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송해서 어쩌지요

[ 고훈목사의 詩로 쓰는 목회일기 ] 목회일기

고훈목사 webmaster@pckworld.com
2012년 04월 24일(화) 14:27

주여 당신이
십자가 지고 무덤 속에 계신 그 3일
나는 당신을 내 가슴에 묻었습니다
당신의 아픔은 나의 아픔이요
당신의 슬픔은 나의 슬픔이며
당신의 죽음은 나의 죽음이기에

주여 당신이
살아나던 그날 아침
내 가슴에서 당신도 살아났습니다
당신의 일어섬은 나의 일어섬이요
당신의 생명은 나의 생명이며
당신의 살아남은 나의 살아남이기에

주여
나는 당신의 임마누엘
당신은 나의 임마누엘

나는 실로 보잘 것 없고
가장 나약한 것인데
그래도 주님은 내게
너는 나이고 나는 너이기에
나를 우리라고 불러주시며
하나 되어 함께 가자하시니
황송해서 어쩌지요

 
천사는 부활아침 막달라 마리아에게 두려워말라셨다. 주님이 마리아를 사랑하기 때문에 부활했는데 무엇을 두려워해야하는가? 사랑은 죽음보다 강하고 모든 두려움을 이긴다(아8:6). 장난감 총이 나를 겨누어 방아쇠를 당긴다고 두려워하겠는가? 세상의 어떤 공갈 협박 있다 해도 진실 앞에 아무 것도 아니다. 진리만이 우리를 자유케 한다(요8:32).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함이라 놀라지 말라 나는 네 하나님이 됨이라 내가 너를 굳세게 하리라 참으로 너를 도와주리라 참으로 나의 의로운 오른손으로 너를 붙들리라"(사41:10). 부활한 예수님은 막달라 마리아에게 부러워말라고 부활한 몸을 보이셨다. 위조지폐 갖고 있는 사람을 부러워하는 것은 어리석은 짓이다. "네 마음으로 죄인의 형통을 부러워하지 말고 항상 여호와를 경외하라"(잠23:17).
 
막달라 마리아는 보배생명 예수님을 모셨다. 세상 모든 것 다 잃어도 예수님 얻음은 전부를 얻음이고 세상 모두를 얻고도 예수님 잃음은 모든 것을 잃음이기 때문이다. 세상 사람이 우리를 멸시한 것은 예수님을 모른 탓이요 우리가 세상사람을 부러워 않는 것은 예수님이 보배이기 때문이다.
 
부활 아침 천사는 막달라 마리아에게 울지말라 서러워말라고 했다. "만일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가 바라는 것이 다만 이 세상의 삶뿐이면 모든 사람 가운데 우리가 더욱 불쌍한 자이리라 그러나 이제 그리스도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사 잠자는 자들의 첫 열매가 되셨도다"(고전15:19-20). "형제들아 자는 자들에 관하여는 너희가 알지 못함을 우리가 원하지 아니하노니 이는 소망 없는 다른 이와 같이 슬퍼하지 않게 하려 함이라"(살전4:13).
 
예수님 만나기 전에 우리는 우리 아픔과 슬픔, 괴로움 때문에 울었다. 그러나 부활의 예수님을 만난 후 우리 위해서는 결코 울지도 아파하지도 않는다. 우리 눈물을 이미 주님이 씻어주셨고 우리 아픔은 주님이 이미 아파주셨기 때문이다. 아픈 자를 위해 고통 하는 자를 위해 지금도 울고 계신 주님의 눈물이 되어 우리가 울어야하기 때문이다.

고훈목사/안산제일교회ㆍ국제펜클럽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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