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 한국수어의 위기

[ Deaf Story ] 우리 시대의 땅끝-Deaf Story

김유미원장 webmaster@pckworld.com
2012년 04월 30일(월) 09:48
한국어를 가장 잘 알고 가장 많이 연구하는 사람들은 누구일까? 바로 한국인들이다. 물론 외국인 언어학자들도 한국어를 연구하고 결과물을 발표할 수 있고 발표하고 있지만 가장 한국어를 잘 이해하고 한국어를 잘 설명할 수 있는 사람은 역시 한국인 학자들일 것이다. 그렇다면 한국수어를 가장 많이 연구하고 결과물을 발표하는 사람들은 누구일까? 바로 청인(聽人)들이다. 그리고 안타깝게도 이러한 청인 연구자들 중에는 잘못된 언어철학과 연구방법론에 기초한 결과물들을 발표하는 경우도 있고 그 결과물이 공식화됨으로써 결국 한국수어가 훼손되고 오류가 고착되는 결과로 가기도 한다. 반면 농인들은 자신들의 언어인 한국수어를 가장 잘 이해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모든 결과물들을 외국어와 다름없는 한국어를 통해 내어야 하기 때문에 연구 발표할 엄두를 못 내거나, 연구과정에 참여하여서도 자신이 한국어를 청인만큼 잘하지 못한다는 것에 대한 열등감, 그리고 청인들이 아무래도 더 많이 알 것이라는 생각에 기인한 위축감으로 인해 연구과정에서 청인들의 의사에 영향을 받거나 그 결정을 따르는 경우도 많다. 그리고 이렇게 나온 그 결과물들이 농사회에서 결국엔 수용되는 악순환이 지금도 계속되고 있는 것이다. 심하게 비유하자면 마치 일본인이나 중국인 학자에 의해 한국어가 재단되는 상황과 유사하다고 하겠다. 일본인이나 중국인에 의해서만 한국어가 연구되고 발표된다면 한국어에 대한 애정 깊은 이해에 기초한 연구과정이 이루어지지 않거나 한국어에 대한 이해부족으로 인한 오류도 나오지 않겠는가!
 
차라리 과거 매체가 발달하지 않은 시절엔 오류투성이 수화어휘집이 하나 나온다고 해도 그리 큰 걱정이 되지 않았다. 자연스럽게 한국수어에서 배제되고 사라졌기 때문이다. 그러나 과거와 달리 오늘날은 이러한 오류들이 활자화 될 뿐만 아니라 동영상으로 제작되어 인터넷을 통해 빠르게 퍼져나가기 때문에 한국수어는 과거만큼 언어적 자정(自淨)을 유지하지 못하고 큰 위기를 맞고 있다. 활자와 매체의 힘은 대단해서 초기에 저항에 부딪혔던 오류도 '책에 기록되어 있다'는 이유만으로 결국엔 표준으로 인정받게 되는데 여기에 큰 문제가 있다.
 
농인들은 청인들에게 관대하다. 농인들은 '그들(청인)이 주류사회의 일원이기 때문에, 그들이 나보다 한국어를 잘하니까, 그들이 나보다 더 많이 배웠으니까 그들이 그렇게 말하는 데는 이유가 있을 거야'라고 생각해버리는 것이다. 그래서인지 수화통역사가 수화통역을 잘 못하더라도 그것을 직접 지적해주는 농인은 거의 없다. 소수자로 살아오면서 어쩔 수없이 받아들인 삶의 방식이기도 하겠지만 이러한 농사회의 분위기가 자신들의 가장 소중한 언어인 한국수어를 지키는 데엔 큰 독이 되고 있기에 안타깝다.
 
수화언어는 청인이든 농인이든 누구나 연구할 수 있는 대상이다. 그러나 그 연구자들의 대부분이 청인이라는 점은 오히려 우리 청인들을 부끄럽게 한다. 많은 수화통역사가 양성되고 정부와 지자체는 복지국가를 추구하고 있지만 정작 한국수어를 제대로 연구하고 발표할 수 있는 농인 학자 한사람을 못 키워내고 있는 이 현실이 하나님께서 필자에게 한국농문화연구원을 시작하게 하신 이유이기도 하다.
 
 
김유미 / 한국농문화연구원 원장  http://deafculture.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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