삯군의 덫

[ 목양칼럼 ] 목양칼럼

박봉수목사 webmaster@pckworld.com
2012년 05월 08일(화) 15:54

일전에 교역자를 청빙한 일이 있었다. 이곳저곳에 광고도 하고, 여기저기 부탁도 했다. 생각했던 것보다 많은 사람들이 지원을 했다. 기도하며 면밀히 이력서를 살폈다. 그리고 한 사람을 택해서 면접을 보았다. 마음에 들어서 인사위원회에서 논의하고 당회에서 청빙을 결정했다. 그런데 며칠 뒤에 핸드폰에 문자 하나가 떴다. 한 마디로 오지 못하겠다는 것이다. 너무 당황이 돼서 자초지종을 알아보았다. 이분이 몇 교회에 동시에 이력서를 냈고, 또 동시에 두 교회에 면접을 보았다는 것이다. 그리고 두 교회에서 똑같이 청빙결정을 했다는 것이다. 그런데 다른 교회가 사례비를 더 많이 줄 뿐 아니라 사택과 자녀 장학금 등 조건이 더 좋아서 그 교회로 가기로 했다는 것이다.
 
한 편으로는 유능한 일꾼을 다른 교회에 빼앗겼다는 생각에 속이 상했다. 그러나 다른 한 편으로는 그런 사람을 청빙하지 않게 된 것이 다행스럽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대우에 따라 임지를 결정하는 그런 사람은 유능할지는 몰라도 목회자다운 목회자일 수는 없을 테니까 말이다.
 
마침 후배 목사님의 하소연이 떠올랐다. 이분은 미국 유학중 파트 교육목사로 한 교회를 섬겼다. 한 달이 지난 후 사례비가 우편으로 배달되었다. 편지를 뜯어보니 수표와 함께 자세한 내역을 기록한 종이가 담겨있었다. 내역인 즉 '설교 수고비 얼마(설교 회당 얼마), 설교 준비비 얼마(역시 설교 회당 준비비 얼마), 교통비 얼마, 교사 훈련비 얼마, 그리고 학생 상담비 얼마, 그래서 전체 얼마'라고 기록돼있더라는 것이다.
 
너무 어처구니가 없어서 쓴 웃음만 나오더라는 것이다. 그 후부터는 설교를 더하면 더 한 만큼, 교회를 더 가면 더 간만큼 교회에 사례비를 더 청구했다는 것이다. 그리고 설교 준비할 때마다 '이것은 얼마짜리 설교인데…'라는 생각이 들더라는 것이다.
 
이런 이야기들을 들으면서 안타까움을 금할 수가 없다. 목회자 스스로 목회 자체를 '사명(vocation)'이 아니라 '직업(job)'으로 생각하는 풍조가 생기는 것만 같아서 안타깝다. 그리고 교회도 목회자의 사역을 사명이 아니라 직업으로 여기는 것만 같아서 안타깝다.
 
마태복음 10장 8절을 보면 예수님께서 "너희가 거저 받았으니 거저 주라"고 말씀하셨다. 이 말씀은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신 당부이다. 주님께 보내심을 받고 사역 현장에서 어떤 자세로 일해야 할 것을 말씀하신 내용 가운데 하나이다. 그 내용은 주님의 보내심을 받고 사역하는 사람들은 우선 거저 받았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거저 주려는 태도로 사역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 말씀 그대로 목회자는 이미 받은 것을 갚는 사람이지 받기 위해서 일하는 사람이 아니다. 그래서 목회자는 갚을 것을 생각하며 사역해야지 받을 것을 생각하며 사역해서는 안 된다. 만일 그가 받기 위해서 일하려 한다면 그는 삯군이 되는 것이다. 대가를 바라고 사역한다면 이미 그는 삯군인 것이다.
 
오늘 목회자들 앞에 삯군의 덫이 있다. 자칫 조심하지 않으면 그 덫에 걸리고 만다. 어떤 이들은 목회 초년부터 이 덫에 걸려서 임지를 결정할 때 대우를 따진다. 또 어떤 이들은 목회 도중에 이 덫에 걸려서 교회의 분란을 일으킨다. 그리고 어떤 이들은 목회 말년에 이 덫에 걸려서 명예롭지 못하게 은퇴하기도 한다.
 
내 자신을 돌아본다. 여러 차례 위기가 있었음을 부인할 수 없다. 더욱 기도하며 조심할 밖에….

이 기사는 한국기독공보 홈페이지(http://www.pckworld.com)에서 프린트 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