
"네 재물과 네 소산물의 처음 익은 열매로 여호와를 공경하라 그리하면 네 창고가 가득히 차고 네 포도즙 틀에 새 포도즙이 넘치리라(잠3:9-10)"고 했고 "주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줄 것이니 곧 후히 되어 누르고 흔들어 넘치도록 하여 너희에게 안겨 주리라(눅 6:38)"고 했습니다.
 
둘째, 말씀대로 넘치도록 받은 사람들이 있기 때문이다. 아브람에게 가축과 은과 금이 풍부했으며, 욥과 다윗 히스기야에게도 부와 영광이 지극했다.
 
우리도 넘치기를 사모해야 한다. 무엇보다 믿음 넘치기를 사모해야 한다. 기독교는 믿음으로 구원받는 종교요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뻐시게 할 수 없고 믿음이 넘치면 능치 못함이 없기 때문이다. 오늘 성도들의 문제는 돈, 능력, 환경이 아니다. 믿음이 없는 것이 문제다.
 
또한, 말씀이 넘치기를 사모해야 한다. 모든 것이 주의 말씀대로 되기 때문이다(눅1:38). 그리고 성령 넘치기를 즉 성령 충만을 사모해야 한다. 성령께서 넘치는 곳에는 불가능한 일들도 가능케 된다. 개인의 변화, 가정의 변화, 교회 부흥 등 안될 일이 없다.
 
사랑 넘치기를 사모해야 한다. 데살로니까 교회는 서로 사랑함이 넘쳤다. 하나님 아버지가 사랑이시므로 자녀된 우리가 아버지를 닮아야 하기 때문이요, 우리를 구원해 주신 예수님의 계명이 서로 사랑하라는 것이기 때문이며, 그리고 우리 인간은 소유로 행복한 것이 아니라 사랑함으로 행복하기 때문이다.

감사가 넘치기를 사모해야 한다. 감사가 넘치는 곳이 곧 천국이요, 감사가 넘치는 곳에 기적이 있기 때문이다.
 
쓸 것이 넘치기를 사모해야 한다. 우리 성도들에겐 다른 성도나 가난하고 불쌍한 이웃을 돕거나 쓸 것을 공급할 의무가 있기 때문이다. "성도들의 쓸 것을 공급하며 손 대접하기를 힘쓰라(롬12:13)." 사랑 실천이 없는 자는 진짜 믿음이 아니라고 했다. 빌립보 교회는 쓸 것을 보내는 교회였다. 그 빌립보 교회에 주님은 쓸 것을 넘치도록 주셨다.
 
"나의 하나님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영광 가운데 그 풍성한 대로 너희 모든 쓸 것을 채우시리라(빌 4:19)."

넘치도록 받는 방법은 무엇일까?
 
우리 가운데서 역사하시는 능력대로 우리가 구하거나 생각하는 모든 것에 더 넘치도록 능히 하실 이에게 기도하는 것이요, 넘치기를 늘 상상(생각)하는 것이다.
 
<오늘의 기도>하나님 아버지, 범사에 모든 좋은 것에 넘치고 풍성하여, 넘치는 사랑을 실천하기를 쉬지말게 하옵소서. 기도하며 아름다운 상상이 계속 되게 하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박태부목사 / 밀양교회


수- 한 사람
본문: 사도행전 16:11-15
찬송가: 500장
 
오늘 본문에 보면 축복의 통로가 되었던 한 사람의 이야기가 나온다. 유럽 복음화에 선구자 역할을 한 한 사람, 유럽의 많은 사람들을 옳은 데로 돌아오게 한 별과 같이 빛나는 사람에 대한 이야기이다. 그 한 사람은 빌립보에 살던 자주 장사 루디아다.
 
그렇다면 루디아가 어떻게 유럽 복음화의 선구자가 될 수가 있었는가? 물론 성령께서 역사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한 사람 루디아의 역할을 무시할 수 없다.
 
첫째로 루디아는 기도로 영혼을 열었던 한 사람이었다. 루디아는 소아시아 두아디라에서 온 이방인 여자였다. 그녀는 사업에 성공했고 어느 정도 부를 누리고 있었다. 그렇지만 루디아는 영혼의 만족과 기쁨이 없었다. 그래서 유대인들이 모이는 기도처소인 빌립보 강변 나무 그늘 아래에 모여서 하나님께 기도를 드리곤 했다. 그런데 어느 안식일 그곳에서 사도바울 일행을 만났고, 기도로 영혼이 열린 두 사람이 결국 빌립보 지역을 복음화시켰던 것이다. 루디아가 기도로 영혼을 열었듯이 우리도 늘 기도로 영혼을 열어가야 하고, 루디아가 기도를 통하여 바울을 만났듯이 우리도 기도를 통하여 만남의 축복을 누려야 할 것이다.
 
둘째로 루디아는 마음을 열어 순종했던 한 사람이었다. 루디아는 바울이 말하는 것을 듣고 마음을 열었다. 그리고 말씀을 듣고 순종했다. 그래서 회개하고, 믿고, 온 가족이 함께 세례를 받았다. 결국 루디아와 루디아의 가정은 복 있는 가정이 되었다. 말씀에 마음이 열리고, 진리에 마음이 열리고, 예수님에게 마음이 열린 사람은 복 있는 사람인 것이다. 그런 사람을 하나님은 사랑하시고 사용하신다.
 
셋째로 루디아는 손을 열어 헌신했던 한 사람이었다. 마음을 연 사람은 손을 열게 되어 있다. 손을 연다는 것은 도움의 손을 편다는 말이다.
 
"그와 그 집이 다 세례를 받고 우리에게 청하여 이르되 만일 나를 주 믿는 자로 알거든 내 집에 들어와 유하라 하고 강권하여 머물게 하니라."
 
루디아는 사도 바울의 일행을 자기 집에 들어와 유하게 했다. 루디아의 손이 열리되 인색하게 조금 열린 것이 아니었다. 루디아의 열린 손과 열린 집이 유럽 복음화의 시발점이 되었다.
 
오늘 이 시간 하나님께서는 루디아와 같은 '한 사람'을 찾으신다. 바다는 3.5퍼센트의 염분으로 바다를 신선하게 지켜준다. 육지에서 온갖 쓰레기를 바다로 흘러보내도 바다는 3.5퍼센트의 염분 때문에 깨끗한 것이다. 마찬가지로 3.5퍼센트에 속하는 루디아 같은 사람이 있어야 한국교회와 이 민족도 살 수 있다.
 
일제 시대의 민족의 암흑기에 도산 안창호 선생님은 이렇게 말했다. "지도자가 없는가? 지도자를 찾지 마라. 너희들 스스로가 지도자가 되어라. 네가 하면 되지 않겠느냐?"
 
<오늘의 기도>하나님! 오늘 내가 하나님께서 찾으시는 그 한 사람이 되기를 원합니다. 루디아처럼 마음을 열고, 손을 열어 가정과 직장과 교회와 나라와 민족을 살리는 그 한 사람이 되시기를 소망합니다.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민철홍 목사 / 수색교회


목-예수님을 끝까지 잘 믿읍시다.
본문 : 유다서 1:1-25
찬송가 : 340장
 
유다서는 예수님을 믿고 구원받은 하나님의 자녀들이 주님 다시 올 때까지 믿음에 굳게 서서 승리하도록 권면하는 말씀이다. 세상에는 믿음을 방해하고 반대하는 세력들이 있다. 이런 세력이 택한 자까지도 집어 삼키려고 달려든다. 예수님을 끝까지 잘 믿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오늘 본문의 말씀을 통해 하나님께서는 3가지로 말씀하신다.
 
첫째로 구원의 확신을 가지라고 말씀하신다.
 
구원은 예수님을 믿음으로만 가능하다. 하나님 아버지께서는 죄에 빠진 우리를 구원하기 위해 예수님을 이 땅에 보내셨다. 예수님은 인간의 몸으로 태어나 공생애를 사시고 십자가에 죽으심과 부활을 통해 구원의 문을 활짝 열어 놓으셨다. 구원을 확신하는 자는 다음의 질문들에 분명히 '예'라고 답할 수 있다. 나를 구원할 분 오직 예수님 밖에 없음을 믿는가? 나를 죄에서 건지기 위해 십자가에 피흘리신 예수님의 은혜가 감사한가? 그 예수님의 피로 모든 죄가 없어졌음을 믿는가? 지금 죽어도 천국 갈 수 있다고 믿는가? 전에는 마귀의 자식으로 죄에 매여 죄의 종노릇하며 살았는데 이제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어 죄에 대해서는 죽고 의의 종노릇하며 사는 것이 소원인가? 구원을 확신하는 믿음을 굳세게 가질 때 예수님을 잘 믿는 자 된다.
 
둘째로 믿음을 방해하고 적대하는 어둠의 세력을 분별하라 말씀하신다.
 
어둠의 세력은 몰래 숨어 들어온다. 원망, 불만, 불평의 말과 경건치 않은 행동을 한다. 가인의 길, 발람의 길, 고라의 패역을 좇아감으로 멸망당할 자들이다. 타락한 천사같이 권위를 업신여기며 영광을 훼방하고 유황 불의 심판을 받은 소돔과 고모라 사람들처럼 육체를 더럽힌다. 예수님을 믿은 후에 다시 이런 세력에 붙잡혀 믿지 않는 자가 되면 멸망당하게 된다. 하나님께서는 애굽에서 구원하여 내신 후에 믿지 아니하는 자들을 멸하셨다. 형제를 미워하고 자기 중심적인 태도로만 생각하고 자기의 욕망만 채울 생각으로 하나님을 아랑곳하지 않고 심지어 하나님을 거역하는 세력을 분별해야 한다. 우리는 이렇게 선포하며 나가야 한다. '나는 예배자다! 나는 기도의 사람이다! 나는 전도자다! 예배를 빼먹고 기도를 가로막는 어둠의 세력은 떠나갈지어다!'
 
셋째로 이런 믿음의 적들과 힘써 싸워야 한다고 말씀하신다. 
 
어떻게 싸워야 하는가? 예수님을 믿음으로 구원을 확신하고 말씀과 기도의 생활 가운데 하나님의 사랑에 거하면서 영생에 이르도록 예수 그리스도의 긍휼을 기다려야 한다. 또한 의심하는 자들을 긍휼히 여겨야 한다. 죄에 빠져 타락한 자라할지라도 거기서 끌어내어 구원해야 한다. 하나님께서는 한없는 사랑으로 우리를 긍휼히 여기사 예수님을 보내시고 우리의 죄값을 담당케 하심으로 믿는 자마다 구원하는 놀라운 은혜를 베푸셨다.

<오늘의 기도>
하나님 아버지, 구원의 확신을 가지고 믿음에 굳게 서서 어둠의 세력을 분별하여 몰아내고 죄에 빠진 자들을 구원해 내는 믿음의 삶을 살게 하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허운목사 / 대산교회


금-믿음의 이웃사촌
본문 : 누가복음 10:30-37
찬송가 : 497장
 
삶의 언어 중 참 따뜻한 말이 있었으니 그것은 '이웃사촌'이라는 말이다. 그러나 요즘은 그런 이웃도 찾아보기가 쉽지 않다. 담장을 뛰어넘어 깨알같이 쏟아지는 이웃의 해맑은 웃음소리를 들을 수가 없고, 그 주인공들이 누구인지 알아볼 수가 없다. 마음의 벽은 왜 이리 높은지, 사방이 콘크리트 벽으로 둘러싸여 이웃 신청이 외면당하고 있다. 이런 세상을 사는 우리에게 예수님은 아름다운 이야기를 해 주셨다.
 
예루살렘에 사는 한 사람이 여리고라는 동네로 내려가다가 강도를 만났다. 옷을 벗기고 가진 것 모두를 빼앗아 간 차에, 남겨진 거라고는 거반 죽은 목숨 뿐이었다. 누군가의 도움이 아니고는 그 자리에서 그대로 생을 마감하게 될 만큼 절박한 상황이었다. 다행히 그 길을 지나가는 사람이 있었다. 하지만 강도 만난 자의 희망의 불씨는 두 번이나 꺾이고 말았다. 그 빛이 희망의 시야에서 가물가물해 질 때쯤, 드디어 구원의 손길을 만났다. 여행자는 자신의 남은 여행을 안전하고 행복하게 만드는 데 도움이 될 보따리를 기꺼이 풀어 기름과 포도주를 상처에 붓고 싸매어 주었다. 뿐만 아니라 자기 짐승의 안장도 내어줬고, 지갑까지 열어 돌봄의 비용을 지불했으며, 그것도 모자라 더 소용되면 돌아올 때 갚겠다는 따뜻한 마음까지 내어주었다. 온갖 제한과 장벽을 뛰어넘어 생명 그 자체를 사랑함으로 내민 한 이웃의 따뜻한 마음의 손길로 말미암아 강도 만난 이는 목숨을 건질 수 있었다.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이런 이웃을 목말라하고 따뜻한 정을 그리워한다. 하지만 나 자신이 스스로 좋은 이웃이 되겠다는 생각은 하지 않는다. 내게 득이 되고 필요한 누군가를 찾기만 하지 자신이 먼저 그들이 찾는 좋은 이웃으로 다가가지 않는다. 내가 먼저 손을 내밀 때 좋은 관계가 만들어진다. 내 가슴을 여는 만큼 많은 이웃이 내 안으로 들어오고 이웃사촌이 형성된다.
 
그런데 이웃사촌을 신청하는 나의 섬김의 마음에 이웃만이 들어오는 것이 아니라 어느 덧 우리 주님께서도 찾아오셔서 기쁨으로 내주하여 계신다. 그래서 '예수님이 내 안에, 내가 예수님 안에' 거하는 삶이 되어 풍성한 열매를 맺게 되는 것이다.
 
영국의 신학자이며 설교가였던 조지 휘트필드는 "내 존재가 녹이 슬어서 없어지느니 차라리 닳아서 없어지는 것이 더욱 행복 합니다"라고 말했다. 내 안에서 귀하고 소중했던 것이 어느 새 녹슬고 곰팡이 슬어 낯선 대상이 되고 있는 것은 없는지 뒤돌아 볼 일이다.
 
내가 먼저 얼음냉수를 되고, 넓은 마음으로 시원한 그늘막이 되어주자. 무엇보다도 예수 생명을 나누는 믿음의 이웃사촌이 되자. 나누고 베푸는 이웃사촌이 될 때 닳아서 소진되는 것이 아니라 많은 새 생명을 태동하게 된다. 십자가 위에서 예수님의 그 귀한 옥체를 찢으심과 보혈 흘리심이 잃어버림이 아니라 나와 수많은 생명의 이웃을 태동시켰던 것처럼 말이다.
 
<오늘의 기도>
사랑이신 하나님. 강도 만난 자의 이웃이 되기를 소원합니다. 우리에게 있는 이기적이고 자기중심적인 기준과 가치를 깨뜨려 주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임현희목사 / 팔복산교회


제목: 고난과 싸우는 법
본문: 에스더 4:10-17
찬송가: 336장
 
유다백성들에게 위기의 순간이 닥쳤다. 유다백성들이 바벨론에 이어 페르시아의 통치를 받게 되었다. 그 때 총리대신 하만이 성 문지기로 있는 유다인 모르드개를 미워했고 그로 인하여 유다인들을 죽이려는 음모를 꾸몄다. 그러나 이 때 모르드개가 딸 같이 양육했던 에스더는 그 백성들이 당하는 고난을 외면치 않고 그 고난과 싸워 이겼다. 오늘 우리도 삶에 고난이 있을 때 이 고난과 싸워 이기는 자가 되기를 원한다. 그러면 어떻게 싸워야 하는가?
 
첫째, 문제를 알라. 에스더는 유다백성들이 통곡하며 재를 뒤집어쓰고 누운 것이 도대체 무엇 때문인지 알 수 없었다. 그래서 내시 하닥에게 알아보라고 했다.
 
오늘 우리들도 위기의 상황에서 가장 먼저 해야 할 것은 문제가 무엇인지 아는 것이다. 시험을 칠 때에도 문제가 무엇인지 정확히 아는 것이 중요하다. 문제를 모르면 답을 쓸 수 없다. 내 삶의 문제도 마찬가지이다. 그것이 무엇 때문인지 알아야 한다.
 
그러면 그 문제를 어떻게 알 수 있는가? 오늘 말씀에 보면, 에스더는 들었다. 오늘 우리들도 문제를 알기 위해서는 들어야 한다. 들으면 문제를 알 수 있다.
 
둘째, 생각을 바꾸어라. 처음에 에스더는 부정적인 생각을 가졌었다. 왕의 부름을 받지 않고는 왕 앞에 나아갈 수 없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러한 에스더가 왕 앞에 나아갈 수 있었던 것은 무엇 때문인가? 에스더가 "네가 왕후가 된 것이 이때를 위함이 아닌지 누가 아느냐"라고 물었던 모르드개의 말을 듣고 생각을 바꾸었기 때문이다.
 
우리들도 위기의 때에 고난과 싸워 이기기 위해서는 생각을 바꾸어야 한다. 부정적인 생각, 불가능한 생각, 불확실한 생각을 버리고, 긍정적이고, 가능한 생각, 확실한 생각을 가져야 한다.
 
셋째, 결단하고 선포하라. 에스더는 위기의 상황에서 결단하였는데 그 증거가 금식이다. 금식은 히브리말로 자신의 육체와 욕심을 억제한다는 뜻이다. 또한 에스더는 위기의 때에 "내가 왕에게 나아갈 것이다. 죽으면 죽을 것이다"라고 선포했다. 이 선포는 믿음에서 나온 것이다.
 
말에는 힘이 있다. 물론 자기 자신에게 확신을 주는 것도 있지만 말 자체에 힘이 있다. 그러나 오늘 우리가 선포하는 것은 하나님이 도우실 것을 믿고 선포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들도 위기의 상황에서 결단하고 선포하기를 원한다.
 
넷째, 믿음으로 행동하라. 17절 말씀에 보면 모르드개는 에스더가 명령한 대로 다 행하였다. 뿐만 아니라 에스더도 믿음으로 행동했다. 왕후의 예복을 입고 어전으로 나아갔다. 그렇게 나아갈 때 왕이 에스더에게 금규를 내밀며 그녀를 환대했고, 에스더는 자신의 민족을 죽음에서 구원했다. 슬픔이 변하여 기쁨이 되었다. 고난과 싸워 크게 승리했다.
 
<오늘의 기도>
하나님 아버지! 오늘 우리도 고난과 싸워 승리하는 사람이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문제를 알게 하여 주옵소서. 잘못된 생각을 바꾸게 하시고, 결단하고 선포하게 하여 주옵소서. 믿음으로 행동하게 하여 주시옵소서. 어떤 위기 속에서도 승리를 주시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이선우목사 / 서현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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