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의 덫

[ 목양칼럼 ] 목양칼럼

박봉수목사 webmaster@pckworld.com
2012년 05월 15일(화) 15:00

한 기독교 방송에서 특정 주제로 연속특강을 한 일이 있었다. 바라서가 아니라 강사료는 몰라도 교통비라도 준다든지 아니면 뭐라고 고맙다는 인사라도 해야 도리라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사례는 커녕 그 누구도 인사하는 사람이 없었다. 그러던 중에 마지막 날 부사장이라는 분이 식사 초대를 해서 참석을 했다. 그 식사 자리에서 대화를 나누는 가운데 내 상식으로는 이해하기 힘든 이야기를 들었다. 이분 말씀의 취지는 방송 출연케 해 준 것을 고맙게 생각하라는 것이다. 그리고 앞으로 방송을 통해 유명하게 해 줄테니 적극적으로 협력하라는 것이다.
 
처음에는 너무도 어처구니가 없었다. 그러나 이분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대충 분위기를 파악할 수 있었다. 간단히 말해서 일부 기독교 미디어계와 목회자들과의 관계가 소위 '갑'과 '을'의 관계가 되었다는 것이다. 즉 일부 기독교 미디어계가 주도권을 행사하는 '갑'이고, 목회자들은 도움을 받고자 하는 '을'이 된 것이다. 목회자들은 기독교 미디어계를 통해서 자기 이름을 알리고자 하고, 기독교 미디어계는 이를 활용해서 소위 미디어 선교(?)를 하고 있는 것이다.
 
사실 종교사회학자 피터 버거의 말처럼 오늘의 한국교회는 그야말로 '시장상황'에 놓여 있다. 시장원리 하에 교인들이 백화점을 선택하듯 교회를 선택하고, 상품을 선택하듯 목회자를 선택하는 상황이 도래하게 된 것이다. 이제 교회는 교회끼리, 목회자는 목회자끼리 경쟁하는 상황으로 내 몰리게 된 것이다. 이런 상황 하에서 유명한 교회, 이름이 널리 알려진 목회자는 일단 유리한 고지를 선점하게 된다. 그리고 이 유명해진 교회의 이름과 스타화된 목회자의 이름은 하나의 유명 '브랜드'가 된다. 이제 이런 브랜드 군에 끼기 위해 부단히 몸부림치는 목회자와 교회가 나타나게 된 것이다.
 
여기에 '이름의 덫'이 있다. 너도 나도 유명해 지고 싶은 몸부림 속에 무서운 덫이 숨어있는 것이다. 우선 유명해지고자 하는 몸부림 속에서 '오직 하나님께 영광'이라는 사역의 목적이 설 자리를 잃게 된다. 유명해 지려는 생각에 하나님께 영광 돌리기로 다짐한 초심을 잃게 되는 것이다. 다음으로 너도 나도 유명해 지려는 풍조가 형성되다보면 서로 시기하고 경쟁하게 된다. 이 때 볼썽사나운 일들이 벌어지게 되고, 오히려 하나님의 영광을 가리게 되는 것이다.
 
초대교회 시절 수도사들은 가장 치열하게 싸워야 할 적을 이름을 알리고자 하는 이 이름의 덫이라 생각했다고 한다. 그래서 수도사들은 금식으로 널리 이름이 알려지면 금방 금식을 깨버렸고, 신유의 능력이 나타나 사람들이 몰려들면 감당할 수 없기 때문에 아예 신유 사역 자체에 무관심하기도 하였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이들은 금식이나 신유보다도 남에게 이름이 알려지는 것을 더 경계했고, 이름이 널리 알려지는 것 자체가 결국에는 하나님의 영광을 훼손하는 일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오늘 우리에게 이런 수도사들의 깨달음을 깊이 성찰해 볼 필요가 있어 보인다. 그리고 이런 수도사들의 철저한 자기 관리를 귀감으로 삼을 필요가 있어 보인다. 도처에 숨어있는 이 이름의 덫을 피하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이 덫에 걸려 신음하고 있는 사람들이 점점 많아지고 있는 것 같기 때문이다.
 
즐겨 부르는 찬송 323장 3절 가사 끝 부분이 떠오른다. "이름 없이 빛도 없이 감사하며 섬기리다" 이름 알리려 하지 않고 다만 감사한 마음으로만 섬기겠다는 것이다. 이제 이 찬송을 입으로만이 아니라 온 몸으로 불러야 할 것 같다.

박봉수목사/상도중앙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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