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정한 동반자 <언터처블>

[ 말씀&MOVIE ] 올리비에르 나카체/에릭 톨레다노, 코미디, 드라마, 12세

최성수박사 webmaster@pckworld.com
2012년 04월 16일(월) 15:55
4월은 장애인의 달이다. 우리 가운데 장애인의 존재를 확인하고,그들의 삶과 애환을 돌아볼 뿐만 아니라 장애인의 인권을 위해 노력할 기회를 갖는 시간들이다. 4월에는 장애인 영화제도 열리기도 하고 또 '영화 속 장애인 이야기', '세상에 버릴 사람은 아무도 없다'라는 제목의 책도 있어서,누구든 원하기만 하면 장애인의 현실을 간접적으로 나마 경험할 수 있다.
 
최근에 개봉된 '달팽이의 별'은 장애인과 함께 동반자의 길을 가는 아름다운 이야기를 담고 있다. 듣도 보도 못하는 남자와 척추장애가 있는 여자가 부부로서 어떻게 삶을 엮어 가는지,그들의 삶의 단면들을 볼 수 있다. 이들의 삶을 엿보면서 제대로 만나기만 한다면 장애인과 장애인이 동반자로서 살아가는 것이 참 이상적이겠다는 생각을 해보았다.
 
   
그런데 사실 우리 주변에는 비장애인의 도움을 필요로 하는 장애인들이 많다. 제도나 시설의 문제가 아니라 삶 자체를 혼자 꾸려나갈 수 없기 때문에 다른 사람의 도움을 필요로 하는 것이다. 요즘에는 자원봉사나 장애인의 일상을 도와주기 위한 유료 도우미 제도가 있지만,제도의 문제를 떠나서 장애인을 돕는 일과 관련해서 언제든지 제기되는 질문이 있다. 장애인이 가장 편하게 느끼는 도움은 어떤 것일까?
 
실화를 바탕으로 제작된 '언터처블'은 이런 고민을 풀어줄만한 영화다. 제목 자체가 먼저 다의적이다. 인도의 최하층민인 불가촉 천민을 지칭하기도 하고,비난의 여지가 없는 확실한 관계를 의미하기도 한다. 영화 제목은 어느 정도 등장인물들의 엇갈린 신분관계를 엿보게 하면서도 두 관계의 진정성을 드러내기도 한다.
 
아내와 사별한 이후에 허전한 마음을 달래기 위해 시작한 익스트림 스포츠를 즐기다 전신마비 신세가 된 갑부 필립,그는 함께 거주하면서 자신의 일상생활을 도울 수 있는 도우미를 뽑으려 한다. 워낙 기이한 성벽에 까칠한 성격의 사람이라 어떤 도움도 오랫동안 지속된 적이 없었던 듯 하다. 필자가 특별한 인상을 받았던 부분은 장애인들을 위해 준비된 사람들을 면접하는 장면이다. 고용을 기대하며 찾아온 사람들은 한결같이 장애인을 배려하는 마음을 갖고 있고,장애인을 위한 삶에 헌신되었다고 자신했고,누군가를 돕는 삶의 가치관으로 무장되어 있었으며,장애인의 인권을 주장하기도 했다. 한 마디로 말해서 장애인을 위해 오랫동안 준비된 사람들이었다.
 
그런데 정작 필립은 탐탁치 않게 여긴다. 왜 그랬을까? 그러는 중에 불현듯 나타난 흑인 드리스,그는 복잡한 가정환경을 가지고 있고,전과가 있으며,사회복지 혜택을 누리기 위해 찾아왔을 뿐,장애인 도우미에는 애초부터 관심이 없는 사람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필립은 분위기를 파악하지 못하고 제멋대로 자신을 들이미는 드리스를 고용하면서 주위 사람들을 놀라게 한다.
 
왜 그랬을까? 이 질문에 대답을 찾는 것이 이해의 관건이며,영화가 말하고자 하는 핵심이라 생각한다. 다소 드라마틱하게 보이기 위한 억지 같아 보이지만,이 영화가 실화라는 점에서 드리스는 더욱 주목이 가는 캐릭터이다. 드리스는 전혀 준비되지 않은 사람이었다. 그는 필립을 대하면서 결코 장애인으로 대하지 않은 듯이 보인다. 아니 장애인을 대하는 태도와 자세가 어떠해야 할 것인지를 전혀 몰랐다. 일단 거북해하며,낯설어하고 마치 비장애인을 대하듯이 필립의 장애에 대해 서슴없는 태도를 취한다. 장애인인 필립이 자신의 무개념의 행동과 언어 그리고 조롱섞인 듯한 웃음에 대해 어떻게 생각할 것인지를 전혀 고려하지 않는 태도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필립은 드리스를 가장 편한 동반자로 여긴다. 영화는 두 사람 사이에서 벌어지는 많은 에피소드와 이 과정에서 서로가 아픔과 상처에서 회복되는 모습을 보여준다.
 
무엇이 이런 일을 가능하게 했을까? 영화를 보는 사람들이 결코 놓쳐선 안 될 질문이다. 간단하게 말해서,필립은 드리스에게서 자신이 장애인이 아니라 인간으로 여겨지고 있음을 느낀 것이다. 만일 장애인에게 필요한 것이 편안함 만이라면 이념과 실제에 있어서 오랫동안 준비된 도우미의 손길을 필요로 했을 것이다. 그러나 그렇지 않았다. 의도한 것이었는지는 모르지만 드리스가 필립의 장애를 보지 않고 오히려 그를 한 인간으로서 대하는 태도는 필립의 마음을 편하게 함과 동시에 감동시켰고,그렇기 때문에 결코 어울릴 것 같지 않은 두 사람의 우정의 관계가 오랫동안 유지할 수 있었다.
 
장애인을 도우려고 할 때,그들이 진정으로 원하는 것은 필요를 채워주는 것만이 아님을 아는 것이 중요하다. 무수한 차별과 편견에 시달리며 오히려 그러한 것에 적응하며 살아왔던 그들이 가장 필요로 하는 것은 인격적인 관계이다. 장애인을 도우려는 비장애인들이 가장 두려워하는 것은 어쩌면 인격적인 관계가 아닐까? 서로의 관계가 어떻게 발전될 수 있을지 두렵기 때문이다.
 
최성수목사 / 神博ㆍ영화 및 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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