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패한 꿈을 다시 품으며

[ Deaf Story ] 우리 시대의 땅끝-Deaf Story

김유미원장 webmaster@pckworld.com
2012년 06월 01일(금) 16:22

지난 해에는 농인이 소재가 된 두 편의 영화가 개봉되었었는데 농아학교 야구부의 실화를 소재로 했던 한 영화제작사의 이벤트가 농사회의 소리 없는 비난을 받은 적이 있다. 그 제작사는 인공와우(人工蝸牛)수술 지원과 관련한 기부운동을 진행했는데 제작사에선 당연 좋은 의도로 시작한 것이지만 그것이 인공와우 수술에 대한 부정적 정서를 갖고 있는 농사회(Deaf Community)의 반감을 샀던 것이다. (인공와우 수술은 농인을 언어적 소수자로 이해하는 관점에서는 '농인 말살'로까지 평가받는 매우 예민한 이슈이다. 우리나라에서는 당사자의 의지가 아닌 부모의 선택으로 어린 아이들에게 인공와우 시술이 되고 있다는 점이 윤리적 차원에서 문제로 지적되고 있다.)
 
한 농인은 필자에게 문자로 이렇게 연락을 해왔다. "청인(hearing person)들은 숫자가 그렇게 중요한가! 몇 명 수술 지원! 이렇게 눈에 확실히 띄는 것에만 돈이 흘러들어가는 거냐!"고. "그러한 방법 말고도 정말 농사회를 지원할 수 있는 방법은 많은데, 청인들은 표시 안나는 어려운 방법은 회피하고 쉬운 방법, 표시 나는 방법만 선택한다!"라고. 당시 필자는 농인을 소재로 한 다른 영화에 관련하고 있었는데 제작진들과 이러한 이야기를 나누다가 농사회에 무언가 지원하고 싶다면 차라리 농인 인재 양성을 위한 장학금을 조성하는 것이 좋을 것이라고 조언했었다.
 
요즘 많은 교회들이 가난한 이웃나라에 찾아가 우물을 파고 학교를 세우며 자신들의 소명과 사랑을 나누는 모습을 볼 때마다 필자도 그 사역에 함께 눈물을 흘리고 함께 기도하며 물질을 나누게 된다. 그러나 그러한 '빵이 아닌 미래를 선물'하는 사역을 지켜보고 응원하다보면 어느 순간 안타까움이 밀려드는데 바로 이 땅의 농인들이 떠오르기 때문이다. 수화언어의 포기가 아니면 맛볼 수 없었던 성공의 열매들, 그래서 수어를 못하는 성공한 청각장애인이거나 수어를 잘하는 실패한 농인(Deaf person)일 수밖에 없었던 그들. 농인교회를 섬길 당시 필자를 가장 고통스럽게 했던 것은 그 반쪽짜리 인생 외엔 선택의 여지가 없는 아이들의 미래였다.
 
수화언어와 자아실현은 두 날개요 두 바퀴이다. 한쪽 날개로는 날 수 없고, 균형이 맞지 않는 바퀴로는 제자리만 빙글빙글 돌 뿐이다. 물론 농인들이 두 날개를 펼칠 수 있도록 즉 수화언어로 농인들의 미래를 키워주고 싶어 했던 움직임들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낮은 자의 행복', '농아사회정보원', '등대농학교' 등 그러나 지금은 모두 문을 닫았다. 그러한 움직임을 지원하기엔 농사회가 너무나 약했고 청인들의 관심은 너무나 부족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실패한 꿈은 버려지지 않고 누군가에게 다시 품어지고 있다. 아이들의 미래를 고민하여 수화언어를 더욱 열심히 배우는 특수학교 선생님, 성도들의 성장을 위해 주간학습 프로그램을 준비 중인 농인목사님, 돈 한 푼 받지 않고 농아동과 학생들에게 수화언어로 학습을 지도해주는 '소리를 보여주는 사람들', 그리고 20대에서부터 70대까지 다양한 연령층이 배움과 내적성장에 대한 갈증을 안고 찾아오는 우리 '한국농문화연구원', 감사하게도 이렇게 실패조차 가슴으로 끌어안고 미래를 향해 걸음을 옮기는 이들! 이 외로운 사역을 포기하지 않고 농인들과 함께해 나가는 이들의 가슴에는 그리스도가 계시다. 그리스도의 심장이 우리를 움직이신다. 그대! 그 분의 심장소리가 보이는가!


김유미원장 / 한국농문화연구원 http://deafculture.or.kr

이 기사는 한국기독공보 홈페이지(http://www.pckworld.com)에서 프린트 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