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미에 근거한 신앙과 약속에 기초한 신앙 <순교자>

[ 말씀&MOVIE ] 유현목, 드라마, 1965

최성수목사 webmaster@pckworld.com
2012년 06월 12일(화) 16:07
유현목 감독의 1965년도 작품 '순교자'는 순교자의 의미를 성찰하는 영화는 아니다. 순교자의 의미에 방점을 두지 않고 있음에도 제목을 그렇게 붙인 이유는 이야기가 순교자를 중심에 놓고 전개되기 때문이다.
 
'순교자'는 1964년 Richard E. Kim(김은국)의 세계적인 베스트셀러 영문 소설(The Martyred)을 동명의 제목으로 번역된 것을 영화화한 것이다. 이 소설은 무엇보다 실존주의적인 휴머니즘에 바탕을 둔 작품으로 전쟁의 혼돈 속에서 인간 존엄성의 의미를 성찰하고 있다. 이 소설로 저자가 노벨 문학상 후보로 오르기까지 했을 정도로 평단의 평가가 대단했었다. 소설을 영화화하면서 원작을 충실하게 반영하였는데, 유현목 감독은 특별히 신에 대한 회의와 인간의 본질적인 희망과의 갈등에 초점을 맞춰 인간의 내면을 조명하려고 노력했는데, 비교적 잘 했다는 평가를 받았고, 그 평가는 지금까지도 계속되고 있다.
 
개봉 당시 기독교계를 흥분의 도가니로 몰아넣었고, 격렬한 논쟁을 불러일으켰던 장면은, 신 목사(김진규 분)가 전쟁의 참상 속에서 수많은 사람들이 신음하는 것을 보고 사람들의 고통과 관련해서 신의 역할을 묻는 질문에 천국이나 사후세계나 심지어 신마저도 없다고 대답하는 부분이었다. 이로 인해 기독교계 일부는 유현목 감독을 사탄으로 규정하기도 했고 친공세력으로 몰아붙이기도 했다. 당시 사회에서 다양한 측면으로 사회적인 이슈가 되었고 또 영화의 작품성이 인정받아 대종상을 비롯해서 각종 영화제의 상을 수상했다. 한국 영화계에서 기념비적인 작품으로 꼽히고 있는 이 영화는 제7회 서울기독교영화제(2009)에서 상영될 정도로 기독교적인 문제의식으로 가득하지만, 필자가 보기에는 기독교 영화라기보다는 '밀양'이나 '밍크코트'와 같이 기독교의 이미지를 빌려서 휴머니즘을 부각시키는 데에 더 큰 목적이 있는 것 같다. 다른 한편으로는 분단의 비극과 이념의 갈등이 배우들을 통해 재현되었다면서 ‘반공영화’로 분류하기도 한다.
 
영화가 시종일관 추구하는 것은 진실의 문제이다. 다시 말해서 진실에 근거한 희망이냐 거짓에 근거한 희망이냐의 문제를 쫓는다. 영화는 1950년 1ㆍ4 후퇴 직전 평양의 상황을 배경으로 한다. 평양은 기독교에게 특별한 의미를 갖는 도시다. 평양대부흥운동이 시작된 곳이면서, 또한 일제 강점기에 주기철 목사의 순교가 있었던 곳이었다. 바로 이곳이 영화의 배경이라는 점은 당시 교인들이 교회됨과 순교자에 대한 남다른 시각을 가지고 있었음을 짐작케 한다. 전쟁발발 직후에 북한군에 의해 14명의 목사들이 끌려간 후에 12명이 죽고 두 명(그중 한 명인 한 목사는 정신이상이 되었다)만이 살아남았다는 사실과 관련해서 육군 정보부장 장 대령(장동휘 분)은 이 대위(남궁원 분)를 통해 사안을 자세히 알아볼 것을 지시한다. 목사들의 죽음을 ‘순교’로 단정 짓는 장 대령의 의도는 순교를 반공이데올로기의 방편으로 삼으려는 데에 있었다. 다시 말해서 그는 무죄한 목사들이 공산주의자들에 의해 죽음을 당했다는 사실에 천착해서 공산주의의 만행을 세상에 알리고, 12명의 목사들을 영웅적인 순교자로 세우는 동시에 그들을 추모하는 과정에서 반공의식을 고취시키려 한 것이다. 이를 위해 그는 그들의 죽음을 지켜보았을 신 목사를 증인으로 세우고자 한 것이다.
 
신 목사가 거짓 증언을 한 이유는 바로 절망적인 전쟁 상황에서 성도들이 소망을 잃지 않도록 하기 위함이었다. 하나님의 존재와 천국과 영생을 믿는 성도들에게 그들이 믿고 따랐던 목사들이 불신자와 다를 바 없는 모습으로 최후를 맞이했다고 할 경우에 그들이 느낄 절망감을 어떻게 감당하겠느냐는 것이다. 절망하지 않도록 하는 일이라면 진실보다 차라리 거짓이 더 낫다는 것이다. 사실 이런 취지의 신 목사의 설교에 성도들 역시 감화를 받는다. 성도들에게도 중요한 것은 순교자에 대한 증언과 자신의 신앙을 지키는 일이지 그들이 어떻게 죽었는가에 대한 사실이 아니었음을 시사한다.
 
한편, 거짓 증언보다 더욱 놀라운 사실은 그가 이 대위에게 하나님은 없으며 사후 세계도 영생도 없다고 고백한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목사로서 천국을 말하고, 신앙을 말하고, 또 하나님을 말하는 이유를 신 목사는 자신이 짊어져야 할 십자가라고 설명한다. 진실 아닌 것을 진실이라고 말하는 것, 곧 듣는 자들에게 희망을 주고 절망하지 않을 수 있게 한다면, 이것을 위해 거짓 증언을 하는 일이 목사로서 자신이 짊어질 십자가라는 말이다. 간단하게 말해서 비록 근거 없는 소망이라도 절망에 빠진 인간을 구원해낼 수 있다면, 그것이라도 좋다는 말이다.
 
무엇이 옳은 것일까? 이것은 영화를 감상한 기독교인으로서 피할 수 없는 질문이다. 증언에 기초한 신앙에 대한 생각은 기독교 신앙 역시 부활 사실보다는 부활에 대한 증언에 기초하고 있다는 주장에 근거한다. 그러나 부활에 대한 증언이 중요한 일이긴 했지만, 기독교 신앙은 부활 자체가 없이 부활에 대한 증언만으로 세워지지는 않는다.
 
순교자는 결코 성도들을 위해 존재하는 신화적인 인물이 아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약속이 얼마나 신실한 것이고 또 하나님은 얼마나 신뢰할 만한 분임을 증거하는 자들이다.
 
 
최성수목사 / 神博ㆍ영화 및 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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