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수 속 하나님의 뜻 찾는 성숙한 선거를 바란다

[ 총회1백주년 ] 총회100주년 기획

이용남목사 webmaster@pckworld.com
2012년 05월 22일(화) 10:28
하나님의 은혜로 본교단 창립 1백주년을 맞이하게 되었다. 기독교 2000년 역사에 비하면 짧지만 파란만장한 역사였다. 하지만 은혜 중에 오늘에 이르게 되어 정말 감사한다. 세계 기독교 역사를 바꾸어 놓을 만큼 놀라운 성장과 세계교회의 방향을 선도할 만큼 커진 한국교회의 영향력에 감사하지 않을 수 없다. 이제는 세계교회가 기대하는 한국교회의 역할에 부응해야 할 때다.
 
그러나 이런 우리들의 평가와는 달리 오늘의 한국교회는 위기 상황이다. 교회의 성장은 멈춘지 오래 되었고 국민들은 교회를 더 이상 신뢰하지 않게 되었다. 소금과 빛으로 교회가 세상을 변화시키고 선도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잠자는 선지자 요나를 깨운 선장처럼 세상이 교회를 향해 크게 잘못을 지적하고 비판하고 있다.
 
세상이 교회를 향해 비판하는 것들이 많이 있지만 그 중에 중요한 것 하나가 바로 선거제도이다. 세상의 선거제도를 감시하고 바르고 정의로운 선거를 위한 파수병의 기능을 해야 할 교회의 선거가 오히려 세상을 능가할 정도로 부패되어 있다는 비판이다. 총회장 선거나 한국기독교총연합회 대표회장 선거에 흑색선전과 금품살포를 비롯한 수많은 부끄러운 일들이 속속 드러나면서 교회는 치명적인 상처를 입고 있다.
 
교회가 왜 이렇게 되었는지 그 이유를 진단해 볼 필요가 있다. 이유를 안다면 해법도 찾아 낼 수 있을 것이고 이 위기를 극복할 대안을 찾을 수도 있을 것이라 기대한다. 앞으로 다른 한 세기를 바라보면서 함께 괴로워하며 고민하고 하나님 앞에 엎드려 겸손히 그 음성을 듣고 교회를 통하여 이루시기 원하시는 하나님의 뜻을 찾아야 할 것이다.
 
먼저 우리 교단이 갖고 있는 문제는 신학적 이해가 잘못된데서 시작된다. 오늘의 많은 신앙의 지도자들은 번영의 신학과 결탁되어 있다. 출세하고 영광스러운 자리에 앉는 것이 하나님의 축복이라는 신념이 한국교회 안에 깊이 침투되어 있다. 예수를 잘 믿는다는 것은 하나님이 주시는 복을 받아 이 땅에서 크게 출세하고 물질이 부유하며 잘 사는 것이라는 생각이다. 이런 기복적 자세는 일반 성도들이 갖고 있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많은 교회의 목회자들이 이렇게 설교하고 또 자신들도 그렇게 믿고 있다는데 있다.
 
이런 잘못된 신앙관은 총회장이라는 자리에 올라가 앉는 것이 바로 하나님께 크게 복 받는 비결이요 믿음으로 산 것에 대한 하나님의 축복이라는 판단이다. 그러므로 그 자리를 차지하기 위하여 지나친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게 된다. 어떤 방법을 강구해서라도 이기기만 하면 그것이 바로 복이요 잘되는 것이라는 판단이다. 그래서 상대를 헐뜯고 당선을 위한 돈을 마구 뿌리는 일 등에 대하여 전혀 양심의 가책이 없다. 당선만 되는 모든 것이 선하다는 판단이다.
 
현재 우리 교단을 개탄하는 사람들 중에는 선거가 이미 위험수위를 넘어 신학도 신앙도 없이 오직 정치만 남은 교단이 되었다고 지적하기도 한다. 지난해(2011년) 본교단 장로수련회에서 총회장 선거에 대하여 설문조사한 결과 부총회장 선거문화가 공정하다는 응답은 전체 응답자의 8.5%에 불과하였고 73.3%는 혼탁하다고 응답하였다. 교회 밖 어느 조사에서는 한국의 모든 종교 가운데 기독교가 가장 부패한 종교로, 목사는 가장 부패한 종교인으로 인식되었다고 한다. 교단 선거의 잘못된 행태가 이런 부정적 인식을 만들게 하였다.
 
심지어 어느 신학자는 오늘날의 한국교회는 기독교 역사상 도덕적으로 가장 부패한 교회라고 지적하면서 2011년 대한민국 부패지수 조사결과에 의하면 부패한 직업 12개 중에서 종교인이 일곱 번째였다고 한다. 사회정의를 세우고 빛이 되어야 하는데 부패의 중간이 있다는 말이다. 더군다나 타종교에 비하여 목사가 부패한 종교인으로 87.5%를 차지했다. 이렇게 볼 때 기독교는 부패한 종교 1위, 목사는 부패한 종교인 1위를 차지했다는 것이 바로 오늘 기독교의 현주소다.
 
총회 안에서 활동하는 선거 브로커들이 있다. 이들은 선거철만 되면 철새들처럼 나타난다. 이들의 힘은 '당선시키지는 못하더라도 떨어지게는 할 수 있다'는데 문제가 있다고 한다. 결국 당선을 목적으로 출마한 후보자들은 이들에게 끌려 다닐 수밖에 없다는 현실이다. 2010년 어느 신문 기사에 교단의 총회장 선거에서 가장 돈을 많이 뿌리는 교단은 통합측이라는 기사가 있었다고 한다. 최소 7-8억, 많게는 수 십억씩 쓴다는 말이다. 이런 교회에 염증을 느낀 성도들이 년 간 20만 이상이 교회를 떠나가고 있다고 하니 총회를 세우는 총회장이 아니라 총회를 망가트리는 총회장이라는 비난을 받게 된다.
 
문제를 직시한 많은 사람들이 교회가 새로워져야 한다고 외쳤다. 그리고 새로워지기 위한 여러가지 방법들을 제시하였다. 그러나 그런 것들을 감수하기 위해서는 기존체제의 변화와 손해를 감수하는 희생이 따라야 한다. 그런데 입으로는 변화와 새로워짐이 필요하다고 하면서도 자신이 감당해야 할 희생은 외면하려고 하는데 문제가 있다. 중요한 것은 아무리 좋은 의견과 제도가 있다 하더라도 의식이 바뀌지 않는 한 어떤 제도나 법도 소용이 없다. 중요한 것은 바로 교회 지도자들의 의식의 변화이다. 지도자들이 섬기는 자로 오신 주님을 닮아 섬기는 자가 되려는 자세에서 출발해야 한다. 그렇지 않고는 어떤 대안이나 제도도 무용지물이 된다.
 
먼저 앞으로의 1백년을 바라보며 정치에 깊이 관여하고 있는 총대들의 결단이 필요하다. 마치 자신이 아니면 교단의 방향이 잘못될 것처럼 생각하지만 그렇지 않다. 다시 말해서 만년 총대가 되기보다는 총대의 연한을 제한하는 법을 만들어 실천해야 한다. 3년 이상을 연임할 수 없고 3년을 총대로 봉사한 사람은 차후 3년은 총대로 나올 수 없게 하자는 주장도 있었다. 물론 연한은 조정해서 4년이나 5년으로 바꿀 수는 있다. 하지만 분명 총대의 연한을 제안하는 법이 있어야 총회 안에 정치꾼이 없어지게 된다. 건전하고 바른 총회의 흐름을 위하여 이런 결단이 필요하다.
 
둘째로는 총회장이라는 명칭에 대한 견해다. 총회장이라는 호칭보다는 총회 머슴이라 불리는 것이 좋다는 의견도 있었다. 이런 명칭의 변경과 함께 총회장이 끝난 후에 증경총회장이라는 이름으로 불리는 것도 불합리하다는 의견이다. 총회장 때만 총회장이지 총회장 이후는 그냥 목사와 장로로만 불리도록 해야 한다. 그리고 총회의 중요한 의견을 묻는 원로들의 모임처럼 증경총회장단이 있기 보다는 보다 전문적인 사람들에게 그런 역할을 하게 하는 것이 더 바람직하다. 총회장을 지낸 사람들만 총회 안에 원로요 귀족처럼 되어서는 안 된다. 교회와 교단의 발전을 위하여 일한 사람들은 누구든지 교단의 원로로 예우를 받는 분위기가 되어야 한다.
 
총회장 중심의 총회를 구성할 것이냐 아니면 실무 중심의 사무총장 중심의 조직을 구성하느냐를 결정하는 일도 중요하다. 만약 총회장 중심의 총회라면 총회장에 피선된 사람은 교회를 사임하고 총회가 제정한 사례를 받고 일하게 해야 한다. 그리고 임기는 3∼4년으로 정하고 그 임기 동안 오직 총회를 위하여 헌신하도록 해야 한다. 명예만을 생각하는, 정책도 없고 일도 한 것 없이 세월만 보내는 총회장이 되게 해서는 안 된다. 만약 사무총장 중심의 총회를 구성한다면 총회장은 총회 기간만 의장으로 역할을 하게 해야 한다. 이런 기구개혁이 있다면 지금보다는 나은 총회로 움직여 나갈 수 있을 것이다.
 
선거에서 가장 큰 문제는 금품살포로 인한 타락 선거다. 선거란 어떤 경우에도 상대후보와 경쟁하기 마련이다. 꼭 자리를 차지해야 한다는 욕심은 상대를 헐뜯고 폭로하고 심지어는 흑색선전에 금품살포까지 하게 된다. 사회를 지도해야 할 종교지도자들 뽑는 선거에 세속 정치판보다 더 추한 꼴을 보인다는 것은 비참한 현실이다. 일반인들도 종교는 사회의 으뜸(宗)이 되는 가르침(敎)이라고 생각한다. 이제는 투명한 선거를 위하여 선거공영제를 도입하거나 국가 사법기관의 도움을 받아서라도 국민이 신뢰할 교단으로 탈바꿈해야 한다. 더 이상 주저하다가는 기독교 선진국들의 텅빈 예배당의 망령이 이 땅에서 활개를 치게 될 것이다.
 
총회의 선거는 일반선거와 그 의미가 근본적으로 다르다. 일반선거의 의미는 횡적인 데에 있지만 우리는 종적인 데에 있다. 다시 말하면 일반선거는 국민의 의사를 묻는 것임에 반하여, 우리 선거는 하나님의 뜻을 묻는 데에 그 목적이 있다. 몰론 득점순으로 당선이 확정되는 것은 일반선거와 마찬가지이지만 그러나 단순히 다점자가 누구인가를 가려내기 위한 것이 아니라 다수 속에 나타나는 하나님의 뜻을 찾으려는 행위이다. 그러므로 총회 선거에 있어서는 투표인 각자가 하나님의 계시의 기관임을 자각하고 엄숙하고 진지한 태도로 이에 임해야 할 책임이 있다. 이제는 교단의 모든 부분이 성숙할 때가 되었다. 선거에서도 성숙함을 보여 사회의 빛과 소금이 되자!
 
이용남목사(장석교회, 전 총회 서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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