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과 가족 사이에서 <메디슨 카운티의 다리>

[ 말씀&MOVIE ] (클린트 이스트우드, 로맨스, 드라마, 청소년관람불가, 1995)

최성수목사 webmaster@pckworld.com
2012년 04월 30일(월) 10:04

   
'메디슨 카운티의 다리'는 실화를 바탕으로 제작된 영화다. 메릴 스트립과 클린트 이스트우드가 주연으로 출연하여 90년대 최고의 고전 영화로 꼽힐 정도로 수많은 사람들의 가슴에 불을 지핀 작품이다. 영화를 본 중년의 나이에 접어든 사람들은 아마도 꿈을 꾸는 듯한 사랑을 보며 한 동안 부푼 가슴을 쓸어내려야만 했을 것이다.
 
결혼 전의 성인 남녀가 결혼과 사랑의 관계에서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면,아마도 사랑을 택하는 비율이 높을 것이다. 그래서 결혼은 사랑하는 사람 사이에서 이뤄지는 것이고, 사랑하는 관계가 결혼으로 이어진다. 항상 그렇진 않지만 대체로 그렇다.
 
그런데 이런 경우는 어떨까? 결혼 생활에서 아무런 불평도 불만도 없는데,불현듯 마음으로 그리던 사랑이 찾아왔다면? 그 사랑의 감정이 너무나도 확실하게 느껴진다면? 사람들은 가족과 사랑 가운데서 과연 무엇을 택할 것인가?
 
이 질문은 영화 속 프란체스카와 로버트 사이의 관계로부터 나온 것이다. 프란체스카는 미국 농촌의 아낙네로서 두 아이의 엄마다. 남편을 만나 고향인 이탈리아를 떠나 미국에 정착해 살고 있다. 엄마와 아내로 살아가면서 자신의 꿈을 접고 살아왔다. 그것에 대해 굳이 불평하거나 불만을 품고 있는 것 같지는 않다. 단지 가족에게서 자신의 존재감을 느끼지 못하는 까닭에 가슴 한 켠에 답답한 마음을 갖고 있을 뿐이다. 모두가 즐거워해야 할 식사 시간에 홀로 창밖을 내다보는 모습은 현대의 중년의 여성들에게 흔히 발견할 수 있다.
 
그러던 어느 날 남편과 아이들은 가축 품평회에 다녀오느라 나흘 동안 집을 떠나 있게 된다. 홀로 남은 프란체스카는 게으름도 피워보고,여유 있게 차도 마시고,원하는 음악도 들으며 그야말로 한가로운 시간을 보낸다.
 
내셔널 지오그래픽 사진 기자인 로버트는 지붕이 덮인 다리를 찾아다니다 길을 잃고 프란체스카의 집에까지 이르게 된다. 길을 묻는 로버트의 질문에 대답하는 것이 복잡하다고 생각한 프란체스카는 직접 안내하기로 결정한다. 두 사람은 가는 중에 이것저것 대화를 나누면서 서로를 알게 되고,결국 프란체스카는 로버트를 집으로 초대하여 즐거운 저녁시간을 공유한다. 그 다음날부터 두 사람은 뜨거운 사랑을 나누는데,서로가 서로에 대해 느끼는 감정은 상상을 초월한다. 그동안 꿈으로만 꾸어왔던 것들이 현실로 경험되는 순간들이다. 지금까지 보낸 모든 시간들이 서로의 만남을 위해 방향 지워져 있다는 느낌,아니 확신을 느낄 정도로 숙명적인 사랑을 경험한 것이다.
 
가족이 돌아올 시간이 임박해지자 두 사람 사이에는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긴장감과 불안,그리고 아쉬움이 밀려든다. 과연 두 사람은 어느 쪽을 택할 것인가? 아니,  로버트는 가족이 없기 때문에 선택의 결정권은 프란체스카에게 있었다. 그녀는 가족과 사랑 사이에서 무엇을 택할 것인가? 로버트는 "애매함에 둘러쌓인 우주에서,이런 확실한 감정은 단 한번만 오는거요. 몇 번을 살더라도 다시는 오지 않을거요"라고 말하며 그녀의 결정을 독려하지만,프란체스카는 결국 가족을 택한다. 비록 숙명적인 사랑이었지만,두 사람은 그렇게 헤어지고,그 후에는 평생을 서로 그리워하며 살다 세상을 떠난다.
 
우리는 이 영화에서 불륜의 과정을 심리적으로 분석하며 비난하기에 앞서 프란체스카의 갈등과 선택에 주목하지 않을 수 없다. 그녀는 왜 사랑하는 사람을 따라 떠나지 않았을까? 비 내리는 거리에서 자신을 기다리는 로버트의 차를 보며 자동차 문고리를 꽉 움켜 쥔 모습은 그녀의 갈등이 얼마나 강렬했는지를 말해주며,또한 그 장면을 보는 모든 사람들의 마음을 울릴 정도로 그녀의 번민에 가득한 마음을 제대로 표현한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그녀는 운명적인 사랑보다 가족을 택했다. 그리고 후회하지 않았다. 그 이유는 사랑을 택한 후에는 비록 잠시 동안은 어떨지 몰라도 가족에 대한 죄책감으로 평생을 살아야만 한다는 것을 알았고,비록 자신의 존재감이 인정받진 못해도 자신의 갑작스런 부재는 가족에게 더욱 큰 고통을 안겨주는 일임을 알았기 때문이다. 이별의 아픔은 기억 속에 묻어둔 채 그녀는 여생을 가족을 위해 자녀들과 남편을 위해 최선을 다하며 살다가 세상을 떠났다. 그녀가 살아있는 동안 가족 모두는 행복했다.
 
일기로 남긴 기록을 자녀들이 읽으며 회고하는 식으로 진행된 이야기에서 자녀들은 불륜을 저지른 엄마에 대해 분노하기도 하고 때로는 연민의 정에 사로잡히기도 하지만,결국 그들 모두 엄마의 선택이 얼마나 귀한 것인지를 깨달으며,오히려 자신들의 가족이 회복되기를 애쓰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불륜 영화라고 생각하며 논란을 벌일 수도 있겠지만,필자는 이 영화를 오히려 성인용 가족 영화라고 보고 싶다. 우리가 살아가면서 이런 상황이 찾아오지 않으리라는 법이 없다. 중년의 사랑은 교통사고처럼 온다는 말이 있기 때문이다. 누구도 예측할 수 없지만 일어날 수 있는 일이다. 평생 단 한 번 있을 것 같은 사랑을 만났을 때,우리는 과연 무엇을 택할 것인가? 바로 이런 상황에서 영화는 불륜을 미화하기보다는 가족이 숙명적이며 이상적인 사랑보다 우선되어야 할 것임을 설득력 있게 제시하고 있다. 중년의 이혼이 높아지고 있는 현대사회에서 중년이라면 한 번쯤 생각해 볼만한 일은 아닐까?

 
최성수목사 / 神博ㆍ영화 및 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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