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교자의 피는 교회의 씨앗입니다"

[ 논단 ] 주간논단

고무송목사 webmaster@pckworld.com
2012년 05월 29일(화) 09:44

영국 버밍함대학교에서 선교학 논문을 쓸 때의 일이다. 지도교수 우스토프(Prof. Dr. Werner Ustorf) 박사께서 이렇게 질문을 던졌다- "한국교회 급성장의 원인은 무엇입니까?" 기독교 2천년의 역사 가운데 한국교회의 급성장이야말로 경이(驚異)에 속하는 일이기에 세계교회가 주목하는 일이요, 세계적인 선교학자로서 지극한 관심사가 아닐 수 없었을 것이다. 물론 그는 나름대로 연구를 정리해 놓은 형편이지만, 한국교회 최초 개신교 순교자인 토마스 목사(Rev. R. J. Thomas 1839-1866)의 생애와 선교사역에 대해 논문을 쓰고 있는 제자의 진솔한 견해를 듣고자 하는 것이었다. 나는 이렇게 대답했다.
 
"한국교회 급성장의 원인에 대해선 여러 각도에서 접근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가장 큰 원인은, 한국교회야말로 순교자의 피 위에 세워진 교회이기 때문입니다. 초대교회 교부 가운데 터툴리안(Tertullian Carthage 160-220AD)은 이렇게 설파했습니다. 순교자의 피는 교회의 씨앗입니다."
 
그렇다. 1866년 개신교 최초 순교자 토마스 선교사가 대동강변에서 순교한 이후 한국교회는 엄청난 순교의 피를 흘렸다. 일제 36년 동안, 그리고 해방과 남북분단, 6ㆍ25한국전쟁을 통해 한반도는 순교의 피로 흥건히 적셔졌던 것이다. 1907년 한국교회 대부흥운동은 토마스 선교사가 순교의 피를 흘린 평양에서 발원하여 온 나라에 요원(燎原)의 불길처럼 복음이 번져나갔던 것이다. 필자의 고향 군산지곡교회는 변방에 위치한 지극히 작은 농촌교회인데, 바로 1907년의 부흥운동의 불길 속에 개척, 1백년이 넘는 역사를 기록하고 있다. 우리는 평양을 가리켜 '동방의 예루살렘'이라 부르고 있다.
 
통계가 들쭉날쭉이지만, 일반적으로 이 땅의 기독교인 인구가 전 국민의 25%정도라고 얘기되고 있다. 그런데 그 숫자의 많은 부분은 호남지역이 제공하고 있다. 미국남장로교 선교사들이 이 땅에 상륙한 것은, 북장로교 선교사들이 들어온지 8년 뒤인 1892년이었다. 그때 이미 캐나다장로교와 호주장로교 선교사들도 들어와 선교활동을 펼치고 있었다. 중복선교를 피하기 위해 예양협정(禮讓協定 Comity Agreement)을 맺었다. 선교지분할협정이다.
 
그때까지 선교가 제대로 이뤄지지 못한 지역은 전라도 땅이었다. 고부(古阜)에서 봉기한 전봉준의 농민혁명의 여파로 선교사들의 안전이 보장되지 못했으며, 계속되는 한발로 인한 흉년, 그리고 호열자를 비롯한 각종 풍토병으로 민심이 흉흉하고 산천이 피폐해졌던 것이다. 남장로교 선교사들은 불모지(不毛地)였던 그 전라도 땅을 선교지역으로 배정받았다. 악전고투였다. 많은 여자 선교사들은 물론 선교사의 자녀들이 낯설고 거친 땅의 풍토병으로 죽어나가야 했다. 그 흔적들이 전라도 땅 여러 곳에 남아 있다.
 
광주 호남신학대학교 앞동산에 묻혀있는 선교사들의 무덤, 전주 예수병원 뒷동산에 묻혀있는 선교사들의 주검들, 그리고 서울 양화진 외국인선교사 묘역을 위시해서. 특별히 군산과 목포 순천 등 전라도 땅에 흩어져 있는 미국남장로교 선교사들의 무수한 주검들. 그들의 선교야말로 우리가 6ㆍ25전쟁 중에 불러야 했던 군가 그대로, "전우의 시체를 넘고 넘어 앞으로 앞으로" 나아갔던 순교의 발자취였던 것이다.
 
남장로교 선교본부가 있었던 전주를 비롯, 군산, 목포, 광주, 순천 등 지역은 '복음의 못자리'라고 부를만큼 교회가 왕성한 지역이다. 복음화율이 보통 30~35%를 웃돌고 있다. 이는 대도시가 많은 영남지방과 현격한 격차를 이루고 있어 대조적이다. 역시 '순교자의 피는 교회의 씨앗'임을 웅변으로 증거해 주고 있는 것이다. 황차(況且), 요즘 한국교회는 순교를 잊은 것 아닐까. 십자가의 고난을 잃어버리고 번영과 성장, 축복만을 탐(貪)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우스토프 교수의 한국교회를 향한 경고를 경청하게 된다. "한국교회가 순교와 고난의 역사를 망각(忘却)하면, 서구교회를 답습(踏襲)하게 될 것입니다."

고무송목사 / 전 본보 사장 ㆍ 한국교회인물연구소 소장

이 기사는 한국기독공보 홈페이지(http://www.pckworld.com)에서 프린트 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