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회. 펴지 못한 한쪽 날개

[ Deaf Story ] 우리 시대의 땅끝-Deaf Story

김유미 webmaster@pckworld.com
2012년 05월 15일(화) 13:59

청각장애인 안에는 한국어를 제1언어로 획득하고 살아가는 사람들과 한국수어를 제1언어로 획득하고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다. 전자는 흔히 구화인(口話人)이라고 불리며 후자는 언어적 소수자로서의 농인(농아인:Deaf person)이라고 불린다.
 
일반학교에서 통합교육을 받거나 수화언어를 사용하지 않는 특수학교(구화학교)를 통해 성장한 구화인들은 한국어가 제1언어이기 때문에 농인들과 비교할 때, 상대적으로 대학진학과 사회진출이 유리하다. 그러나 이러한 학생들의 경우에도 일부는 이미 초ㆍ중ㆍ고 시절에 농아인교회 등을 통해 농사회의 일원으로 참여하기 시작하고 학교에서 가르쳐주지 않는 수화언어를 농사회를 통해 점차적으로 배워나가게 된다. 그리고 성인이 되면 자연스럽게 농사회의 일원이 된다. 한편, 성장과정에서 농사회(Deaf Community)와의 교류가 차단되었다가 성년이 되어 부모의 울타리를 벗어나 사회에 발을 들여놓으면서 절감하게 되는 차별과 한계로 인해 뒤늦게 수화언어를 배우고 농사회에 관심을 보이는 구화인들도 적지 않은데 이러한 경우 청인도 농인도 아닌 자신의 모호한 정체성으로 인해 심각한 정도의 심리적 장애를 겪기도 한다.
 
반면에 수화언어를 사용하는 특수학교(농아학교)를 통해 성장한 농인들은 한국수화가 제1언어이며 자신들이 속한 사회(농사회)가 존재하기 때문에 좀 더 심리적으로 안정적일 뿐만 아니라 삶을 지탱하는 힘과 정보를 농사회를 통해 지속적으로 공급받는다는 강점을 갖는다. 그러나 주류사회의 언어인 한국어의 획득이라는 측면에서는 이제까지 효과적인 방법을 찾지 못한 농교육의 한계로 인해, (구화인들이 정체성을 획득하지 못했다면 )농인들은 유창한 한국어 실력을 획득하지 못하여 사회적 불이익을 당하고 설움을 겪는 경우가 매우 많다. 그리고 이러한 과정에서 많은 유능한 농인들이 배움과 직업선택에 대한 자신들의 꿈을 실현시킬 기회를 얻지 못한 채 단순노동자로 일생을 사는 일이 허다하다.
 
자이실현 대 정체성! 결국, 청각장애인이라는 이유로 둘 중의 하나를 포기해야만 했던 것이 우리나라 농사회의 현실이다. 그렇다면 외국의 농인들은 어떠한가? 자신의 언어(수화)를 포기하면서까지 주류언어에만 올인해야 하는가? 그렇지 않다. 이미 미국, 유럽 등에서는 수화언어를 통해 주류언어의 문해능력을 향상시켜 학력을 신장시키는 방식에 대한 연구와 이에 대한 긍정적 결과가 나온 지 오래됐다.
 
결국 획일적인 통합교육이 아니라 개개인의 특성을 고려한 맞춤교육이 청각장애 아동들에게도 필요하다. '수화냐? 구화냐?'의 논쟁을 벗어나 청각장애 아동들에게 모든 기회(그것이 언어치료이든 수어교육이든…)를 제공하되, 이제는 한국수어를 제1언어로 획득한 후 그 수화언어기반을 통해 한국어를 획득할 수 있는 방법을 우리나라도 연구하고 실현하여야 할 것이다.
 
정체성과 자아실현의 두 날개를 활짝 펼치고 높이높이 날아오르는 그들을 보는 것! 오랜 시간 그들과 함께 해온 이 부족한 종의 소망이자 소명이다.

김유미 / 한국농문화연구원 원장 http://deafculture.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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